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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낸 지구인들이 있었다

영화 '컨택트'가 2월 19일 기준 60여 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크게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나름 흥행 중이다. 네이버 영화에서는 관람객 평점 8.44, 기자, 평론가 평점 7.29로 좋은 평가도 받고 있다. 지구에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나타나고, 그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신선한 재미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만약 우리가 '지구'와 '인간'을 알리기 위해 외계의 존재에게 우주선을 만들어 보낸다면, 무슨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알려야 그것을 접한 외계인이 덜 혼란스러울 수 있을지 말이다. 놀랍게도, 약 40년 전에 이런 고민을 했던 과학자들이 있었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2호에 골든레코드를 만들어 붙인 사람들 얘기다. 그들이 레코드를 만들며 신경 쓴 3가지를 골라 '컨택트'와 비교해보았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은 이렇게 반복된다. 영화를 통해서건, 과학을 통해서건.

1. 외계인이 침공해오진 않을까?

보이저 1,2호는 본래 1977년 발사돼 태양계의 행성과 위성을 조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우주선이었다. 다만 조사 후 회수가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태양계 바깥을 유영해야 하는 운명이었는데, 이 점에 착안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지구'와 '인간'에 대한 정보를 레코드에 기록해 우주선 표면에 붙일 생각을 한다. 우주를 계속해서 떠돌 보이저 1,2호를 혹시라도 외계인이 발견하게 된다면, 한때 지구란 행성에 인류가 '있었음'을 알리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계획이 알려졌을 때 제일 처음 나왔던 문제제기는 "호전적인 외계인이 그 정보를 발견할 경우"에 대한 우려였다. 우리가 혹 침공 의도를 가진 외계인에게 자진해서 유용한 정보를 갖다 바치는 꼴이 되지 않을까를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안감은 간단한 사실 하나를 제시하는 걸로 해결되었다. 지금도 텔레비전 방송들이 쏟아내는 전파 신호는 빛의 속도로 우주로 뻗어나가고 있으며, 우주선을 발견하고 레코드를 해독할 정도의 외계인이면 그런 전파를 감지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따라서 어차피 노출될 정보라면 차라리 그들이 말도 안 되는 영상으로 인류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기 전에 선별한 정보를 보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유도하는 편이 낫지 않냐는 의견이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영화 '컨택트'에서도 맨 처음 외계의 우주선이 발견되었을 때 발생한 논쟁은 '그들이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미지의 존재와 처음 조우할 때 여러 감정 중 제일 먼저 두려움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좋든 나쁘든 이미 우리 존재와 위치를 우주에 선전해 왔고, 요즘도 매일 그러고 있다. 우리가 내보낸 전파들은...빛의 속도로 더 바깥으로 뻗어나가고 있으며...지구에 사람이 잔뜩 산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들이 우주로 쏟아 내는 신호는 엄청나게 먼 거리에서라도 우리의 도구와 비슷한 성능의 도구만 있다면 쉽게 감지할 수 있다...물론, 우리 문명의 위치를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라일 경의 불안이 정당한 우려인가 아닌가는 토론할 만한 주제이다. 그렇더라도 지금 와서 걱정하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차라리 외계인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책 '지구의 속삭임', 칼 세이건 외 저)

2. 무슨 정보를 담을까?

칼 세이건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외계인과 나누게 될 최초의 대화 내용이 '과학'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문화와 언어는 비행기를 타고 1~2시간만 가도 달라지지만, 물리학, 화학, 천문학 등 과학의 법칙은 우주 어디를 가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대화를 서로가 이해하고 있는 '같은 것'에서부터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골든레코드에는 수소 원자를 이용해 정의한 물리 단위, DNA 그림, 인체 사진과 같은 정보들이 포함된다. 그렇지만 골든레코드가 특별한 이유는, 인간이 ‘지성’만이 아닌 '감정' 또한 가진 존재임을 전달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이 선택한 방법은 '음악'이었다. 음악은 뚜렷한 화음과 같은 수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고, 수학은 우주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음악을 통한다면 우리의 감정이 오해 없이 전달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골든레코드에는 척 베리(Chuck Berry)의 ‘Johnny B Goode’부터 바흐의 ‘푸가’, 기원전 8-5세기 경 백아(伯牙)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중국의 '유수(流水)'까지 다양한 음악이 실리게 된다. 외계인이 우리의 음악을 듣고 우리를 이해하는 모습, 상상만 해도 무척 아름다운 일이다.

