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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성폭행당한 피해자와 강간범이 함께 '강간의 진실'을 말하다

  • 김태우
  • 입력 2017.02.08 09:55
  • 수정 2017.02.08 14:55

지난 1996년, 당시 16살이었던 토르디스 엘바와 톰 스트레인저는 홈스테이 호스트와 교환학생으로 처음 만났다. 호주에서 아이슬란드로 1년간 공부하러 온 스트레인저는 엘바의 집에 묵게 됐고,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귀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스트레인저는 술에 취한 엘바를 강간했다.

2016년 10월 샌프란시스코서 열린 TED 강연에서 엘바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시계를 보며 1초 1초를 셌다. 그날 밤, 나는 2시간에 7천 2백 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며칠간 다리를 절고, 몇 주간 눈물을 흘렸지만, 내가 당한 일은 TV에서 본 강간 장면과는 정말 달랐다. 톰은 무장한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그는 내 남자친구였다. 지저분한 골목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내 침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여자들이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 성폭행당한다고 배우는 세상에서 자라왔다. 그들의 치마가 너무 짧았다거나, 너무 크게 미소 지었다거나, 술 냄새가 난다거나 하는 이유들 말이다. 당시 나는 이 모든 이유에 해당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성폭행을 당한 건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이 강간 사건을 멈출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였다. 바로 톰이었다. 톰이 하던 것을 멈췄다면 내가 강간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둘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고, 스트레인저는 곧 호주로 돌아갔다.

스트레인저는 당시 자신이 한 일이 성폭행이 아닌 상호 합의 하에 이뤄진 성관계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이 일을 잊어보려 했던 그는 9년 뒤 엘바가 보낸 편지 덕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25세가 된 엘바는 신경 쇠약에 시달리던 중 갑자기 펜을 집어 스트레인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그날 있었던 일과 이후 겪었던 감정을 써내려간 뒤에야 모든 심적 역경이 끝났다고 밝혔다. 엘바는 놀랍게도 스트레인저로부터 답장을 받았고, 8년간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사건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와 얼굴을 마주하기로 했다.

1주일간 아이슬란드와 호주의 중간인 케이프타운에서 만난 둘은 결국 16년 전 발생한 사건을 묻어 두기로 결정했다. 엘바는 스트레인저를 용서했고, 스트레인저 역시 자신의 잘못을 되짚으며 또다시 용서를 빌었다. 둘은 이후 '용서와 진실'에 대한 책을 함께 썼다. 이 책은 오는 3월 발매를 앞두고 있다.

엘바는 마지막으로 "여성과 남성의 성폭행 피해 사건 대다수는 남성에 의해 자행된다. 하지만 피해자의 이야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우리 모두가 문제와 맞선다면 고통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모두에게 목소리를 더해달라고 촉구했다.

성폭행 피해자와 강간범이 함께 전하는 강한 메시지를 영상으로 확인해보자.

h/t TED Tal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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