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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사랑이란

‘사랑’은 참으로 복잡 미묘한 감정의 집합체다. 가수 김현식은 그의 노래에서 사랑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에 울고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에 웃고

그것이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야

철부지 어렸을 땐 사랑을 몰라

세월이 흘러가면 사랑을 알지

그것이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야”

김현식의 노래 가사처럼 세월이 흘러가면 사랑을 알게 된다. 가사에는 생략이 되었지만 숱한 시행착오는 필수다. 그냥 세월이 흘러가는 것만으로 사랑이 깨우쳐지진 않는다. 지난한 사랑의 과정 중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것은 첫 도입 부분이다. 어떤 커플의 사랑에 대한 질문들도 대부분 첫 만남이나 초반 낭만적 순간에 집중되어 있다. 사랑을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것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저)

이 책에서 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 연애(연애 초기) 이후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이 이케아에서 두 종류의 다른 컵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협상(!)은 사소한 문제가 어떻게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케아에서 결렬된 협상으로 인해 이 둘은 서로 감정이 상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벌이는 협상만큼이나 신중하게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상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협상의 기술도 배워야 한다.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1. 우리가 낭만이라고 보았던 것

“여러 해가 지나고 또 여러 편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접한 후에야 라비는 몇몇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한때 그가 낭만이라 보았던 것-무언의 직관, 순간적인 갈망, 영혼의 짝에 대한 믿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워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을 유발했던 신비한 열정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사랑이 지속될 수 있음을, 유효한 관계를 위해서는 그 관계에 처음 빠져들게 한 감정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저)

중동 출신의 남편 라비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아내 커스틴은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그들이 낭만적 연애를 할 당시에는 몰랐던 차이점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라비와 커스틴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낭만적 연애와 일상 생활 사이 거리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로 간에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지킬 건 지키고 지나치게 본능을 드러내지 않았던 낭만주의적 연애가 일상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결혼하고 수년이 지나서야 라비는 이런 낭만주의가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들의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라비는 사랑이 열정보다 기술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깨닫는다. 사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의 약점과 불균형을 바로잡아줄 것 같은 연인의 자질들에 대한 감탄을 의미한다. 사랑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저)

2.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사람 탓을 하는 건 당연히 부조리 중에서도 부조리다. 하지만 이렇게만 본다면 사랑의 작동 법칙을 잘못 이해한 셈이다. 우리는 정말로 책임이 있는 권력자에게 소리를 내지를 수가 없기에 우리가 비난해도 가장 너그럽게 보아주리라 확신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저)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모든 분노를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불만을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만은 나의 불만과 불평을 고스란히 받아주고 이해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갓난아기도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는 떼를 쓰지 않는다. 같은 원리인 셈이다. 하지만 불평불만을 받아주는 입장으로는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나한테 왜…’라고 당황하며 억울해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서로의 불완전함을 수용할 때 삶은 이전보다 조금 더 완전해질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오기도 전에 밀가루 봉지는 거실 맞은편으로 날아간 뒤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벽에 퍽하고 부딪쳐 하얀 구름을 일으키고, 식탁과 의자들 위로 가라앉을 때까지 놀랄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략) 그녀가 2층으로 돌아간 뒤 라비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무릎을 꿇는다. 사방이 밀가루 천지다. 키친타월에 조심스럽게 물을 적셔 탁자 위와 의자들과 타일 틈새에서 그 많은 양을 훔쳐내다 보니 거의 한 롤이 다 들어간다. 그런 뒤에도 남아 있는 밀가루는 앞으로 몇 주 동안 눈에 띄면서 이 사건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그는 밀가루를 치우면서 한동안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기억을 불러낸다. 바로 이 여자와 결혼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이다.”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저)

3. 우리가 낭만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

“낭만주의 결혼관은 ‘알맞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우리의 허다한 관심사와 가치관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기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너무 다양하고 특이하다. 영구적인 조화는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저)

끝으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낭만주의(평범한 남녀가 어쩌다가 만나서 달달한 연애를 하고 마침내 결혼이라는 결승점을 통과해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뛰어넘으라고 주장한다. 또한, 상대방의 허약함과 슬픔에 감응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덜 부끄러워하게 되는 성숙한 사랑을 하라고 말한다. 성숙함에 이르는 길을 따라 걷다가 보면 두 사람은 불안, 배신, 토라짐, 갈등, 분노, 다툼, 비난 등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저자는 우리 모두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일상의 철학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라비가 느꼈듯이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단 기술에 가깝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의 기본은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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