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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서칭 메뚜기, "잘리기 전에 뛰어라"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와 유연하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불안'과 '불편함'의 유무에서 엇갈렸다.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는 해고와 재취업에 대한 불안이 적었고, 노동시장이 경직된 나라는 불안이 컸다. 또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는 취업 과정이 불편하지 않았고, 경직된 나라는 취업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불편했다. 그게 내가 체험한 전부다. 그리고 이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 김채원
  • 입력 2017.02.16 06:10
  • 수정 2018.02.17 14:12

[코리아노마드 인 싱가폴] 잡서칭 메뚜기, "잘리기 전에 뛰어라"

#1. 싱가포르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는 평균 한달에 한번 꼴로 헤드헌터의 연락을 받았다. 2012년 9월 싱가포르 직장에 입사 하기 전 취업 포털 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력서 정보를 보고 나에게 연락을 취했던 것. 덕분에 싱가포르에서 지내던 5년여 간 평균 한두달에 한번 꼴로 인터뷰를 볼 기회가 생겼다. 총 30-40번에 달하는 인터뷰 숫자다. 한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누구나 스카웃하려고 탐을 내는 인재라고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이 유연한 싱가포르에선 으레 있는 흔한 일이다. 당시 직장에서 하는 일과 처우가 마음에 들어 이직을 하진 않았지만 어떤 회사인지, 어떤 일인지 궁금해 왠만하면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헤드헌터 및 인사담당자들과 여러 차례 만나고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나는 어느새 스스로 커리어패스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기주도적 인재로 변모할 수 있었다. 기자를 꿈꾸며 100번이 넘게 지원서를 쓰고도 2년여 간 달랑 10번의 인터뷰 기회만을 간신히 얻었던 한국에서의 혹독했던 취업준비생 시절과 대조적이다.

#2. 싱가포르에서 4.5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귀국과 함께 이직 소식을 알렸을 때 대부분 동료들의 첫 반응은 "축하한다"였다. 한국이었으면 "왜 떠나냐" "아쉽다" "누가 힘들게 했냐" 등등 다소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을 텐데, 덮어놓고 축하한다니. 참 의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노동시장이 유연한 싱가포르에선 평균 3-5년 내에 이직을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직이란 모름지기 그 사람의 몸값을 높이고 노동시장에서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자격증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직은 그 자격증을 몇 년 주기로 갱신하는 개념으로 인식됐다. 이질적인 직종을 계획성 없이 넘나드는 게 아니라, 일관성 있게 하나의 방향성 혹은 전략을 따라 움직인 것인 한, 이직은 매우 긍정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한 우물을 파라"는 획일화된 공식에 따라 한 직장에서 10년, 20년, 30년씩 근무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노동 시장과는 딴판이었다.

#3. 싱가포르 등 외국에서는 이직을 위해 CV(Curriculer Vitae)라고 불리는 이력서 딱 한장만 준비하면 그만이었다.자기소개서인 커버레터(Cover Letter)를 요구하는 기업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채용 과정은 CV 하나 내고 끝난다.난 싱가포르에서 다니던 직장의 2차 인터뷰를 쇼핑몰 계단에서 휴대폰으로 진행했다. 1차는 대면 인터뷰와 1시간 가량의 까다로운 필기시험이었지만 2차는 의외로 간단해서 당황할 정도였다. 15분 가량 영국 런던에 있는 글로벌 디렉터와 통화를 마친 뒤 바로 다음 날 연봉과 처우 등이 적힌 오퍼레터(Offer Letter)를 받으면서 나의 첫 해외 취업은 마무리 됐다. 2년여 간 100군데 넘게 지원서를 날리고 30번의 필기시험을 치르고, 10번 넘게 1.차,2차,3차에 걸친 면접 전형을 진행하고 심지어 2박3일간의 합숙 인터뷰까지 본 뒤에야 2%밖에 안되는 바늘구멍을 통과했던 한국에서의 경험과 비교하면 너무도 간단했다. 한 나라의 노동시장이 유연한가, 경직되어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취업 피로감이 이토록 달랐다.

