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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아이들이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도착한 첫날 당직폰을 인계 받자마자 응급 콜이 와서 응급수술을 하고, 해지는 석양을 등 뒤로 맨눈으로 가까이 보이는 시리아 국경을 바라보며 크리스찬과 씁쓸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그 언덕 너머에서 육중하게 들려오는 폭격 소리에 긴장했던 날들도 있었다. 폭탄 손상으로 팔다리가 불구가 된 아이들을 보며 딱한 마음이 들고, 붕대를 풀어헤치니 불구가 된 자신의 팔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며 현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덟 살의 발린의 비명과 울음을 들으며, 이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시련이겠구나 싶은 안쓰러운 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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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보지는 못했다. 새로운 수술실이 개장된 것은 내가 미션을 마친 지 사흘 후였다. 외과 집도의들 사이에서 누가 새로운 수술실에서 첫 번째 수술을 하여 기념적인 순간을 누리느냐에 대해 즐겁게 옥신각신하던 저녁시간이 있었고 내가 강력한 후보자로 지명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나는 본선이 시작하기 직전에 나와 버리고, 후임 정형외과 선생님이 그 영예를 누렸다. 첨단장비들이 설치된 이 새로운 수술실은 2016년 6월 20일 첫 환자를 받아들였고, 처음에는 간단한 수술부터 시작하며 시범 운영을 하고 감염통제에 대해 점검하며 단계적으로 예전 수술실의 물품들을 옮기며 이사를 한다. 새 수술실에는 영상투시기와 정형외과 수술용 수술침대도 있고, 수술실내 온도, 습도, 압력 등이 터치스크린의 전자계기판으로 조절이 되고, 인터넷 브라우저가 열리는 벽면 컴퓨터도 설치되어 여느 선진국의 수술실 못지 않은 수술실이다. 수술실 개장 소식과 함께, 선영의 휴대폰 사진 속에는 첫 수술을 마치고 활짝 웃는 팀원들의 모습이 담겨있어 미소 짓게 한다.

람사 병원에서의 2개월이 금새 지났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갖는 신선함과 특별함이 고스란히 담긴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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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첫날 당직폰을 인계 받자마자 응급 콜이 와서 응급수술을 하고, 해지는 석양을 등 뒤로 맨눈으로 가까이 보이는 시리아 국경을 바라보며 크리스찬과 씁쓸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그 언덕 너머에서 육중하게 들려오는 폭격 소리에 긴장했던 날들도 있었다. 폭탄 손상으로 팔다리가 불구가 된 아이들을 보며 딱한 마음이 들고, 붕대를 풀어헤치니 불구가 된 자신의 팔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며 현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덟 살의 발린*의 비명과 울음을 들으며, 이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시련이겠구나 싶은 안쓰러운 마음을 느꼈다. 그래도 이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림을 같이 그리며 차근차근 마음을 달래며 치유하는 심리치료사 입티사암이 있었고, 쾌활하게 웃는 근육질의 남자 간호사 바드란이 환자들을 세심하게 간호하였다.

가끔 병동에서 환자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행사가 있어, 의료진과 환자들이 함께 요르단 전통음식을 먹고, 답카를 추며 함께 덩실거리기도 하였다. 수술실에 들어서면 까칠한 듯 하나 마음 여린 수술실 책임 간호사 사이프와 아랍남자들의 인사인 볼터치 인사를 나누고, 자타가 공인하는 훈남인 회복실 간호사 토우픽이 늘 상냥한 미소와 인사로 맞이하였다. 작년에 정형외과 전문의가 된 요르단 의사 수하입과 최신 의학저널을 읽으며 함께 공부도 하고, 72세의 나이로 이 미션에 참여하여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며 열정적으로 환자 치료에 대한 토론을 이어나가는 외과 전문의 스티브와 함께 양측 다리가 다친 환자를 한 쪽 다리씩 동시에 수술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선영이 들려주는 새 수술실에 대한 업데이트를 들으며 수술 일정을 조정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였다.

분쟁 지역에서의 활동은 오지에서의 활동과는 사뭇 달랐다. 긴장으로 시작했지만, 팀원들과의 보람찬 추억을 담고 간다.

평화로운 요르단의 정세 속에 국경없는의사회의 철저한 안전 수칙이 더해져 환자 치료에 편안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람사 미션은 시설과 인력구성 및 물품으로 보아 국경없는의사회의 가장 럭셔리한 미션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데, 이제 새로운 수술실이 생기고 국제연명(UN)에서도 이 수술실을 활용하여 시리아 의료진을 교육하는 교육센터로 만드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하여 또 다른 단계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정세는 순식간에 쉽게 변하기도 한다. 이틀 전에는 요르단에서 차량 폭파 사건이 일어나 요르단 군인 7명이 사망하였고, 이로 인해 국경이 완전히 닫혀버렸다. 이번에는 얼마나 닫혀있을지 모르지만, 그나마 환자들만 넘어올 수 있는 국경이었는데 그마저도 닫히니, 병원에는 새로운 수술실로 한층 역량이 강화되었는데, 새로운 환자는 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지난 2개월을 잠시 반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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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간의 미션 후 5일간의 요르단 여행을 하였다. 즐거운 여행이었지만 이제는 또 다른 느낌도 함께 느낀다. 해 뜨는 시간부터 해 지는 시간까지 음식은 물론 물조차 먹지 않는 아랍의 라마단 기간에 뜨거운 태양볕 아래 에서 여행을 하며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느끼다가 이 타들어가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고, 너무나 불투명한 미래를 안고 국경을 향해 걷고 걷고 또 걸어서 피난하는 난민들의 모습이 문득 상상이 되었다. 시리아 내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환자들은 계속 발생하고, 난민들은 아직도 여기저기 쌓여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가,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일부일 것이다. 여기서 의료진이 하는 중요한 일은 이들에게 희망의 끈이 있다는 사실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그리고 그 끈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려고 노력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활동은 이어지고 발전할 것이다. 후임선생님께 바통은 넘겨졌다. 미션 끝의 노곤함을 안고 이제 암만 상공의 국경을 지나 한국으로 향한다. 집으로 향한다.


웹툰 [보통남자, 국경너머 생명을 살리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1625/epis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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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헌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정형외과 전문의로, 2016년 요르단과 아이티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 구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전부터 국제 구호활동에 관심이 많아 탄자니아를 비롯해 네팔, 필리핀 등지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해왔다. 올해 요르단에서 시리아 전쟁으로 인해 외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일기로 적었고, 그 일기는 김보통 작가의 웹툰으로 재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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