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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만에 공개된 재클린 케네디의 ‘청혼 거절' 편지

  • 김태성
  • 입력 2017.02.11 10:49
  • 수정 2017.02.11 10:50

1962년 퍼스트레이디 시절, 백악관에서 촬영한 재클린 케네디

“우리는 너무나 오래 알아왔고, 공유해왔으며, 또 많은걸 잃었어요.”

1968년 11월13일, 데이비드 옴스비 고어 전 미국 주재 영국 대사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편지지 위에는 그리스의 대부호인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의 선박 낙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지 5년이 지나 오나시스와 재혼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이 편지에서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치유와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아픔이 점철된 내 과거 삶과 관계가 없는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며 고어의 청혼에 거절의 뜻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이 고어 전 대사에게 보낸 청혼 거절 편지가 뒤늦게 발견됐다고 <뉴욕 타임스> 등이 9일 전했다. 고어 전 대사의 후손은 영국 웨일즈의 고어 자택에서 붉은 가죽상자를 발견했는데, 이 상자 안에 재클린이 직접 쓴 편지 14통을 비롯해 케네디 전 대통령 부부와 관련된 문서들이 들어있었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재클린은 홀로 됐고, 고어 전 대사의 아내도 1967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재클린은 오나시스와 재혼한 지 한달 뒤인 1968년 11월 보낸 편지에서 “당신은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형제이자 멘토, 그리고 유일한 영혼처럼 느껴진다”면서도, “당신은 내가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케네디 대통령 부부의 전기를 썼던 작가 바바라 리밍은 “케네디 암살은 재클린에게 엄청난 트라우마였다”며 “(당시) 재클린의 재혼에서 사랑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재클린은 안전을 찾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1960~65년동안 미국 대사를 지낸 고어는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문제 등 중요한 외교 사안이 있을 때마다 최측근 참모처럼 함께 논의했다. 이번에 발견된 상자에는 케네디가 재임 당시 고어에게 보낸 편지, 케네디 암살 다음날 날짜가 찍힌 그의 백악관 출입증도 발견됐다. 이번 문서를 발견한 고어의 손자 자셋은 재클린의 편지를 비롯한 고어의 소장품들을 3월29일 경매에 부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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