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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치명적인 독극물 '워스트5'

김정남을 사망에 이르게 한 독극물 VX는 맛도 없고 냄새도 없다. 10밀리그램만 투여되면 사람이 죽는다. 1953년 영국에서 화학무기의 하나로 개발됐다. 신경세포간 중요한 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차단한다. 이 물질을 호흡으로 마시거나 눈이나 입, 코 등 점막으로 침투하면 전신의 신경 기능이 마비돼 숨진다. 1988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 화학무기로 사용해 수천명을 숨지게 했다. 워낙 잔혹한 고통을 강요해 1993년 국제협약에 따라 폐기토록 했다. 1996년 영화 '더 록(The Rock)'에서 악당들이 사용한 독가스도 VX다.

  • 비온뒤
  • 입력 2017.02.24 12:42
  • 수정 2018.02.25 14:12

김정남의 시신에서 치명적 신경 독가스인 VX이 검출됐다. 독극물하면 흔히 청산가리만 알고 있다.청산가리는 아직 맛에 대해 기술되어 있지 않다. 맛을 보고 말하려는 순간 죽기 때문이다. 유명한 청산가리의 역설이다. 그러나 실제 청산가리보다 훨씬 빠르고 독성이 강한 물질도 많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으로 수백년동안 왕가에서 사형수에게 사약으로 사용되어온 독극물은 비소다. 구토와 복통, 황달로 숨진다. 복어독에 들어간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처럼 자연계에 원래 존재하던 독극물도 있다. 호흡근육을 마비시켜 숨지게 한다. 그러나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공적으로 합성된 독극물이 나날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에선 독일에서 개발한 겨자가스가 독가스로 처음 실전에 투입됐다. 당시 전장에선 공포의 마늘냄새로 연합군들을 괴롭혔다. 김정남을 죽인 VX와 비슷한 사린가스도 있다. 1995년 일본의 옴진리교는 사린가스를 지하철에 살포해 수십명이 숨졌다.

은밀한 독극물도 많다. 팔레스타인 지도자 아라파트는 방사선을 만드는 폴로니움에 중독돼 숨졌다. 수개월동안 시름시름 앓다 죽게 만든다.

그렇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독극물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무엇일까? 인터넷으로 구글링하면많은 독극물 랭킹이 등장한다. 그러나 대부분 흥미 위주이며 학문적 근거가 취약하다. 비온뒤는 2016년 호주의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지에 실린 영국 버밍검대 화학과 사이몬 코튼교수의 칼럼을 선정하기로 했다. 더 컨베세이션지는 2011년 호주 멜버른에서 창간된 학술 미디어로 대학교수 등 검증된 지식인들이 의학과 과학, 인문학 등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비영리 언론기관이다. 코튼 교수는 지금까지 과학기술을 동원해 5가지 독극물 순위를 발표했다.

LD50가 중요한 지표로 활용됐다. 실험대상의 절반을 죽일 수 있는 용량이다. 가령 청산가리는 LD50이 체중 1kg당 6mg이다. 60kg이면 60밀리그램만 먹어도 죽는다는 뜻이다. LD50이 13mg/kg인 비소보다 독성이 강하다. 그러나 복어독인 테트로도톡신 앞에선 청산가리도 꼬리를 내려야 한다. LD50이 입으로 먹을 경우 체중 1kg당 300마이크로그램(1마이크로그램은 1백만분의 1그램)이며 혈관으로 주사할 경우 10마이크로그램에 불과하다. 청산가리보다 50배에서 1,500배 강력하다는 뜻이다.

청산가리보다 강력한 5개 독극물을 순위별로 살펴보자.

5위 리신(Ricin)

아주까리 식물에서 추출한 맹독성 물질이다. 런던에 살고 있던 불가리아 망명자 게오르기 마르코브가 리신으로 죽었다. 1978년 런던 워털루역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 다가와 오른쪽 허벅지 뒤를 우산 끝으로 찔렀다. 병원으로 옮겨갔지만 3일 만에 숨졌다. 부검 결과 허박지에서 백금과 이리듐 합급으로 만든 작은 구슬들이 발견됐고 이 속엔 소량의 리신이 들어 있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지만 소련 KGB의 소행으로 짐작된다.

