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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사회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촛불을 들고 한데 모여서 같은 염원을 외치지만 현실의 고민은 계급이 나눠진듯 섞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 안승준
  • 입력 2017.02.13 07:20
  • 수정 2018.02.14 14:12
ⓒSBS

요즘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다시 읽고 있다.

일제의 암울한 통치마저도 힘든 세상에서 대다수 농민들은 잔재된 계급사회의 불평등마저 견뎌내야만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신분과 목표가 다르게 정해졌던 그 시대에 양반과 상민 사이의 공감대라는 것은 애초에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한 그릇 보리죽 거리를 걱정하는 이와 만석지기의 풍년기원이 한자리에 함께할 수 없었고 비단저고리에 꽃신 신은 도련님과 무명옷에 짚신도 누더기가 되도록 신고다녀야 했던 장돌배기의 고민이 같을 수 없었다.

어미를 잃은 동병상연의 설움마저도 봉순이와 서희의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같은 하늘아래 같은 땅을 밟고 살던 같은 민족이 백년도 채 안된 과거에 겪어낸 사실이라고 믿기엔 너무도 불합리한 시대상들이 공감의 범위를 넘어선 나머지 그냥 한 권의 소설로 익숙하게 읽어내렸던 것이 처음 책을 접하던 어릴적 내 느낌이었던 듯 하다.

그런데 일제치하만큼이나 부도덕한 인간들이 뉴스를 도배하는 요즘 다시 읽어가는 책의 느낌은 그 전과는 뭔가 다른 교묘한 공감대를 불러내 주었다.

우리는 같은 촛불을 들고 한데 모여서 같은 염원을 외치지만 현실의 고민은 계급이 나눠진듯 섞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대가족의 밥상머리에서 오가는 제테크와 노후설계 고민 속에서 취업에 실패한 동생들의 걱정들은 그냥 묻어두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인듯 슬며시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동창들의 술자리의 요즘 주제인 육아와 부동산 잇슈엔 결혼은 커녕 연애도 어려운 그 녀석의 이야기가 함께 하기엔 너무도 이질적인 것이 되었다.

나 역시도 선자리나 소개팅 자리를 주고 받는 또래들의 모임에서 장애 가진 내 이름이 튀어나와서 대화가 어색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것 같다.  

자본주의 경쟁사회 안에서 피가 섞인 가족이더라도 똑같이 나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걸 알면서도 최참판이 나눠준 몇 마지기의 농토를 받은자와 그렇지 못한 이들의 오묘한 갈등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친하디 친한 친구들이지만 장애 가진 나의 소개팅이나 선을 주선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면서도 무당딸 월선이나 백정 사위 관수의 고달픈 시간들이 떠오르는 것은 또 왜일까?

그 시절 그 때를 살던 사람들 중에도 의병이니 동학운동이니 하며 앞장섰던 사람도 있었고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주우려 기회를 엿보던 친일파도 있었다.

오늘도 지금도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시민운동가들이나 활동가들도 있고 이리저리 법망을 피해 밥그릇 챙기기에 열중인 사람들도 있다.

그 때도 지금도 사람들은 익숙한 것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개혁도 평등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과격하다고 했었고 무리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그 때의 시간은 결국 광복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도 결국 우리가 바라는 궁극의 올음을 향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자본과 재화가 질량 보존의 법칙을 따르는 우리사회에서 가진자가 있으면 못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취직도 연애도 결혼도 육아도 부동산도 모두가 함께 하는 고민인 것을 하나씩 이뤄낸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밥상머리에서 술자리에서 둘러 앉은 모두의 고민이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내질 수 있고 나눠질 수 있는 세상을 간절히 바란다.

또 다른 부정한 통치 아래 사는 우리가 조금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고 쓸데 없는 신분적 우월감을 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21세기의 광복을 향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번주는 촛불을 들 때 바람을 외칠 때 주변의 의미들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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