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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를 찾아서

지구에서 가장 큰 생명체인 대왕고래도 노래를 한다. 10~40㎐대의 저주파인데, 화려한 혹등고래의 노래보다도 낮고 웅장하다.(인간은 이 중 일부인 20㎐까지만 들을 수 있다.) 대왕고래의 노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크다. 수백㎞ 밖에서도 들린다. 정교한 청음 장치로는 수천㎞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 엄청나게 긴 음향 도달 거리로 봤을 때, 대왕고래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전혀 다른 사회구조에서 살 거라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이렇게 상상해보자. 서울에서 "어이, 잘 지내니?"라고 부르면, 도쿄에서 응답이 온다. "잘 안 들려, 좀 똑똑히 말해봐."

  • 남종영
  • 입력 2017.02.21 09:39
  • 수정 2018.02.22 14:12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인포그래픽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전쟁은 끝났다. 제2차 세계대전도, 한국전쟁도, 베트남전쟁도. 그리고 미-소 냉전도 끝나가고 있었다. 바닷속 세계도 조용해졌다. 1989년 미국 시애틀 연안의 휘드비 해군기지. 소련 잠수함을 탐지하는 수중음향탐지체계(SOSUS)에 낯선 소리가 포착됐다.

"음, 이건 좀 이상한 소리인데?"

음향 전문가인 조지프 조지가 말했다.

"아무래도 고래 같아."

그러나 조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낮고 깊은 소리는 52㎐에서 깜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지역 대왕고래라면 보통 15~20㎐에서 잡혀야 했다. 이 소리는 안개 낀 바다에서 울리는 뱃고동 소리 같았다고, 레슬리 제이미슨이 당시 관계자들을 취재해 쓴 논픽션 〈52 블루〉에 썼다.

그 뒤 52㎐의 노래는 계속해서 포착됐다. 이듬해도, 그 이듬해도, 52㎐의 노래는 겨울마다 나타났고, 잠수함이 떠난 고요의 바다에서 군인들을 사로잡았다.

조지는 민간연구소인 우즈홀 해양연구소에서 일하며 윌리엄(빌) 왓킨스와 함께 52㎐ 고래를 계속 쫓았다. 주변에 비슷한 소리를 내는 다른 개체는 없었다. 단 한 마리에게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리고 계속 움직였다. 겨울에는 북태평양 중위도 바다에서 머물다가, 여름이 되면 알래스카 앞바다로 갔다. 그리고 겨울이면 다시 캘리포니아 앞바다로 찾아왔다. 이동 경로만 보면 대왕고래와 비슷했다. 2004년 빌 왓킨스와 조지프 조지는 학술지 〈심해연구〉에 '북태평양 52㎐ 고래 소리의 12년간의 추적'이라는 논문을 실어 보고한다.

"우리는 이것이 어떤 종인지 모른다. 두 고래의 잡종인지, 비정상적 기관을 가진 고래인지도 분명치 않다. 이 드넓은 바다에서 딱 한 마리만 이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12년간의 모니터링을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이 소리는 딱 한 마리에서 나는 소리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며 이 고래도 그러할 것이라면서 공감하는 편지가 쏟아졌다. 그해 12월21일 〈뉴욕 타임스〉에 '바다의 노래, 응답 없는 아카펠라'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주파수대가 다르면 서로 소통할 수 없다. 이 고래는 '52㎐ 고래', '52 고래'로 불리며 외로움을 달래는 상징으로 떠올랐다.

52Hz 고래와 어떻게든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왕고래의 모습.

'외로운 고래 탐사팀' 찾으러 나서

고래는 노래를 부른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유명하다. 1970년 수중음향학자 로저 페인이 녹음해 낸 음반 〈혹등고래의 노래〉는 10만장이 팔렸다. 이 노래는 외계의 지적생명체에게 보내는 '골든 레코드'에 실려 보이저 1호를 타고 현재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공간에 진입했다. 과학자들은 특히 혹등고래의 노래를 집중 연구했는데, 수컷들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때로는 자신이 있는 위치를 알리기 위해 소리를 낸다고 추정하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큰 생명체인 대왕고래도 노래를 한다. 10~40㎐대의 저주파인데, 화려한 혹등고래의 노래보다도 낮고 웅장하다.(인간은 이 중 일부인 20㎐까지만 들을 수 있다.) 대왕고래의 노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크다. 수백㎞ 밖에서도 들린다. 정교한 청음 장치로는 수천㎞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 엄청나게 긴 음향 도달 거리로 봤을 때, 대왕고래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전혀 다른 사회구조에서 살 거라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이렇게 상상해보자. 서울에서 "어이, 잘 지내니?"라고 부르면, 도쿄에서 응답이 온다. "잘 안 들려, 좀 똑똑히 말해봐."

