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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소중한 고대의 성적장학금 폐지

고려대의 정책은 장학금이란 본래 면학을 지원하는 것이지 좋은 성적에 따라붙는 부상 같은 게 아님을 되새겨 주었다. 또한 이런 정책에 내포된 규범적 태도는 우리 사회 여러 관행에 대해 교정 효과를 지닌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성취와 보상을 연계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또 그것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이에 비해 성취를 위한 조건의 균등화를 뒷받침하는 제도는 심각하게 부족하다.

  • 김종엽
  • 입력 2017.02.09 06:42
  • 수정 2018.02.10 14:12
ⓒ연합뉴스

고려대학교는 2016년부터 성적장학금을 없애고, 대신 저소득층 학생에게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을 늘렸다. 저소득층 학생들이 학비나 생활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다가 학점이 나빠져 장학금을 받기 어렵게 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함이었다. 물론 제도가 바뀌면 논란이 있기 마련이다. 저소득층을 국세청 자료에 근거해서 확인하니 '악명 높은' 자영업자 소득 추정 문제가 여기서도 발생한다.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행 1년의 결과는 성공적인 듯하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기초생활 수급자여서 등록금은 전액 장학금을 받았지만 생활비 때문에 알바를 많이 해야 했던 한 3학년 학생은 생활비 지원 덕에 공부에 전념할 시간이 늘었고, 그 결과 1, 2학년 때는 3점대이던 학점이 1, 2학기 모두 4.3 수준으로 올랐다고 한다.

이런 고려대의 정책은 장학금이란 본래 면학을 지원하는 것이지 좋은 성적에 따라붙는 부상 같은 게 아님을 되새겨 주었다. 또한 이런 정책에 내포된 규범적 태도는 우리 사회 여러 관행에 대해 교정 효과를 지닌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성취와 보상을 연계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또 그것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이에 비해 성취를 위한 조건의 균등화를 뒷받침하는 제도는 심각하게 부족하다.

예컨대 학교나 대학 평가의 목적이 어떤 학교나 대학이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진단하고 그런 학교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 위한 것인 적은 거의 없다. 평가는 대부분 상당히 불평등한 조건 아래서 이루어진 성취나 성과에 대해 보상으로 나아간다. 예컨대 대학 평가를 하면 좋은 인프라를 가진 대학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고, 그 결과 더 많은 정부 지원을 받게 된다. 그리고 더 많은 정부 지원 덕에 다음번 평가에서도 또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대학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교육청의 지원금도 일반고보다 특목고가 훨씬 더 많이 받아왔다. 더 많은 등록금을 낼 수 있고, 그래서 더 좋은 시설과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지원이 간 것이다. 기업도 그렇다. 예컨대 열악한 중소기업보다 더 많은 연구개발(R&D) 자금을 쓰는 대기업은 그런 자금에 대해 세금 혜택도 더 많이 받는다.

이렇게 "무릇 가진 자는 더 가지고 못 가진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일이 다반사인 우리 문화를 생각하면, 고대의 성적장학금 폐지는 '완소정'(완전 소중한 정책)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고대가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들어가" 주면 좋겠다. 고대는 재학생에 대해선 성적장학금을 폐지했지만, 신입생 모집에서는 여전히 성적장학금을 유지하고 있다. 만일 고대가 이런 장학금도 전향적으로 개혁한다면, 장학금을 성적 우수자 유치에 사용하는 우리 대학의 관행을 고치는 데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저소득층의 면학을 지원한다는 고대의 훌륭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고대생 가운데 소득 1~5분위 학생의 비율은 10%를 조금 상회하는 정도이다. 고대생 대부분은 비교적 경제 사정이 좋은 가정 출신인 셈이다. 고대는 재학생의 장학금을 통해서뿐 아니라 입학제도 설계 단계에서 계층적 불균형을 시정하고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기회를 활짝 여는 시도를 하고, 사뭇 상류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수시전형도 그 반대 방향으로 이끌어갔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고대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재직하는 학교부터 방향을 잘 잡도록 애써야 마땅하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민족 고대"는 우리 대학 문화를 향도할 힘을 가진 대학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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