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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이면 충분할까?

언제부터인지 한국 사회에는 창의성과 학교 교육 기간이 반비례한다는 이상한 통념이 퍼져 있다. 이른바 대안 교육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교육기간을 줄여야 하고 교과과정을 더 실용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적분 따위로 아이들을 괴롭히지 말고 농사나 목공이나 요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것이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교육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을까?

  • 김현경
  • 입력 2017.02.16 10:40
  • 수정 2018.02.17 14:12
ⓒBloomberg via Getty Images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학제 개편을 제안하여 주목받고 있다. 초등과정과 중등과정을 각각 1년씩 줄이고 진로학교를 신설하는 게 핵심인데, 대학은 꼭 갈 사람만 가고 나머지는 일찌감치 진로를 정해서 사회생활을 하게 하자는 취지인 듯하다. 여론의 반응은 자못 호의적이다. <국민일보>, <중앙일보>, <오마이뉴스> 등에 안 의원의 제안을 지지하는 칼럼이 실렸고, 심지어 대선공약을 놓고 경쟁하는 입장인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도 '의미 있는 제안'이라고 환영하였다.

사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창의성만 있으면 성공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거의 20년 전부터―즉 '정보화 혁명'으로 불린 3차 산업혁명 초기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리고 그 20년간 입시경쟁은 더 심해지기만 했다. 4차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면 이번에야말로 대학 졸업장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올까?

유감스럽게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여 백악관에서 펴낸 보고서들('인공지능의 미래를 준비하며'와 '인공지능, 자동화, 그리고 경제')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보고서들은 인공지능의 확산으로 가장 타격을 받는 계층은 저임금, 저숙련 노동에 종사하는 저학력 노동자들일 거라고 전망한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자동화는 저학력 노동자와 고학력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를 증가시켜서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제시되는 대책은 다음과 같다. 우선 수학과 과학 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디지털 리터러시(이해력)를 높여야 한다. 다음으로 모든 미국인이 고등교육(post-secondary education)에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구체적으로 장학금 혜택을 높여야 한다). 세번째로 직업을 잃은 노동자들의 재교육과 재취업을 도와야 한다. 이 중 두번째가 눈길을 끈다. '대학을 나와야 사람이 된다'는 관념이 지배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12년의 교육과정만으로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할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미국은 국민들의 학력을 높이려고 애쓰고 있는데 우리는 왜 도리어 낮추려 드는 것일까?

언제부터인지 한국 사회에는 창의성과 학교 교육 기간이 반비례한다는 이상한 통념이 퍼져 있다(이것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통념이 "지식이 늘어날수록 지혜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안 교육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교육기간을 줄여야 하고 교과과정을 더 실용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적분 따위로 아이들을 괴롭히지 말고 농사나 목공이나 요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것이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교육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을까? 일제는 조선인은 수학이나 과학보다는 '실과'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과교육을 빙자하여 수업시간에도 텃밭을 가꾸게 했다. 조선인에게는 고등교육 기회를 주지 않은 반면,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긴 교육과정, 수학과 과학에 대한 충분한 강조, 실용성보다는 사유와 논리의 발달에 초점을 맞춘 커리큘럼을 제공하였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청년기 또한 길어졌다. 교육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교육은 복지이다. 그리고 어떤 복지보다 경제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모든 사람이 대학교육을 받는 것은 전혀 나쁜 게 아니다. 그것을 사회적 비용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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