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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 울버린은 최악의 빌런으로부터 벗어났다

〈로건〉은 그동안 제작된 다른 엑스맨 영화와는 다르다. 엑스맨은 기본적으로 특수한 능력을 가진 영웅들이 악당들과 싸워 위기에서 세계를 구해내는 이야기였다. '울버린' 스핀오프 두 편은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지만, 어쨌건 악을 제거하고 영웅의 풍모를 뽐내는 호쾌한 액션영화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히어로의 운명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무게와 어떤 초능력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절대적인 빌런 '세월'이 주인공들을 압박한다. 거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으킨 끔찍한 사건들을 더해 이들을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생지옥의 시간 안에 던져놓고 출발하는 이야기다.

  • 허경
  • 입력 2017.03.03 12:10
  • 수정 2018.03.04 14:12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로건〉이 개봉했다. 엑스맨 프랜차이즈의 9번째 작품이고, 지난 울버린 영화인 〈더 울버린〉에서 4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와 〈엑스맨 : 아포칼립스〉가 있었다. 휴 잭맨은 이 영화가 자신의 마지막 울버린 역할이라고 말했다. 패트릭 스튜어트도 옆에서 'ME, TOO'라고 받았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당찬표정의 소녀(라고 부르기에도 아직 앳되어 보이는)가 있다. 〈로건〉은 그동안 제작된 다른 엑스맨 영화와는 다르다. 엑스맨은 기본적으로 특수한 능력을 가진 영웅들이 악당들과 싸워 위기에서 세계를 구해내는 이야기였다. '울버린' 스핀오프 두 편은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지만, 어쨌건 악을 제거하고 영웅의 풍모를 뽐내는 호쾌한 액션영화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히어로의 운명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무게와 어떤 초능력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절대적인 빌런 '세월'이 주인공들을 압박한다. 거기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으킨 끔찍한 사건들을 더해 이들을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생지옥의 시간 안에 던져놓고 출발하는 이야기다.

영화의 예고편이 공개됐을 당시 이걸 '히어로 무비'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처절한 분위기와, 무엇보다 BGM으로 깔린 쟈니 캐시의 'HURT'는 돌이켜 생각하니 마치 영화의 내용을 함축한 것 같은 생각이들 정도로 잘 어울렸다.(궁금하신 분은 'HURT'의 가사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우울한 이야기라는 것은 아니다. 제임스 맨골드는 전작인 〈더 울버린〉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무시무시한 액션이 있지만 이야기와의 결합이 매끄러워 튀지 않고, 캐릭터들의 사정을 이용한 꽤 독창적인 액션씬도 존재한다. (브라이언 싱어가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에서 가장 빠른 액션을 멋드러지게 보여줬다면, 〈로건〉은 영화 역사에서 가장 느린 살인을 보여준 영화가 되지 않을까?) 또한 유사 부자, 부녀 관계에서 오는 감정적 울림 또한 적지 않지만, 직접적이지 않아 과한 조미료로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 컨트롤에 적잖이 공을 들인 모습이다.

마블 영화에서 항상 지적되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다. 매력없는 빌런이 바로 그것이다. 엑스맨 프랜차이즈의 바로 전작인 〈엑스맨 : 아포칼립스〉 역시 용두사미라는 야유를 많이 받았고, 마블이 다루는 거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문제다. 〈로건〉도 그런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확실히 영화에 빌런 비슷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도널드 피어스(보이스 홀브룩)와 잰더 라이스 박사(리처드 E. 그랜트)가 허탈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엔 '울버린'이 없다. 그렇기에 저 두 캐릭터 역시 악당이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빌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운명 속에서 로건에서 로라를 데려다 주는(물론 그 과정에서 굉장한 고통이 수반되지만) 전달자이며 이 영화에서 제시하는, 찰스와 로건에겐 지옥과 동의어로 써도 좋을 만큼 강력한 빌런인 '시간'과 '세월'에서 해방시켜주는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힐링팩터'라는 불사의 능력으로 시간을 버텨야 했던 한 영웅이 어떻게 평화로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인류를 몇 번이나 구했지만 평생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편히 눈 감을 수 있는 묫자리를 만들어주는데 성공한다. 그가 눈 감고 난 후에 로라의 입에서 발화되는 'DADDY'는 190여년(설정상 로건의 나이) 동안 살육의 한 가운데서 괴로웠던 로건을 보내는 마지막 말로 충분하다. 영화의 전체톤은 처절하고 비극적이지만, 가슴에 나무가 박혀 죽어가는 그의 표정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에는 클래식 서부영화 〈셰인(SHANE)〉의 대사가 두 번 언급된다. 대사를 모두 기억하진 못하지만 대략 "사람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떠난다. 다시 이 계곡에 총성은 울리지 않을 것이다." 라는 내용이다. 이 인용은 두 가지를 알려준다. 하나는 로건이 다신 싸울 일이 없을 거란 점이다. 그럴 수밖에. 부활은 그의 능력 밖의 일이다. 다른 하나는 앞으론 로라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란 점이다. 사람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다른 곳에서 다른 사연을 이유로 클로는 주먹을 관통해 나올 것이다. 퍼스트 클래스의 괜찮은 퇴장이다. 이후에도 엑스맨 영화는 나올 것이다. 이 작품이 프랜차이즈에 끼칠 영향이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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