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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특권 없는 세상'

정유라의 특권에 분노하는 국민도 그런 특권을 가능하게 하는 학벌주의에 대해서는 의외로 둔감한 경우가 많다. 청문회에서 고위공직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 다들 혀를 차면서도 정작 부동산 불로소득을 허용하는 제도 자체를 확실하게 손볼 생각은 안 한다. 제도 앞에서 개인은 수동적이 되어 개혁보다는 적응을 택한다. 심지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쟁취한 특권은 정당하고 나아가서는 특권적 제도마저도 나쁘지 않다고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특권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사회 상층부에 많이 포진해서 그런지, 특권을 개혁하자는 주장을 불온시하기까지 한다.

  • 김윤상
  • 입력 2017.02.06 06:42
  • 수정 2018.02.07 14:12
ⓒ뉴스1

특권에 분노하는 국민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표출된 국민적 분노에는 대통령의 사심과 무능, 최순실의 국정 농단 외에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의 이화여대 학사 특혜도 크게 작용했다. 어쩌면 정치에 대체로 무관심한 일반 국민에게는 이게 더 큰 이유일 수도 있다. 다들 대학 입시에 목을 매는데 정유라는 불법적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하고 학점까지 공으로 딸 수 있었다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입학시험이든 다른 시험이든 점수는 실력과 시험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며, 시험 관리가 공정했다면 운이 작용했다고 해서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예를 들어 강남 지역 고등학교 출신 학생은 가산점을 10점씩 더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면 다른 사람은 당연히 반발할 것이다. 국민이 정유라 비리에 분노하는 이유도, 출신 대학을 중시하는 학벌주의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최순실이 부정한 방법으로 딸에게 학벌특권을 얻어 주었기 때문이다.

특권은 노력과 운에 비해 남보다 더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원인이다. 특권은 불로소득을 낳고 특권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차별을 받게 된다. 이런 특권을 정당하다고 보는 사람은 없는데도 우리 사회에는 의외로 특권이 많다. 학벌특권 외에도 토지특권, 남성특권, 정규직특권, '갑질' 특권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규모도 크고 우리 생활과 가장 가깝기도 한 특권은 역시 토지특권이다.

가장 중요한 특권은 토지특권

토지소유자는 토지 가치 상승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토지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토지소유권은 특권이다. 〈토지+자유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보면 최근 9년 간(2007년~2015년) 부동산 소득은 연평균 478조 원(매매차익 273조 원, 임대소득 205조 원)이며, 이는 GDP 대비 30~44%에 이르는 규모다. 불평등도 측정치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지니계수'는 분포가 완전히 평등할 때 0, 완전히 불평등할 때 1이 된다. 우리나라 가구 소득분포의 지니계수는 0.43로 상당히 높은 편인데 부동산 소득 불평등의 영향이 30%~40%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굳이 이런 통계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최근 수십 년 간 국민의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한 중요 원인으로 부동산 불로소득을 꼽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은 개인의 경제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부동산 투기가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여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는 것을 보더라도 부동산의 중요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정유라의 특권에 분노하는 국민도 그런 특권을 가능하게 하는 학벌주의에 대해서는 의외로 둔감한 경우가 많다. 청문회에서 고위공직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 다들 혀를 차면서도 정작 부동산 불로소득을 허용하는 제도 자체를 확실하게 손볼 생각은 안 한다. 제도 앞에서 개인은 수동적이 되어 개혁보다는 적응을 택한다. 심지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쟁취한 특권은 정당하고 나아가서는 특권적 제도마저도 나쁘지 않다고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특권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사회 상층부에 많이 포진해서 그런지, 특권을 개혁하자는 주장을 불온시하기까지 한다.

'특권 없는 세상'을 위한 대선 경쟁이 되기를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국토보유세를 거두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하였다. 특권이익은 당연히 국민 모두의 것이고 국민 모두가 동일한 지분을 갖는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동일한 금액을 주는 기본소득 방식이든 필요한 사람만 골라서 지급하는 선별적 방식이든, 복지 재원으로서 특권이익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다른 재원으로 복지에 충당하면 '개미가 베짱이를 먹여 살린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게 되는데 이에 논리적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세금, 특히 부동산 이익 환수를 건드리는 것은 득표에 불리하다는 불문율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를 보수 언론이 '세금 폭탄'이라고 부르면서 대대적으로 공격하는 바람에, 종합부동산세를 전혀 내지 않는 대다수 국민마저 동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토지특권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런 공약은 정말로 신선하다. 대통령이 되건 안 되건, '특권 없는 세상'과 같은 건강한 화두를 던지는 후보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물론, 박근혜 공약처럼 당선 후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공약이 안 되다는 조건이 붙어야 하지만.

* 대구 지역 인터넷 매체인 '평화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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