"소통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최초의 대화가 무슨 내용일지는 뻔하다. 그 대화는 두 문명이 틀림없이 공유하고 있을 법한 유일한 요소, 바로 과학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 어쩌면 두 문명은 서로의 음악이나 사회적 관습 따위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 데 더 흥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최초의 성공적인 대화는 과학에 관한 내용일 것이다...우리가 이전에 보냈던 메시지들은 인간이 무엇을 인식하고 어떻게 사고하는지에 관한 정보만을 담았다. 그러나...우리는 감정도 느끼는 생물이다. 그러나 감정은 소통하기가 더 어렵다. 하물며 우리와는 생물학적 조성이 전혀 다른 생명체라면 더더욱 어렵다. 내가 볼 때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려는 시도에 있어서 꽤 훌륭한 수단인 것 같았다...화음은 뚜렷한 수학적 특징을 띤다...그런데 우리가 아는 한, 수학적 관계는 어느 행성, 생물학, 문화, 철학에서든 유효해야 한다...1 더하기 1이 2가 되지 않거나...정수가 하나 더 끼어드는 문명은 상상할 수 없다...음악과 수학은 연관되어 있고 수학은 어디서나 보편적일 것으로 기대되므로, 보이저 레코드판에 담긴 음악은 우리의 감정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할지도 모른다." (책 '지구의 속삭임', 칼 세이건 외 저)

3. 언어는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영화 '컨택트'에서 언어는 무척 중요하게 다뤄진다. '헵타포드'라고 이름 붙인 외계인의 문자와 지구의 언어(정확히는 영어)를 서로 배워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의 주 내용을 이룬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낸 골든레코드에서 언어는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없었다. 워낙 지구의 언어가 많기도 하지만, 영화처럼 직접 만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서로의 언어를 배워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어는 외계의 존재에게 인사를 건넨다는 골든레코드의 목적에 맞게 '인사말'을 건네는 상징적인 역할을 맡는다. 우리 입장에선 적어도 외계인에게 "안녕하세요"란 말 정도는 직접 건네는 게 마음이 훨씬 편할 테니 말이다. 처음 레코드를 접한 외계인이 인간의 언어를 단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들은 레코드에 '안녕하세요'를 55가지 언어로 녹음한다. 당시 지구 인구 중 약 87퍼센트가 쓰는 언어가 반영된 것이다. 한 가지 인상 깊은 점은, 레코드 판에 실린 인사말 중 혹등고래의 인사말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록펠러 대학의 동물학자 로저 페인이 고래들은 노래를 통해 소통하며, 그 중 특수한 종류의 노래는 혹등고래들의 인사말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실제로 그가 녹음한 혹등고래의 노래는 외계에 보내는 '인사말' 중의 하나로 실리게 된다. 책에 의하면, 지구에서 외계로 메시지를 보낸 지적인 종은 인간을 제외하곤 혹등고래가 유일한 셈이다. 어쩌면 외계인들이 지구에 보내는 회신이 '혹등고래의 노래'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보이저 레코드판은 시각뿐 아니라 청각 메시지이기도 하므로, 자연히 아예 말로 된 인사를 담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외계 문명이-보이저 레코드판을 회수할 시점에-인간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알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그러나 그럴 확률은 아무리 잘 봐줘도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설령 그렇더라도...레코드 판 자체가 우리의 인사인 이상, "안녕"이라고 말하는 인사말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다...최소한 인류의 다수 인구가 사용하는 여러 언어들로 말하는 인사말이 포함되어야 했다...우리는...배타주의의 기미를 한 조각도 남기지 않게 위해서, 사람들의 인사말 속에 혹등고래들만의 "안녕"을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혹등고래는 지구에서 우주로 인사말을 보내는 또 하나의 지적인 종이 되었다." (책 '지구의 속삭임', 칼 세이건 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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