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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일자리가 궁금하다면...

"오래 살아남을 일자리에 맞춰 우리 애들을 교육시켜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일자리가 앞으로 유망해요?" 학부모들한테서 종종 받는 질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그들 세대에서 유효했던 '책상에 앉아서 하는 지식 습득' 전략은 앞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 직업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수행하는 어른으로 성장시킬 것인가가 인공지능 시대에 더 필요한 질문이다.

  • 정재승
  • 입력 2017.02.14 12:32
  • 수정 2018.02.15 14:12

[정재승의 영혼 공작소] 4차 산업혁명과 O2O 세계

제4차 산업혁명이 국가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각 정당의 유력 후보들의 대선 공약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오기는 오는 거냐, 너무 부화뇌동하는 거 아니냐부터가 이슈다.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를 국가가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지, 민간이 앞장서고 국가는 규제 완화 식의 보조만 맞추면 되는지도 의견이 제각각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일자리 정책이 논란거리다. 단순 일자리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테니 고급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오히려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인공지능에 위협받을 터이므로, 앞으로는 블루칼라 일자리가 인간에게 더 안전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시 말해, 텔레마케터나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사라질지, 기자나 약사가 사라질지가 논쟁 중인 셈이다.

이 이슈에 해답을 얻기 위한 하나의 새로운 관점을 제기해 보려 한다. 그 전에 먼저 제4차 산업혁명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의해 보자. 사람들마다 그 정의가 제각각이라 혼란스러울 테니 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이 2016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주창한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장치 등으로 오프라인(atom) 현실세계를 온라인(bit) 세계로 고스란히 옮겨놓음으로써, 이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고객에게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프라인-온라인 연결세계(O2O)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제3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을 제2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제조업과 제1·2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유통업에 적용해 융합적인 혁신을 가져오겠다는 뜻이다. 마치 지도정보와 지피에스(GPS)로 도로 지도와 교통 상황을 고스란히 데이터화했더니 '내비게이션'이라는 편리한 맞춤형 예측서비스가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막히는 도로에서 도착 예정시간을 예측하고 가장 빠른 길을 제안해주는 내비게이션이 없는 상황은 이제는 상상도 하기 싫다. 그런데 제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 이런 상황이 제조업과 유통업 전반에 걸쳐 벌어진다는 얘기다.

제품은 공장을 떠나 소비자의 손으로 옮겨 간 후에도 계속 업데이트된다. 고장 나면 수리해주는 애프터서비스(AS)만이 아니라 사용법을 알려주고 날마다 업데이트해주는 실시간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 공유경제도 가능해진다. 누가 집이나 차가 필요한지, 그걸 누가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서 서로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가능해지니 말이다.

21세기에 뚜렷해진 '대분리 현상'

그렇다면 이런 산업적 변화는 3차 산업혁명의 확장인가, 아니면 제4차 산업혁명이라 불릴 만큼 새로운 혁명인가?

먼저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따져보자. 아톰(atom)은 본질적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그것을 이동하고 결합하는 데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원본과 똑같은 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톰 산업'은 희소성을 기반으로 한 고전적인 경제학으로 설명해 왔다. 예를 들면, 기존 제조업과 유통업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나 파레토의 법칙으로 잘 설명되어 왔다. 반면, 비트(bit)는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에너지 사용이 적으며, 원본과 구별이 어려운 복제가 가능하다. 그래서 '비트 산업'은 새로운 경제학을 필요로 했다. 롱테일 경제학이 아마도 일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톰 산업과 비트 산업이 서로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O2O 시대에는 어떤 경제학이 통용될 것인가?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면 제4차 산업혁명이라 불릴 만하며, 그렇지 않다면 기존의 산업혁명 틀 안에서 설명 가능할 것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따져보자. 컴퓨터와 모바일 기술이 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시대에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게 되면, 그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로 늘어날 것이다. 그때 가능한 서비스들을 우리는 과연 현재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을까? 핸드폰이라는 통신장비에 컴퓨터 기능을 넣어준 스마트폰만으로 모바일 시대가 열렸는데,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결합은 과연 어떤 시대를 열 것인가? 그것은 혁명일까, 정보통신 혁명의 확장일까? 지금은 단언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일자리 문제로 돌아가 보자.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온다며 우리가 일자리를 걱정하는 이유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인간을 대체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불안에서다.

지난 19세기와 20세기에는 기계와 같은 기술 혁신으로 인해 오히려 일자리의 수가 늘어나고 일자리의 질도 높아졌으며 임금도 올랐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공지능과 로봇, 자동화 등 기술을 통한 혁신으로 노동생산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증가된 반면, 임금도 줄고 일자리 수도 줄어드는 새로운 현상을 겪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이런 현상을 '대분리 현상'(great decoupling period)이라고 불렀다. 노동생산성과 일자리, 소득, 경제성장이 따로 노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임금은 '노동의 대가'여야만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나 일정 소득을 보장해주는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일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 유지를 위한 사회주의적 발상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소비자로서의 인간 역할을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제4차 산업혁명의 기술 혁신으로 인해 대체될 일자리는 과연 무엇일까? 어떤 테크놀로지는 과연 어떤 형태의 일자리부터 위협할까? 이를 판단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앞으로의 테크놀로지는 비트와 전자, 원자와 분자, 유전자와 신경세포 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잘 다루는가?