리신은 아주까리 기름에서 추출된다. 식물성 당단백의 일종인데 입으로 먹을 경우 LD50이 1-20밀리그램으로 매우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다. 마르코브 경우처럼 근육에 찔러 혈액으로 침투할 경우 이보다 훨씬 작은 용량으로도 숨질 수 있다.

4위 VX

김정남을 사망에 이르게 한 독극물. 맛도 없고 냄새도 없다. 상온에서 호박색의 액체로 존재한다. 10밀리그램만 투여되면 사람이 죽는다. 1953년 영국에서 화학무기의 하나로 개발됐다. 신경세포간 중요한 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차단한다.

이 물질을 호흡으로 마시거나 눈이나 입, 코 등 점막으로 침투하면 전신의 신경 기능이 마비돼 숨진다. 1988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 화학무기로 사용해 수천명을 숨지게 했다. 워낙 잔혹한 고통을 강요해 1993년 국제협약에 따라 폐기토록 했다.

1996년 영화 "더 록(The Rock)"에서 악당들이 사용한 독가스도 VX다. 실제 1968년 미국 유타주 미군 기지에서 누출돼 인근 양 6천여마리가 죽은 사례도 있었다.

3위 바트라코톡신(Batrachotoxin)

남미 인디언이 사냥할 때 사용하던 독화살의 독인 큐라레와 유사하다. 큐라레는 식물에서 추출한다. 그러나 바트라코톡신은 사진에 나오는 남미에 서식하는 Phyllobates terribilis란 개구리 껍질에서 추출한다. LD50이 체중 1kg당 2마이크로그램에 불과하다. 근육과 신경의 나트륨 이온채널의 작용을 방해해 죽게 만든다. 나트륨 이온채널이 닫히면서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개구리를 사로잡아 사육하면 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야생의 먹이에서 독이 만들어진다고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조류학자 잭 덤바커가 30여년 전 파푸아 뉴기니의 한 새를 만진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만졌다가 입이 마비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이때 발견된 물질도 바트라코톡신이다.

개구리 같은 양서류뿐 아니라 지구 반대편 조류에서도 미량이지만 발견되지만 아직 어떤 먹이경로를 통해 만들어지는 밝혀진 바 없다.

2위 마이토톡신(Maitotoxin)

해파리나 플랑크톤 등 해양생물에게서 발견된 독소다. 바트라코톡신보다 LD50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토톡신은 매우 복잡한 화학구조식을 갖고 있어 아직 인공적으로 합성이 안되고 있다. 심장근육의 중요한 이온통로 가운데 칼슘채널에 작용해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1위 보툴리눔(Botulinum)

우리가 흔히 보톡스로 알고 있는 물질이다. 보톡스는 상품명이며 원래 이름은 보툴리눔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극물로 동의하는 물질이다. LD50가 1-5ng(나노그램=10억분의 1그램/kg)으로 가장 낮다. 가장 작은 양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70kg 성인을 100만분의 1그램만 있어도 죽일 수 있다. 인류를 100억명이라 가정하면 이론적으로 보툴리눔 10kg만 있어도 인류 전체를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가공할 독극물은 18세기 초 독일에서 부패한 소시지에서 처음 발견됐다.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이란 세균이 상한 통조림 소시지 등에서 만들어내는 단백질 독소다. 아세틸콜린이란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차단해 호흡근육 등 근육을 마비시킨다.

아이러니는 이 독극물이 오늘날 전세계에서 미용 목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하는 약물이라는 것이다. 얼굴 주름을 없애는 것은 다한증과 사시, 요실금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로 응용되고 있다. 2021년까지 전세계 보툴리눔 관련 시장이 133억달러, 우리 돈으로 14조나 된다는 전망마저 있다.

물론 미용목적이나 질병치료로 사용할 땐 원액보다 수억 배 이상 희석해서 사용하므로 안전하다. 약과 독은 종잇장 차이란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 이 글은 의학전문채널 <비온뒤> 홈페이지(aftertherain.kr)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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