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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유럽에도 단팥빵이 있을까?

ⓒ한겨레 박미향

유럽엔 단팥빵이 아예 없다. 처음엔 황당했다. ‘어떻게 빵집에 단팥빵이 없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단팥빵 찾아 삼만리를 했지만 없었다. 당연했다. 단팥빵은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 빵이다. 낯선 빵에 기겁하던 일본인을 사로잡은 게 단팥빵이었다.

서양 문물과 함께 처음 들어온 빵을 맛본 일본인은 호불호가 갈리는 게 아니라 일치단결해 낯설어했다. 생경한 맛이었다. 아무 맛도 안 나는 밀가루 덩이를 왜 먹어? 그랬다. 당연했다. 원래 빵은 유럽에서 주식이지만, 아시아에선 밥이 주식이었다. 밥과 반찬이 아닌 음식은 모두 간식이었다. 빵도 그랬다. 간식이어야 했다.

제빵사인 기무라 야스베에는 1869년 도쿄에 처음으로 서양식 빵집을 열었다. 메이지 시대였다. 기무라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일본 사람들이 빵을 먹게 할까? 빵을 발효시키는 이스트 특유의 시큼한 향에 일본 사람들은 기겁했다. 외국인이 처음 맛본 청국장 한입에 기절하는 것처럼. 기무라는 온갖 빵을 만들고 테스트했다. 그러다 문득 기가 막힌 생각이 머리를 쳤다. ‘단팥이야. 일본인이 좋아하는 단팥을 넣어보자.’

아이디어는 중국 찐빵에서 나왔다고 했던가? 기무라는 빵 속에 단팥을 넣어 만두처럼 오므렸다. 발효도 일본인에겐 낯선 향을 풍기는 이스트 대신 친밀한 누룩을 썼다. 수도 없이 실패했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빵은 오븐에 구워야 빵이다. 뜨거운 공기로 익힌다. 뜨거운 물이 뿜어내는 수증기로 익히는 찐빵과 달랐다. 누룩으로 발효시킨 빵이 오븐에서 제대로 부풀지 않았다. 수도 없이 굽고 또 구웠다. 햇수로 6년이 걸려 성공했다.

1874년 새로운 빵이 탄생했다. 바로 단팥빵이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난 빵이랄까. 퓨전 빵이었다. 일본인은 좋아했다. 기무라는 일본 왕실에 단팥빵을 헌납했다. 단팥빵 가운데를 꾹 누른 뒤, 그 위에 소금에 절여 말린 벚꽃을 얹었다. 일본 왕실 반응은 뜨거웠다. 왕실의 사랑을 등에 업고 단팥빵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단팥빵은 절묘하게 일본인의 입맛을 강타했다.

단팥빵은 훗날 한국 사람들을 빵의 세계로 안내하는 효자가 되기도 했다. 내가 처음 홀딱 빠진 빵도 단팥빵이었다. 일본 특유의 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빵이 속속 새로 나타났다. 크림을 빵 속에 넣었고(크림빵), 카레를 넣고 빵을 튀겼다(카레빵). 바게트 위에 명란을 얹었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빵과 만나 새로운 빵이 탄생했다. 입맛이 다르니 빵맛도 달랐다.

우리가 먹는 유럽 스타일 빵도 대개 유럽 빵이 아니라 이름만 같은,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바꾼 빵이다.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빵은 대개 일본 빵이다. 스콘도 치아바타도 이름만 같을 뿐 맛이 서양과는 조금 다르다. 한국 제과제빵 자격증 시험에도 등장하고 제과점에서 흔히 만나는 많은 빵이나 케이크가 유럽엔 없다.

내가 단팥빵을 처음 만들어본 건 국내 제과점에서 일할 때였다. 단팥빵에 앙금을 넣기는 만두 빚기와 비슷하다. 동그랗게 만 빵 반죽 안에, 아이스바에 꽂는 넓적한 막

대기처럼 생긴 작은 주걱인 ‘앙금 헤라’로 앙금을 넣는다. 왼손으로 반죽을 팽이 돌리듯이 돌리면서 헤라로 앙금을 밀어 넣는다. 너무 많이 넣으면 말캉말캉한 빵 반죽은 옆구리가 터지면서 앙금을 뱉어낸다. 안 터졌다 싶으면 한쪽으로 앙금이 쏠리기 일쑤다. 10년 훌쩍 넘게 제빵업계에 몸담아 빵 반죽으로 원반 돌리기도 수월하게 하는 한 선배는 한숨을 쉬면서 내 반죽을 뺏어갔다. 팥 터지듯이 내 속도 터졌다.

초콜릿으로 ‘해피 버스데이’(Happy Birthday)를 궁서체로 쓸 수 있고, 생크림으로 장미도 만들 수 있지만, 단팥빵에 단팥을 제대로 넣을 수는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단팥빵이 싫었다. 그 좋던 단팥빵이 ‘원수’가 됐다. 꿈에 헤라를 들고 앙금과 씨름하다 깨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단팥빵을 안 만드는 빵집에서 일하기로. 좋아하는 사이일수록 거리가 필요하다. 사 먹는 단팥빵이 좋았다. 단팥이 너무 적어서, 단팥이 너무 많아서, 단팥이 너무 적당해서. 모든 단팥빵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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