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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의 문재인 캠프 합류는 '보수에 대한 배신'인가

'진보'보다는 '보수'에 훨씬 더 가까울 그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결정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나름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안보를 그토록 외치던 보수 정권하에서 정작 안보에 필요한 군의 변화에는 무감각하거나 외려 변화를 거부하는데 혈안이 되는 모습만 연출했고, 그런 현실이 바로 본인이 가장 열정적으로 추진한 특전사의 개혁 무산에서 극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겨우 칼 하나 안 사줬다고 그쪽에 붙냐'며 비아냥거리지만, 칼'을' 안 사줘서가 아니라 칼'조차' 안 사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 홍희범
  • 입력 2017.02.08 05:25
  • 수정 2018.02.09 14:12
ⓒ연합뉴스

작년에 전역식을 가지며 '참군인'으로 화제가 되었던 전인범 예비역 중장. 최근 민주당의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면서 화제와 논란 모두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직접 만난 기회는 아주 짧지만, 직접 만나 이야기한 소감으로나, 주변에서 그 동안 들은 이야기로 보나 소위 말하는 '진보'보다는 '보수'에 훨씬 더 가까울 그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결정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다. 솔직히 필자도 굳이 따지면 보수에 약간 더 가까운 입장인지라 그의 이번 결정을 존중은 해도 의아하게 여긴 것은 사실이다.

(작년 여름 전역식이 진행된 전인범 예비역 중장. 사진 출처: 월간 플래툰)

하지만 그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나름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안보를 그토록 외치던 보수 정권하에서 정작 안보에 필요한 군의 변화에는 무감각하거나 외려 변화를 거부하는데 혈안이 되는 모습만 연출했고, 그런 현실이 바로 본인이 가장 열정적으로 추진한 특전사의 개혁 무산에서 극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인범씨는 문재인 캠프로 합류하면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지난번 특전사에 갔는데, 그간 추진했던 많은 사업들이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특히 7만원짜리 특수작전 칼(서바이벌 칼)을 부결시켰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류 이유를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겨우 칼 하나 안 사줬다고 그쪽에 붙냐'며 비아냥거리지만, 상식적인 독자분들이라면 이 이야기가 칼'을' 안 사줘서가 아니라 칼'조차' 안 사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정도는 충분히 파악하실 것이다. 

(국군이 현재 사용하는 특전사용 대검의 원형이 된 독일의 KCB-77. 설계 자체가 1970년대 초반의 개념이거니와, 애당초 총에 대검을 착검하고 싸울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특전사로서는 적잖이 불편할 것이다. 사진 출처: http://www.usmilitaryknives.com)

사실 전인범씨가 특전사령관 재직 중 추진한 개혁, 특히 장비면에서의 개혁은 재직 중에도 순탄치 않았지만, 그 자리를 떠난 뒤 그의 말대로 그가 추진한 사업 대부분이 무산됐다. 문제는 그렇게 무산되는 상황이 다른 것도 아니고 '김정은 참수부대'를 만드는 등 대북 전략에서 특전사를 위시한 특수부대 전력의 비중이 전례없이 높아지던 와중에 벌어진 것. 겉으로는 특수부대의 위상을 높인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들의 전투력과 생존을 위한 투자에 한없이 인색했던 것이다.

사실 각 군 특수부대, 특히 특전사에 대한 투자는 특수부대라는 위상으로 보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력면으로 보나 지나치게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군 특전사 정도면 미군 특수부대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NATO주요국들의 특수부대 수준은 맞춰줘야 하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대북 타격 및 보복의 핵심 전략이라고 칭송하는 부대들에게 사실상 미군 특수부대가 20년 전에 쓰던 수준의 장비들을 지급하고, 보다 못해 대원 개인들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 더 나은 장비를 사서 쓰는 것조차 이런저런 명분을 들어 금지해온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나마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나갔다 싶었더니, 퇴임한 지 불과 2년도 채 안되어 고스란히 원점으로 회귀하는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

국방부가 여기에 대해 해명한다고 자료를 내놓았지만, 그것도 잘 읽어보면 해명이 아니라 또 다른 국군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심한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미국 거버사의 LMF-II 서바이벌 나이프. 특전사 같은 특수부대의 입장에서는 대검보다는 이처럼 불필요한 기능 없이, 휴대가 편하고 격투전과 야외 생존 모두에 요긴한 서바이벌 나이프류가 훨씬 요긴하다. 사진 출처: 제작사 GERBER)

국방부는 6일자로 "특전사 장병들이 생존용으로 사용하는 특수작전칼을 당초 7만원씩에 구입하려고 했으나 더 나은 15만원짜리로 구입하기로 하고 지난해 예산에 편성해 확정했다. 전인범 전 사령관이 지난해 예산 편성과정을 잘 몰랐기 때문에 나온 발언인 듯 하다"며 해명 자료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 뒤에 덧붙인 내용은 정말 '가관'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올해부터 2022년까지 장병들에게 지급된다."

