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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인간이 인간이 되는 기초이다

"기본소득"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의 문을 열어주고, 자유에 관해서 생각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돈 몇 푼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삶을 포기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돈은 그리 크지 않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물질적 풍요는 큰 범위가 아닌 아주 기초적인 것이다. 매년 1,500조 가까운 돈이 돌고 있고, 한 해 예산만 하더라도 400조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많은 이들이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이 없어서 절망하고 삶을 포기한다.

ⓒlovelyday12 via Getty Images

글 | 김정로 박사(국가혁신을 위한 동반성장포럼 연구위원)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정운찬 전 총리는 한국형 실사구시의 기본소득을 들고 나왔다. 대선출마를 포기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도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맞서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를 포퓰리즘 정책으로 몰아세우며 이목을 끌었다. 각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나름 활발한 토론도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큰 정책적 이슈가 될 소지가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본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한국사회를 새로운 단계로 올려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기본가치다. 인간은 자유롭기 위해서 의식주생활을 하며 저마다 배우고 자기발전을 위해 분투한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자유는 아직 추상적이고 제한적이다. 자유도 역사발전과 사회제도에 의해 규정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사회이기 때문에 자유도 결국 돈과 관계된다. 자본주의는 엄청난 경제적 생산력의 발전을 가져왔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 사회구성원이 기본적인 의식주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70%에 가까운 학생들이 대학교육까지 받을 수 있게 된 것이고, 어르신들이 100세까지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고, 어느 개인이 사회의 부를 독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사회적 생산력"이 되었다. 주식회사의 형태를 낳은 것도 이러한 사회적 생산력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제도와 자유경쟁 시장경제를 낳았다. 최소한의 의식주생활이 뒷받침되면서, 사회는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전 국민이 선거제도를 통해 제한적이나마 국가의 운영과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문명의 최고의 역사적 성과이다. 문제는 자유경쟁 시장경제인데, 말이 자유경쟁이지 결국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돈은 경쟁 아닌 경쟁을 통해 소수에게 독점되는 게 사회의 일반적 법칙이다. 보편성을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 제도와도 어울리지 않게 되었고 이른바 "기득권과 양극화 현상"을 만들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길항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경제의 법칙이 사회를 지배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제도적 형식에 불과하고 시장경제가 사회를 지배하는 본질적인 힘이다. 결국 인간의 자유는 기득권과 양극화에 의해 제한되고 돈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자유를 위해 오랜 여정을 뛰어왔다. 길게 볼 것도 없이 조선사회와 비교해보자. 조선사회에서 인격적 주체는 오직 국왕뿐이고, 일반 백성은 모두 왕의 인신적 구속물에 불과했다. 누구도 자유를 말하기 힘들었고,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규정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현대적 헌법에 기초한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자유는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 근대화와 민주화의 발전으로 우리 국민은 많은 부분에서 자유를 쟁취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인간의 자유 앞에는 넘어야 할 벽이 가로놓여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생활이 가능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교육까지 받게 된 사회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본소득"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의 문을 열어주고, 자유에 관해서 생각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돈 몇 푼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삶을 포기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돈은 그리 크지 않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물질적 풍요는 큰 범위가 아닌 아주 기초적인 것이다. 매년 1,500조 가까운 돈이 돌고 있고, 한 해 예산만 하더라도 400조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많은 이들이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이 없어서 절망하고 삶을 포기한다. 그들도 국민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면서,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자식들을 낳아 잘 키우려고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가난한가? 분명 아닐 것이다. 돈은 차고 넘친다. 다만 저 그늘진 골목에까지 뻗치지 않을 뿐이다. 가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이 있는 곳이라면 우리의 생산력과 그 결과인 돈이 찾아가도록 하는 게 상식이다. 이것이 헌법의 기본정신일 것이다. 그리고 "부의 소득세"를 돌려주기 위해 골목골목 찾아가는 "국가의 보이는 손"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인류의 역사는 계속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확대해온 여정이다. 지금의 이런 물질적, 제도적 조건 위에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더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한 노력이다. 적어도 생로병사의 인간의 자연스런 생애과정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 넘쳐나지만 양극화되어 있는, 돈 때문에 절망하고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고, 보따리 하나 둘러메고 고향길을 떠나 "잘 살아보겠다"고 노력해온 우리 국민들의 근대화와 민주화 성과를 온전히 국민 모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과 자유에 관해 성찰할 수 있도록 사회가 성숙해져야 한다. 나만 잘사는 게 아니라 함께 잘살고, 나아가 함께 나누고 스스로 자유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의 기초가 "기본소득"이다.

우리사회는 이를 위한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이미 기본소득과 비슷한 성격의 기존의 성과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이다.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는 비록 실행은 늦었지만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 국민들의 평균수명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늘려놓기도 했다. 전국민의료보험에서도 확인되듯이 하면 된다. 우리 능력에 어려운 것도 아니다. 노령보험도 괜찮다.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 월 20만원 정도의 현금을 나누는 것인데,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노령보험에서도 확인되듯이 하면 된다. 그렇다면 다음은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도 하면 된다. 우리 능력에 비추어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로 시작할 것인지 사회구성원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아마 월 40~50만 원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그 이하이면 개인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되고, 그 이상이면 재정에 아직은 무리가 갈지 모른다. 그리고 기본소득 안에 아동수당과 노령수당을 발전적으로 포함하면 될 것이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교육비감면을 통해 보전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 시장은 연간 130만 원 정도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재명 시장답지 않게 너무 작아 보인다. 정운찬 전 총리가 먼저 이슈를 제기했고 또 경제전문가이기 때문에, 전문가답게 구체적인 토론에 불을 지폈으면 싶다. 시작이 반이다. 이번 대선에서 첫 번째 이슈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당선이 되든지 반드시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기본소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후보들이 걱정스럽다. 역사인식이나 시대정신이 부족해보이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있는지 의심된다. "기본소득", 이것 하나만 해결해도 아마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남을 것이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한국사회를 세계에 우뚝 세우는 위대한 국격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일류국가라는 나라들도 감히 도입하기 쉽지 않은 매우 진보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입하는 순간 우리 사회의 활력과 세계사에서의 위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문제나 사회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모든 사회 정치적 제도를 바꾸게 될 근본적인 사안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하게 되면 국가 및 사회제도의 모든 부분을 그에 맞는 방향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우선 이제까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의 근대를 총체적으로 반성하는 계기가 되고, 인간의 규정을 물질적 생산과 노동에서 자기발전과 자유로 옮겨놓을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인간의 삶의 의미와 자유에 관해 성찰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과정은 물론 삶의 목적과 의미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된다. 드디어 우리 인류가 인간이 되는 순간이다. 한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시발점에 서게 된다. 이후에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단단한 국가제도가 부드럽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로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바꾸지 못해 안달하고 있는 현행 헌법의 제10조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이래도 기본소득을 도입하지 않겠는가?

김정로

고려대 졸, 베를린 훔볼트대학과 성균관대 박사과정,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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