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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시 애플렉의 아카데미 수상이 불편할 것 같은 이유

다들 아시겠지만 애플렉은 2010년 같이 일했던 동료 여성영화인들로부터 성추행을 이유로 고소당했다. 이 사건은 합의로 종결되긴 했지만 여전히 불쾌하며 이 사건을 알게 된 뒤로는 자연인 애플렉의 얼굴은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보기는 어렵다.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상 매체에서 매력적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점은 우리가 영화나 시리즈에서 매료되고 감정이입한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캐릭터와 분리된 본체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몰입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에 무시할 수 없는 결함이 있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 듀나
  • 입력 2017.02.21 12:28
  • 수정 2018.02.22 14:12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리 챈들러를 연기한 케이시 애플렉.

몇 주 전에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이 있었다. 업계 사람들은 이 시상식을 눈여겨 볼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상을 받은 배우들은 대부분 몇 주 뒤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같은 상을 받기 때문이다. 적어도 최근 10년 동안은 그랬다.

올해 수상 결과 중 사람들을 가장 놀래켰던 건 남우주연상이 〈울타리〉의 덴젤 워싱턴에게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다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이시 애플렉이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미국의 거의 모든 남우주연상을 휩쓸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배우조합상에서 발목이 잡힌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덴젤 워싱턴이 케이시 애플렉보다 더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일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배우는 스포츠 선수가 아니다. 후보에 오른 배우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줄을 세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 분위기가 있고 흐름이 있다.

몇 가지 설명을 할 수 있다. 올해는 유달리 흑인 배우들이 강세였는데, 이는 〈문라이트〉, 〈히든 피겨스〉와 같은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전 아카데미의 인종주의 논란과 최근 미국의 정치적 상황이 결과에 어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그럴싸한 설명은 케이시 애플렉 자연인에 대한 반발감이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애플렉은 2010년 같이 일했던 동료 여성영화인들로부터 성추행을 이유로 고소당했다. 이 사건은 합의로 종결되긴 했지만 여전히 불쾌하며 이 사건을 알게 된 뒤로는 자연인 애플렉의 얼굴은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보기는 어렵다.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상 매체에서 매력적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점은 우리가 영화나 시리즈에서 매료되고 감정이입한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캐릭터와 분리된 본체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앨런 릭맨이 〈다이 하드〉에서 그가 연기한 한스 그루버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이 아니라고 실망하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그 반대는 문제가 된다. 우리가 사랑하고 몰입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에 무시할 수 없는 결함이 있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분이 비평가라면 답은 쉽다. 배우가 아무리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해도 일단 그를 잊고 오로지 연기만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완벽한 객관성을 관객들이나 동료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그런 객관성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건 아무런 선입견도 없고 정보도 없는 백지 상태의 투명한 관객을 대입하지 않으면 그냥 무의미하다. 양자역학 사고실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배우의 존재가 그렇게 객관적일 수 있긴 할까. 캐릭터와 본체를 분리하는 건 여전히 필요한 자세지만, 우린 그러는 동안에도 조금 더 큰 그림 속에서 그들을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덴젤 워싱턴의 배우조합상 수상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예측은 다시 어려워졌다. 이건 좀 안심되는 일이기도 하다.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가장 끔찍한 에피소드는 〈룸〉에서 성폭력 희생자를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브리 라슨이 케이시 애플렉을 남우주연상 수상자라고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 민망한 순간을 담은 캡처 사진이 인터넷을 떠돈다. 이 그림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되풀이 된다면 그게 시상식을 보는 수억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게 될까. 우리가 굳이 그 그림을 또 볼 필요가 있을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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