싱가포르 등 외국에서 만난 친구들과 동료들이 이직을 대하는 태도는 한국과 딴판이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한국에선 이직을 조직에 대한 배신 혹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의 정서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외국에서 이직은 몸값을 올리는 기회, 능력을 재점검하는 무대, 이종 산업으로 나아가는 통로 정도로 가볍게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를 떠난 사람 간 'Alumni(동창생) 커뮤니티' 등을 통해 퇴사자와 현직자 간에 허물없이 만나고 네트워킹하는 문화가 발달돼 있었다. 이직과 함께 귀국한 지 두달밖에 안 된 나역시 이미 전 회사 alumni 페이스북 모임에 들어가 있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대부분의 외국인 친구들은 CV를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신분증인양 지니고 다니며, 업데이트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심지어 해고를 당하는 경우에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면 더 좋은 데로 갈 수 있을 것 같아"라며 조바심을 내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내가 지난 2016년 10월 말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이직과 함께 귀국을 결정했을 때,내 동료 한명도 회사를 관뒀다. 하지만 관둔 이유는 나와 달랐다. 중국계 호주인인 닉(Nick)의 경우엔 자발적인 이직이 아니라 권고사직을 당했다. 하지만 닉은 담담했다. 재취업을 해야한다는 귀찮음은 있을지언정 세상이 끝난것 같은 불안과 공포는 닉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권고사직이나 해고, 실직을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만, 이같은 단어만 나와도 투쟁과 파업으로 강경대응하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 다름의 정도는 바로 노동시장이 유연한 곳과 아닌 곳의 차이만큼이나 분명했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저 사안별로 좌우를 판단하는 실용주의자이자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개인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이다.

한국에는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긍정적인 시각보다 강한 것 같다. 나는 이 개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노동시장 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정치성향과 이념을 떠나 내가 몸소 체험했던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와 유연하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불안'과 '불편함'의 유무에서 엇갈렸다.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는 해고와 재취업에 대한 불안이 적었고, 노동시장이 경직된 나라는 불안이 컸다. 또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는 취업 과정이 불편하지 않았고, 경직된 나라는 취업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불편했다. 그게 내가 체험한 전부다. 그리고 이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올해초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스위스 금융회사인 UBS가 발표한 각국 4차 산업혁명 적응력 순위에서 한국은 종합25위를 차지했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인 우리나라 위상과는 맞지 않는 부끄러운 순위였다. (중략) 그런데 한국의 경우 교육 시스템(19위), 사회간접자본(20위), 기술수준(23위)등은 양호했지만 법·제도 유연성(62위), 노동시장 유연성(83위)에서 참혹한 결과가 나왔다.

- 매일경제신문(2016. 12. 25.)

한국의 노동시장이 왜 불안하고 불편했는지 위 기사 내용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게다가 최근엔 또다른 적수가 등장했다. 바로 '로봇'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발달에 따라 2025년이 되면 국내 취업자의 61.3%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해 국내 전체 근로자(2659만명)를 기준으로 하면 약 1630만명이 AI·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청소원, 주방 보조원, 매표원과 복권 판매원 등 단순 노무직 종사자는 실직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회계사,항공기 조종사, 투자·신용 분석가 등 전문직 종사자는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 조선일보(2017. 1. 4.)

로봇자동화 등을 필두로 한 기술의 진보와 4차산업혁명은 가뜩이나 경직된 우리의 유연하지 않은 노동시장에 불안감과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또 하나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나는 노동시장을 경직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실직과 해고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취업과 재취업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유일한 해법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 한 사람이다. 내가 믿는 노동시장의 존재 이유는 노동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단체 등 사회와 노동을 제공하고자 하는 개인 간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접점은 시장의 변화와 진보의 속도에 따라 위치가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최근 불어닥친 4차 산업혁명은 과거와 전혀 다른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 곡선을 선보일 태세를 하고 있다. 직업전환율은 이전보다 빨라질 것이고 사라지는 직업의 숫자도 늘어날 것이다. 더이상 기득권에 안주해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한 경직된 노동시장을 고집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단 얘기다.

The idea that you study and then have a career in one company is gone. You need to renew your skills every five years. (평생 직장의 개념은 끝났다. 이제 우리는 매 5년마다 직업 기술을 갱신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 스테판 카스리엘(CEO, Upwork)

2017년 1월에 열린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기업인이 남긴 얘기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선택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실직과 해고로만 이해해선 안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여기선 취업과 재취업이 수월하다. 우리가 늘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노동시장의 선순환구조도 여기서 시작된다.

