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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의 역사는 정말이지 복잡하다

연예인 팬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돈을 모아 값비싼 선물을 주는 것을 ‘조공’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억대 선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한 부작용이 드러나자, 이제는 공익 기부나 역조공이 시도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조공’이라는 단어가 어감이 좋게 들리진 않는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조공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조공 이야기에 꼭 등장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조공의 역사를 살펴보자.

1. 중국 명나라는 무역이 왜 사라졌을까?

“중국처럼 강력한 중앙집권의 역사가 오랜 곳에서는 민간 주도를 기본으로 하는 무역이 활성화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거니와 당시는 대외 무역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바로 왜구 때문이었다. …. 명 초기에는 해안 지방의 주민들까지 왜구에 가세했으므로 피해가 더욱 가중되었다. 그래서 주원장은 1371년에 해안 주민들에게 일체의 사무역(私貿易)과 해외 출항을 금지하는 해금령(海禁令)을 내렸다. 송과 원을 거치면서 활발해졌던 민간의 대외 무역은 이 해금령으로 인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책 ‘종횡무진 동양사’, 남경태 저)

왜구가 기승을 부렸기 때문에 명나라 건국 초기부터 해금령을 내린다. 중간중간에 해제된 적이 있다고 하지만, 기본 정책은 바다를 통해 무역이나 교류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적인 영역에서 일체 무역이 금지되어 실제로 무역은 국가만이 할 수 있었다.

2. 조공도 무역이라 할 수 있을까?

“사무역이 금지되었으니 남은 것은 국가의 공식적인 무역밖에 없다. 그런데 말이 공식적인 무역일 뿐 정상적인 무역은 아니었다. …. 따라서 명은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나라만을 대상으로 무역을 허가했다. 이것이 조공 무역이다. 조공 무역의 골자는 “공(貢, 공물)이 있으면 사(賜, 하사품)가 있다.”라는 것이었다. 즉 주변국 입장에서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것이고, 중국 입장에서는 임금이 신하에게 물건을 하사하듯이 조공의 대가를 내주는 것이다.”(책 ‘종횡무진 동양사’, 남경태 저)

중국은 중화사상에 입각한 조공 제도를 실시한다. 이것이 국가가 행하는 공무역이다. 조공 무역의 핵심은 주변 국가가 중국을 섬기느냐이다. 존경의 뜻을 담아 조공을 바치면, 그에 대한 답례로 명나라는 하사품을 내린다. 자유로운 무역은 아니지만, 기브 앤드 테이크 원리가 적용되니 조공도 무역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3. 조선도 명나라 조공을 따라 했었나?

“이런 무역 방식은 조선도 그대로 답습했다. 중국을 본떠 조선은 주변국인 일본이나 여진에 대해 조공을 바치면 그 대가를 하사한다는 식의 무역에 임했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첫째, 조선은 중국에 사대하는 처지였으므로 그 자신도 조공을 바치는 위치였다. 둘째, 조선의 생각과 달리 일본과 여진은 조선을 상국으로 받들지 않았다. 셋째, 위(중국)로는 바치고 아래(일본, 여진)로는 베푸는 조선의 무역은 만성 적자에 시달렸다.”(책 ‘종횡무진 동양사’, 남경태 저)

조선도 조공 제도를 받아들였다. 명나라를 섬기며 조공을 바쳤다. 주변에 우리보다 못하다고 여겼던 국가들에게는 조공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저자는 조선이 명, 일본, 여진 등 어느 나라하고도 밑지는 장사를 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공 무역이 유지되려면, 조공을 받는 쪽 국가의 힘이 상당히 강해야 한다.

4. 조공 무역이 무너진 후 밀무역으로 버텼다고?

“명의 국력이 강할 무렵에는 이 조공 무역도 그런대로 무역의 구실을 했다. 그러나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중대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국력이 약화되고 조공 무역이 유명무실해지자 밀무역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된 것이다. …. 17세기 초반부터 중국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유럽 국가들은 중국으로부터 비단과 면직물, 도자기, 차 등을 수입하고 은으로 지불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그 덕분에 명의 은 가뭄이 해갈되었다.” (책 ‘종횡무진 동양사’, 남경태 저)

앞서 말한 대로 조공 무역이 유지되려면 명나라의 힘이 상당해야 한다. 그런데 명나라 후기에 나라가 기운다. 더 이상 조공 제도가 있을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유럽 국가들이 활발히 아시아 지역에 접근하면서, 중국 물품을 사가고 은으로 그 대가를 지불한다.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은 밀무역이었지만, 명나라에게는 오랜 가뭄 끝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은납제에 필요한 은도 결국 밀무역으로 충당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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