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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선을 주시하는 이유

유로존과 EU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르펜의 당선은 유럽통합 65년 역사의 종언을 의미한다. 영국 없이도 EU는 굴러갈 수 있지만 프랑스가 빠진 EU는 상상할 수 없다. 그의 당선은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에서 시작된 포퓰리즘과 보호주의, 고립주의의 쓰나미가 프랑스의 둑을 무너뜨리면서 유럽대륙에 본격 상륙한다는 뜻이고, 나치즘과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쳤던 1930년대로 회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평화와 협력의 시대가 끝나고 분열과 대결의 시대가 온다는 의미다.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미래가 2017년 프랑스 대선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배명복
  • 입력 2017.02.21 10:48
  • 수정 2018.02.22 14:12
ⓒRobert Pratta / Reuters

작년에 나는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Brexit)'가 무산될 것으로 예측해 망신을 당했고,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낙승을 예상해 또다시 망신을 당했다. 제 이름 걸고 신문에 글을 쓰는 국내외 칼럼니스트 중 제대로 예측한 사람보다 헛다리 짚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해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니 망신이 분명하다. 개인적 희망을 예측으로 분식(粉飾)했던 게 아닌가 하는 뼈아픈 반성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기일이 다가오면서 조기대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섣불리 예단할 일은 아니지만 일각의 예상대로 탄핵소추안이 인용된다면 벚꽃 대선이든 라일락 대선이든 조기대선은 눈앞의 현실이 된다. 4월 23일 1차 투표, 5월 7일 2차 투표(1차 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상위 득표자 두 명을 놓고 벌이는 결선투표)로 나누어 실시되는 프랑스 대선과 얼추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도 대선이 치러지는 셈이다.

두 나라 대선을 앞두고 다시 고민에 빠졌다. 추가적 망신을 피하려면 함부로 결과를 예측하는 만용을 자제해야 마땅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예측해 보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려워서다. 한국이나 프랑스 대선에서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당연히 내 능력 밖이다. 그럼에도 프랑스의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대선후보, 마린 르펜이 최종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는 데 결연히 한 표 던진다.

3연속 망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르펜의 실패를 감히 예측하는 까닭은 역설적으로 그가 성공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당선만큼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또다시 희망과 예측을 혼동하는 우를 내놓고 범하는 것이다. 르펜이 '마담 라 프레지당트'가 되는 사태는 프랑스와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에 재앙이다.

르펜은 1차 투표를 1위로 통과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먼저 링에 올라가 누구든 덤벼보라며 기세를 올리고 있는 형국이다. '프랑스 우선주의(La France d'abord)'를 내세우며 그가 제시한 144개 공약은 민족주의·보호주의·국가주의·인종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외국인을 고용하는 기업에 특별세를 물리고, 불법이민자를 강제추방하고, 외국인에 대한 무상교육과 의료 혜택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달콤한 공약으로 세계화의 피해자인 근로자·서민층을 파고들어 블루칼라 계층의 40% 지지를 확보했다. 사형제 부활 주장을 슬그머니 거둬들이는 등 화장으로 추한 얼굴을 감추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르펜의 당선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라 현실적 가능성이 됐다.

유로존과 EU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르펜의 당선은 유럽통합 65년 역사의 종언을 의미한다. 영국 없이도 EU는 굴러갈 수 있지만 프랑스가 빠진 EU는 상상할 수 없다. 그의 당선은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에서 시작된 포퓰리즘과 보호주의, 고립주의의 쓰나미가 프랑스의 둑을 무너뜨리면서 유럽대륙에 본격 상륙한다는 뜻이고, 나치즘과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쳤던 1930년대로 회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평화와 협력의 시대가 끝나고 분열과 대결의 시대가 온다는 의미다.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미래가 2017년 프랑스 대선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기성 주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반감은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1958년 출범한 제5공화국 이후 정치권을 양분해 온 공화당과 사회당에 민심은 철저히 등을 돌렸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프랑수아 피용은 국회의원 시절 아내와 두 아들을 보좌관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88만 유로(약 11억원)를 챙겼다는 '가짜 취업' 스캔들에 걸려 낙마 위기에 몰렸다. 사회당은 아웃사이더 출신인 브누아 아몽을 후보로 골랐지만 지나치게 좌파적인 공약 탓에 집권과는 거리가 멀다.

틈새를 비집고 만 39세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급부상하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경제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경제장관까지 지냈지만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지난해 중도정당인 '앙 마르슈(En Marche·전진)'를 창당했다. 그는 좌우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철저하게 중도 실용 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무너진 계층이동의 사다리 복원과 함께 친(親)기업과 친유럽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경험 부족과 정당 기반의 열세를 딛고 마크롱은 르펜의 집권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세대교체와 시대교체의 바람을 타고 마크롱의 젊은 도전이 결실을 거둔다면 그는 프랑스와 유럽, 나아가 세계를 벼랑 끝에서 구한 프랑스의 존 F 케네디로 떠오를지 모른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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