최근 나의 눈길을 끈 공익광고가 있다. 격무에 찌든 중년의 직장인은 "퇴근하고 싶다"라며 한숨을 내쉬고, 반면 번번이 취업에 고배를 마신 취업준비생은 "출근하고 싶다"며 푸념을 늘어 놓는 장면이다.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가기 어렵고,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들어오기 어려운 경직된 노동시장이 만들어낸 비극의 단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수작이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 가장 오랜 시간 업무를 하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히면서도 노동생산성은 밑바닥을 맴도는 이유도 바로 이 같은 악순환 구조에서 비롯됐다.

이같은 악의 고리는 사상최악의 취업난에 시달리는 밀레니얼 세대의 좌절과 기존의 전통적 일자리를 위협하는 4차 산업혁명이 만나면 재앙이 된다.

특히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고통이 극심하다. 세계적으로도 밀레니얼 세대는 로봇과 인공지능(AI)에 밀려 일자리 시장에서 고전하는 세대로 꼽힌다. 앞 세대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도 취업난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사회에 대한 절망감이 큰 세대로 불린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 사회의 일자리 기회가 적다"는 응답이 67.6%를 차지했다. (중략) 양질의 일자리가 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기득권 노조'(27.6%)와 '경직된 産業규제'(25.9%)를 꼽은 응답자가 많다.

- 동아일보(2017. 1. 5.)

외국엔 갭이어(Gap Year)라는 것이 있다. 격무에 지친 직장인들이 수개월에서 1년 가량 휴식을 취하며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취미생활이나 자기개발을 통해 방전된 에너지를 보충하는 시간이다. 물론 국내의 일부 대기업들도 안식년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갭이어를 갖는다는 건 경력단절자 혹은 장기백수가 될 지 모르는 리스크다. 재취업이 쉽지 않고 불편한 경직된 노동시장을 갖고 있는 탓이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가 불가능한 이유도 맥을 같이 한다.일과 삶의 균형은 헤드헌터들이 평균 한달에 한번꼴로 연락이 오는 실업률 2%대, 노동시장이 유연화된 싱가포르 같은 나라에서나 가능한 배부른 소리일 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기술의 진보로 언제 어떻게 어떤 직업이 순식간에 사라질 지 모르는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유연한 재취업과 실력이 바탕이 된 재도전으로 시시각각 대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는 구조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공포와 불안의 이미지로만 바라보기 보단, 미래 사회의 메가트렌드로 수용하고 늘 준비하고 공부하며 대비하는 자세를 취하는 게 로봇과 경쟁할 다가올 미래에 보다 지혜롭게 대처하는 해법이라고 본다.

나는 지난 10여년 간의 직장 생활 기간 동안 총 4개의 직업을 가졌다. 기자(2006-2010), 애널리스트(2012-2016), 마케터(2016-2017) 그리고 현재의 M&A 자문 컨설턴트(2017~). 그리고 앞으로도 몇개의 직업을 더 가질 계획이다. 경직된 한국의 노동시장을 떠나 코리아노마드로서 유연한 해외 노동시장을 경험했던 덕분이다. 혹자는 한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고 폄하할 지 모르지만, 나는 진지하게 내 커리어의 일관성과 방향성을 면밀히 연구해왔다. 인접 직업으로 이동하면서, 기존의 전문성으로 더욱 많은 시너지를 냈고, 이종 직업 간의 결합으로 트렌드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덕분에 옮기는 곳마다 언제나 퍼포먼스상을 받아왔다.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발빠르게 액션을 취한 것도 이같은 커리어 패스를 걷게 한 동력이 됐다. 인터넷 언론의 등장으로 기존 언론 산업이 레드오션으로 변해갈 무렵, 보다 전문성을 갖춘 직업을 갖기 위해 유학을 떠났고, 유가가 배럴당 $100이상을 구가하던 호시절에 석유화학 애널리스트가 되었다. 기자 시절 갉고 닦았던 분석력과 다양한 산업계 경험은 폭넓은 시각과 깊이있는 통찰력으로 한 산업을 파고들 수 있는 밑거름이 됐고, 美 셰일가스 혁명으로 유가가 배럴당 $50대로 반토막이 났을 때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로 직업을 바꾸며 귀국했다. 석유화학 업계가 구조조정기에 접어들 무렵인 현재는 M&A(기업 인수·합병) 전문가로 변신해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을 십분 활용, 시너지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변이 없다면, 향후 5-7년 후엔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또 다른 인접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계획이다.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 나의 선택은 '잡서칭 메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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