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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작년 한 해 일자리를 떠난 사람도 560만이나 된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4%에 불과하고, 영세 자영업자들의 반은 거의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오바마에 열광했던 미국의 청년, 노동자들이 이 민주당의 이중성과 악화된 노동시장을 체험하고 나서 클린턴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듯이 한국의 장년 불안계층도 김대중, 노무현 두 민주정부를 이미 겪었기 때문에,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서 과연 자신의 삶이 변할지 깊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 김동춘
  • 입력 2017.02.22 05:48
  • 수정 2018.02.23 14:12
ⓒ연합뉴스

촛불시위는 정말 많은 것을 이뤄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의를 이끌어 냈고, 특검의 수사를 압박했으며, 급기야 삼성 이재용을 구속하는 데까지 오게 만들었다. 탄핵이 인용될지 알 수 없으나,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지난해 말 이후의 정국은 '촛불'이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탄핵이 인용되는 순간 곧바로 대선 정국이 열릴 것이다. 촛불은 꺼지고 '광장'의 시민이 각 대선 후보 진영으로 쪼개질 것이다. 그런데 촛불시민의 '행동'이 사라진 공간, 즉 대선 정국은 지금까지 촛불시위에 나오지 않았거나 나오지 못했던 사람들에 의해 좌우될지 모른다. 그들의 개인적 '선호'가 언론상의 대선 후보 지지율이라는 '수치'로....

그중에서도 나는 일하느라 바빠서, 박근혜 탄핵이 자신의 삶을 바꾸어줄 것 같지 않아서, 시위를 관망하고 있었을 사람들을 특별히 주목한다. 아마 그들은 촛불시위에 나온 사람들보다도 대체로 더 힘겹게 살고 있고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대다수의 실업 청년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알바생들, 영세 자영업자들, 그리고 빈곤 노인들이 그들이다. 그중 청장년들의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돌아가는 판을 보면 올해 대선은 야권 후보 간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큰데, 이들 관망하는 불안한 청장년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 선거를 보면 샌더스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클린턴이 후보가 되는 순간 투표에 참가할 이유를 상실했고, 그중 저학력 백인 장년 노동자들은 일자리 제일주의를 내건 트럼프 쪽으로 대거 돌아섰다. 사실 지금 미국, 영국, 일본 등 세계 모든 나라에서는 불안 계층이 지지한 우파 국수주의가 득세를 한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빈부 격차, 고용 불안이 일상을 옥죄는 상황에서, 그들은 말로는 민주주의를 떠들지만 자신의 기득권은 전혀 놓지 않았던 중도좌파 혹은 급진 자유주의 세력에게 등을 돌렸다. 이들 나라의 불안 계층은 극도의 인종차별 정책이나 전쟁까지도 받아들일 태세다.

한국은 어떤가?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작년 한 해 일자리를 떠난 사람도 560만이나 된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4%에 불과하고, 영세 자영업자들의 반은 거의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오바마에 열광했던 미국의 청년, 노동자들이 이 민주당의 이중성과 악화된 노동시장을 체험하고 나서 클린턴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듯이 한국의 장년 불안계층도 김대중, 노무현 두 민주정부를 이미 겪었기 때문에,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서 과연 자신의 삶이 변할지 깊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특검의 활약으로 이재용이 구속된 사실이 그들에게 큰 기대를 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재벌 주도 성장주의의 복음을 퍼뜨리면서 경제 양극화 극복, 노동 보호, 사회적 연대,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던 모든 집단을 '좌파'로 몰았던 세력이 여전히 강대한 힘을 갖고 있으며, 정권은 위기에 처해도 자신의 일터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정권 교체가 되면 일단 기대를 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극히 불투명한 국내외 경제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오랜만에 '열려진 공간'에서 거침없는 요구와 항의를 표출하다가 크게 실망해서 또다시 기대를 접을 가능성도 크다.

지금 어떤 당도, 어떤 대선 후보도 그들의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그냥 두면 그들은 장차 트럼프와 같은 우파 선동꾼을 따라갈 것이다. 그래서 탄핵 이후의 정국에서 대선 후보들은 급조된 공약 대신에 그들에게 신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 논의로 승부를 걸고, 이들이 발언할 공간을 열어야 한다. 두 야당은 과거 집권기에는 왜 재벌 개혁, 법 적용, 비정규직 보호 조치를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 설명해야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급조된 일자리 공약보다는 노동/복지/교육을 하나의 세트로 묶은 일관된 사회경제 개혁 모델을 제시해야 그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다.

기성 정당, 기성 대선 후보를 통해 자신의 요구와 이익을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불안 노동층을 지역, 노조, 온라인 정책 토론방으로 반드시 이끌어내야 촛불시위는 한 단계 진화할 수 있고, 한국 민주주의는 질적으로 심화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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