'기사 작성'이냐 '취재'냐에 달려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우리는 이 중에서 '비트'를 가장 잘 다룬다. 컴퓨터 내에서 프로그래밍을 통해 인간은 상상하는 많은 것들을 구현할 수 있다. 실제로 물리적 공간에서 원하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건 어려워도, 영화나 게임 속에서는 뭐든지 가능하다. 그다음으로 우리가 기술을 통해 잘 다루는 것이 '전자'다. 카메라, 티브이(TV),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우리를 둘러싼 전자제품들을 살펴보라. 어찌나 훌륭하게 진화하고 있는지, 이제는 자동차도 전자제품으로 바뀔 태세다.

상대적으로 복잡한 원자나 분자는 다루기가 쉽지 않다. 인공지능은 똑똑하지만, 로봇은 아직 넘어지기 일쑤이며 고장도 잘 난다. 기계를 안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건 아직은 쉽지 않다. 로봇청소기가 그토록 답답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제아무리 똑똑한 일본 로봇 페퍼도 움직이는 건 어리숙하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떤 일자리가 인공지능으로 고스란히 대체 가능하다면 그 일자리는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그 일자리 업무가 인공지능처럼 비트를 다루는 기술로 완벽히 대체될 수 있다면 위험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찾아서 가르쳐주는 일자리는 곧 사라질 수 있다. 약사라는 직업도 위험하다. 의사가 준 처방전을 자판기에 넣으면 처방전에 맞게 약을 조제해 작은 봉투에 넣어주는 일이라면 인공지능과 단순로봇의 협업이 더 효율적일 테니까.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약을 다루어야 한다는 측면은 논외로 하고.

경비원이라는 직업은 사라질 것인가? 만약 그 일이 시시티브이(CCTV)를 달고 자동문을 설치해 해결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전자를 다루는 기술로 대체 가능하다면 약사 다음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일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면, 아파트 경비원은 오래도록 필요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기자라는 직업은 사라질 것인가?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기자라는 직업의 본질이라면 아마도 그럴지 모르겠다. 오늘의 주식 시세를 알려주는 기사, 오늘의 야구 결과를 정리해주는 기사는 이미 기자들보다 인공지능이 더 잘 작성한다. 하지만 기자 직업의 본질을 '취재'라고 한다면 상황은 다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어젠다를 던지고, 이를 위해 현장을 가보고 적절한 전문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이 기자의 본업이라면, 기사란 그저 그것을 정리해 세상에 내놓는 형태일 뿐이라면, 기자라는 직업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래 살아남을 일자리에 맞춰 우리 애들을 교육시켜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일자리가 앞으로 유망해요?" 학부모들한테서 종종 받는 질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그들 세대에서 유효했던 '책상에 앉아서 하는 지식 습득' 전략은 앞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 직업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수행하는 어른으로 성장시킬 것인가가 인공지능 시대에 더 필요한 질문이다.

그래도 오랫동안 남아 있을 일자리가 궁금하다면, '신경세포'와 연관된 일자리들을 주목해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전자를 다루는 솜씨에 비해, 복잡한 원자, 분자, 유전자를 넘어 신경세포 쪽으로 갈수록 속수무책이다. 뇌공학 기술이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측정하고 이해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아직은 인공지능이나 전자공학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 있다. 따라서 누군가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거나, 이런 소통을 통해 설득하고 공감하고 타협하고 조정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을 언젠가는 인공지능도 할 수 있겠지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마음으로 환원해 업무를 수행하는 일자리는 한동안 대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데이터 분석가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어도 시이오(CEO)는 대체가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같은 교수라도, 수업을 통해 지식을 전하는 교수는 대체 가능하지만, 연구를 통해 지식을 만드는 교수는 대체가 어렵다. 학생들에게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강의 전문가는 대체 가능하지만, 그들을 보듬고 가르치는 스승이고자 하는 교육자는 대체 불가능하다.

공유경제가 성장에 도움 안 줄 수도

자본주의에서 생산의 3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이다. 그런데 오프라인-온라인 연결세계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은 자본인가, 노동인가? 우리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자본으로 다루어야 하는가, 노동으로 다루어야 하는가? 인공지능이 뺏어가는 일자리를 로봇세를 걷어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일자리 정책을 바꾸어야 할까? 기존 경제학은 새로운 시대의 현상들에 속수무책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서구에서는 이미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오지 않았고 그 명명이 다소 이르고 섣부르기에, 존재 자체가 지금 의심을 받고 논란이 되고 있다. 소셜미디어 쪽을 살펴보면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도 많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현상들이 기존 경제학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기본소득처럼 소득이 노동의 대가가 아니며 인센티브로도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상정할 만큼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면, 섬세한 대비가 필요하다. 일례로,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공유경제는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있다. 기존의 있는 것을 공유하고 나누어 쓰니 성장에는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부가 경제성장 관점에서 국가를 운영하고 과학기술을 '성장 동력'으로만 바라본다면, 제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다.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혁명인지 아닌지는 10년쯤 지나봐야 판별날 것이다. 그러나 산업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숙고하고 대비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제4차 산업혁명을 '허구'라고 단정하는 것은 이미 왔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술 혁신이 만들어낼 새로운 시대는 지금으로서는 섣부르게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앞으로 우리 하기에 달렸다. 우리는 아직 '큰 변화의 새벽녘'에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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