설령 전인범씨가 특수작전 칼 도입이 부결된 것이 아니라 올해부터 도입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쳐도 입장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 같다. 도대체 개당 15만원에 구입하기로 한 '더 나은 칼'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지만, 무엇이 들어가건 도입 완료 시점이 2022년이라는 사실은 군과 국방 당국의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필요한데 돈을 쓰는데도 인색하지만, 막상 쓸 때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인범씨가 전 사령관일 때부터 추진한 사업이라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그가 퇴임한 시점인 2015년 초반보다는 더 일찍 시작됐을 것이다. 즉 지금 기준으로 대략 3년 전부터 추진됐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개당 7만원짜리였다면 많이 잡아도 9억 정도에 불과한 칼을 도입하는데 3년을 질질 끌더니, 그나마도 예산을 올리네 뭐네 하면서(군에서 주장한 예산은 두 배가 넘는 18억 5천만원) 도입 완료까지 무려 5년을 더 끌었으니 사업 시작부터 종료까지 8년이나 걸린 셈이다.

참고로 추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나마 올해에는 5천만원의 예산으로 소량의 구매만 시험적으로 해 어떤 칼을 도입할지 결정한다고 한다. 전임 사령관이 사업 추진한 지 몇 년이 지났건만, 아직 종류도 결정 안된 것이다!

이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이야기인지 좀 살펴보자. 최근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이 전력화됐다고 해군에서 발표했다. 와일드캣 도입 예산은 5,900억원이 좀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것을 기종이 선정된 시점부터 전력화하는 데 걸린 시간은 4년이다. 물론 천안함 폭침 등으로 불거진 대북 대잠전력 문제라는, 시급한 사안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몇천억원짜리 사업이 18억원짜리 사업보다 더 일찍 끝나는 것이다. 아무리 특전사라는 상당한 규모의 조직 구성원 전원에게 지급할 물량이 걸려있다 해도 매우 납득하기 힘들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군에서도 나름 변명할 여지는 있을 것이다. 예산을 확보하고 필요한 절차를 모두 거치는 등의 과정을 밟으면 어쩔 수 없이 오래 걸린다고. 그런데 애당초 특수부대가 정규군과 똑같이 방위사업청 등의 정식 구매 채널을 다 밟고 모든 장비를 구매해야만 하는 자체도 또 문제다.

21세기 들어 대부분의 선진국 특수부대는 급변하는 각종 장비를 제 때 구매하기 위해 정식 구매 채널과는 별도로 특수부대들이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을 편성해 재량껏 원하는 장비를 따로 구입할 수 있게 했다. 아예 부대 자체로 법인 카드를 발급해 필요하면 인터넷으로도 신속하게 장비를 구입할 수 있게 한 경우도 많다.

그런 와중에,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지척에 법적으로 교전 당사자가 도사리고 있으며 유사시 핵심 보복전력으로 부각된다는 나라에서 특수부대 장비를 한없이 답답한 '거북이 걸음'으로 조달하고 있다. 심지어 특전사에 2015년부터 지급된 부무장(권총)조차 미국제의 M1911A1(45구경)이다.

(2015년, 당시 갓 지급된 미국제 .45구경 권총으로 훈련을 진행중인 특전사 대원들. 사실상 전부가 제작된 지 70년이 넘은 총들이다. 상태가 좋은 총들만 골라 지급했다지만, 그래도 현대전에 적합한 권총과는 꽤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진 출처: 월간 플래툰)

간단하게 말해, 미국에서 2차 대전 중에 생산된 뒤(즉 가장 새로 만든 총도 1945년제다) 우리에게 원조한 노후 총기이며 국군에서도 구식이라고 분류해 신형인 K5로 대부분 대체한 실정이다. 사실상 정규군에서 '버리기는 아까워' 보관하던 물건들을 특전사에 떠넘긴 셈이다.

이런 오래된 총이 지급된 사연도 답답하다. 전인범 전 사령관 재임 중 선진국 특수부대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특전사에 대한 부무장 지급을 추진했지만, 고성능의 해외 권총은 둘째 치고 국산인 K5권총을 지급하는 것조차 수많은 행정적 장벽과 예산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일단 구식이라도 군에서 보관하던 45구경 권총을 지급한 뒤 나중에 어떻게든 신형 권총을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말로는 핵심 대북전력이자 세계 최고의 특전사라고 칭송하면서 정작 권총 하나도 최소 72년 이상 된 물건들을 주지 않으면 한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게 과연 실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현실일까.

이 정도면 알만한 독자 분들은 잘 이해하실 것이다. 칼 문제는 훨씬 큰 문제를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말이다. 앞서 언급한 해상작전 헬기도 그렇다. 부실한 대잠전력이 큰 문제가 되었지만 정작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전력 중 하나인 헬기를 구매하는데도 예산부터 시작해 수많은 문제를 낳은 뒤에야 원래 해군이 원하던 것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기체를 구입하는데 그쳤다. 여기에 신형 전차 '흑표' 역시 '심장이 외국제면 국산이 아니다'라는 해괴한 업체의 논리에 휘둘리며 파워팩(엔진+변속기) 국산화의 지연으로 전력화 일정까지 휘둘리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식으로 군과 안보의 문제를 하나씩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정말 전인범씨가 문재인 캠프에 붙은 것이 '보수를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입으로 비난하지만 말고 보수 진영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보수 진영은 군 및 안보 관련한 해묵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는커녕 숨기는데 급급하거나 외려 미화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단순히 진영 논리로만 재단하지 말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를 바란다.

* 페이스북: PLATOON MAGAZINE, 웹사이트: platoon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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