빌 왓킨스는 52㎐ 고래의 노래가 대왕고래와 비슷한 패턴을 지닌다고 했다. 하지만 사용하는 주파수대는 명백히 달랐다. 오케스트라에서 베이스 음역을 담당하는 튜바보다 약간 낮은 음역대다. 52㎐ 고래가 이야기를 해도 이해할 수 있는 고래는 없다. 서로 다른 주파수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52㎐ 고래가 다시 소환된 것은 2015년이다. 영화감독 조시 지먼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를 통해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탐사비용을 모집한 것이다. 영화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5만달러를 탐사 프로젝트에 기부했다. 해양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 '외로운 고래 재단'도 설립됐다.

조시 지먼은 '외로운 고래 탐사팀'을 조직해 52㎐ 고래를 찾아 나섰다. 52㎐ 고래를 찾아 데이터송신장치가 달린 식별 태그를 부착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원대한 포부가 실현될지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드넓은 북태평양에서 고래 한 마리를 찾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다. 현재 외로운 고래 탐사팀은 미국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와 함께 52㎐의 행방을 찾고 있다. 그동안의 탐사에서는 일부 대왕고래에 식별 태그를 부착하고 각종 소리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52㎐ 고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추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가장 외로운 고래. 20세기 초반 포경으로 다 포획돼 사라지고, 이 종에서 단 한 마리만 남아 외롭게 살고 있다는 얘기다. 둘째, 대왕고래와 참고래의 잡종이라는 가설이다. 이로 인해 특이한 발성기관을 가지고 태어났고 다른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셋째, 대왕고래이지만 발성기관의 장애 때문에 52㎐의 노래를 한다는 추정이다.

한겨레는 조시 지먼이 이끄는 '52㎐ 고래 탐사팀'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지난 16일 인터뷰에서 연구 책임자인 존 힐더브랜드 스크립스 해양연구소 교수는 52㎐ 고래는 현재 대왕고래 무리 집단에 속해 있으며, 대왕고래와 참고래의 잡종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고래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예측할 수 있는 음향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52㎐ 고래는 캘리포니아에서 알래스카 사이의 북태평양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52㎐ 고래는 대왕고래와 어떻게든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설명이었다. 계절별 이동 경로도 북태평양 대왕고래 무리와 같았으며, (주파수는 달랐지만) 노래의 패턴도 비슷했다.

음파로 추적한 52Hz 고래의 계절별 이동 경로. 우즈홀해양연구소 제공

52Hz 고래의 노래 듣기 (링크)

대왕고래의 노래 듣기(링크)

힐더브랜드 교수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전세계 대왕고래의 노래가 점차 낮고 묵직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52㎐ 고래가 사는 북태평양은 물론 대서양, 인도양 가릴 것 없이 음역이 낮아지고 있었다. 그의 2009년 논문은 "북태평양 대왕고래의 경우 1960년대에 비해 30%나 낮아졌다"고 밝히고 있다. 이유는 아직 수수께끼다. 한 고래가 이렇게 부르자 남들도 따라 부르면서 전체 집단의 행동이 바뀌었다는 문화 통합 가설(미니스커트가 짧아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이 가장 유력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52㎐ 고래의 주파수도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 현상이 52㎐ 고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겁니다. 그 이유를 아직 모른다는 것이 걸리긴 합니다만...."

최근 52㎐ 고래의 소리는 47㎐ 근처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이것이 대왕고래들의 영향이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의 목소리가 묵직해지듯이, 고래의 노래도 나이가 들면서 낮아지기 때문이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 게재된 52Hz 고래 포스터. 약 40만달러(4억6000만원)를 모았다.

"신종이라면 벌써 발견됐을 것"

52㎐ 고래는 과학자들에게 흥미진진한 소재다. 최근에 관심을 끈 고래는 인도양에서 발견된 신종 오무라고래다. 2003년 과학전문지 〈네이처〉의 기사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의 김현우 연구원은 52㎐ 고래가 미기록 신종일 가능성은 적다고 19일 말했다.

"오무라고래도 과거부터 계속 잡히긴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게 독립된 종인지 알지 못했을 뿐이죠. (52㎐ 고래가 활동하는) 캘리포니아와 알래스카 일대는 과거 포경 시대에 많은 고래가 포획된 지역입니다. 그때 거의 다 확인됐기 때문에 이제 와서 신종이 발견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만약 내기를 한다면, 저는 '비정상적인 발성기관을 가진 대왕고래'라는 데 걸겠습니다."

탐사팀에 따르면, 2014년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52㎐ 고래의 소리가 포착됐다. 아직 면밀한 음향 분석을 하지는 않은 상태라고 힐더브랜드 교수는 말했다.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는 북태평양 어느 곳을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웅장한 저음이 수천㎞ 대양 곳곳에 다다르겠지만, 응답은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힐더브랜드 교수는 "다른 고래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같은 종에서처럼 뜻이나 정보를 담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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