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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우리는 가급적 좁은 곳에서 떼지어 살아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이유는 단 하나. 공장식 밀집사육 방식을 택하는 이유와 같다. 공간 이용의 효율성 덕분에 수익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 과감하게 풀자"는 정부의 슬로건을 비롯하여 그간 외쳐진 수도권 규제 철폐나 완화의 논리들을 살펴보라.

  • 강준만
  • 입력 2017.02.13 06:10
  • 수정 2018.02.14 14:12

지금과 같은 인서울 초집중화는 바람직한 의미의 경쟁까지 좋은 입지조건을 갖겠다는 경쟁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동시에 나라의 미래까지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제 우리는 '헬조선'이란 말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그런 황폐화의 막장에 도달했다.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 사태에 이어 두 종류의 구제역 바이러스까지 동시에 출현하는 비극이 벌어지면서 수익성 위주의 공장식 밀집사육 방식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 인간은 다를까? 전 국토의 10%에 인구 절반이 몰려사는 우리에겐 문제가 없는 걸까?

미국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이미 50여년 전 "가용면적이 1인당 8~10㎡ 미만일 경우에는 사회적·육체적 병리현상이 배가되었다! 질병, 범죄와 과밀은 분명히 연관된 것이었다"고 결론내렸다. 이후 수많은 연구들이 이 결론을 뒷받침했다. 대도시 땅값 상승 등으로 직장인들의 1인당 사무실 면적이 점점 줄어들면서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타인의 행동에 대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공간축소 증후군'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인간도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개인 공간이 확보되지 못하면 위협을 느끼고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급적 좁은 곳에서 떼지어 살아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이유는 단 하나. 공장식 밀집사육 방식을 택하는 이유와 같다. 공간 이용의 효율성 덕분에 수익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 과감하게 풀자"는 정부의 슬로건을 비롯하여 그간 외쳐진 수도권 규제 철폐나 완화의 논리들을 살펴보라. 모두 다 효율성과 수익성을 신성시하는 애국적인 충정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권력과 금력은 물론 인구와 각종 인프라까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마당에 기업과 공장 역시 수도권에 몰려 있는 게 효율성과 수익성 증대에 도움이 되리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근시안적인 잇속만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조류인플루엔자·구제역 사태는 "이제 더 이상 공장식 밀집사육 방식으론 안 된다"는 준엄한 경고가 아닌가. 우리 인간에겐 '공간축소 증후군'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게 나타나고 있다. 그건 바로 삶에 대한 기본 자세의 문제다. 효율성과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의 진입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믿음이 상식으로 통용되면서 자율성과 창의성은 '입지조건'의 하위 개념이 되어가고 있다.

김현주씨는 <입시가족: 중산층 가족의 입시사용법>이란 책에서 "중산층 가족 사이에서 자녀교육의 동의어는 '인서울대학' 진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서울대학'은 자녀의 성취적 삶을 꿈꾸는 부모들의 무의식 속에서 부모 역할에 대한 자기검열의 회오리로 맴도는 모호한 이상향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인서울 집착'은 대학 진학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대통령 선거란 무엇인가? 그건 대다수 국민에게 인서울 권력을 쟁취하는 패권의 주체가 나와 '우리 지역'과 어떤 관계인가를 따지는 게임에 불과하다. 전국 모든 지역의 지역발전 전략의 최우선 순위는 인서울 권력과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인사와 예산의 분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게 지역 살림의 효율성과 수익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자율성과 창의성? 그건 의례적인 행사나 이벤트에서 외쳐지는 하나 마나 한 수작이거나 오히려 효율성과 수익성을 방해하는 쓰레기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인서울 초집중화는 바람직한 의미의 경쟁까지 좋은 입지조건을 갖겠다는 경쟁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동시에 나라의 미래까지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제 우리는 '헬조선'이란 말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그런 황폐화의 막장에 도달했다. 우리는 모두 미쳤다! 입만 열면 '좁은 땅'이란 말을 하면서도 가급적 인서울로 몰려들어 더 좁게 살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그게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모두 다 제정신이 아니다.

1945년 10월16일 저녁 8시30분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은 서울 중앙방송국의 전파를 통해 국민께 "나를 따르시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라는 첫인사를 했다. 이후 많은 정치인들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했지만, 늘 문제는 "나를 따르시오"라는 전제가 오히려 분열을 촉진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반대로 말할 때가 되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 선 자리에서 자신의 양심과 소신을 따르면서 자율성과 창의성을 숭배하는 삶을 살아보자. 공장식 밀집사육의 시대는 갔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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