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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취준생'인 시대

  • 박수진
  • 입력 2017.02.06 05:33
  • 수정 2017.02.06 05:43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취활 가족 ~분명 잘 될 거야~'

‘취활’은 취업활동을 뜻하는 일본의 신조어다. 국내로 치면 ‘취준’(취업 준비)에 해당하는 말이다. 다만 ‘취준생’이라는 단어로 자주 쓰이면서 젊은층의 실업 문제로 제한되는 듯한 국내의 경우와 달리, 일본의 ‘취활’이란 단어는 더 폭넓게 사용된다. 가령 거품 경제의 붕괴 뒤 중산층 몰락으로 중년층도 적극적인 ‘취활’에 뛰어들었고,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는 노년 세대까지 ‘취활’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TV아사히에서 방영을 시작한 '취활 가족 ~분명 잘 될 거야~'(이하 '취활 가족')는 이러한 사회적 현실을 묘사한 작품이다. 홈드라마의 외피 안에 부모 세대부터 자녀들까지, 온 가족 구성원이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극적 성격을 띠고 있다.

대기업 인사부장인 도미카와 요스케(미우라 도모카즈)와 사립학교 교사 미즈키(구로키 히토미) 부부, 보석 회사에서 일하는 딸 시오리(마에다 아쓰코), 아직 직장을 얻지 못한 아들 히카루(구도 아스카) 등 4인 가족이 주인공이다. 처음에는 소위 ‘삼류대학’을 졸업하고 서류 전형에서부터 탈락하기 일쑤인 히카루를 통해 청년 실업의 현실을 보여주지만, 갈수록 고용불안은 도미카와 온 가족, 더 나가 일본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된다.

이는 도미카와 요스케의 주업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신입사원 채용과 경력사원 정리해고 업무를 동시에 담당하는 요스케와 동료들의 갈등은 대기업에서조차 상시화된 고용불안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낸다. 능력과 신망을 갖춰 임원직이 보장된 요스케마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한순간에 직장에서 해고당할 위기에 처하는 장면은 평생직장의 신화가 완전히 부서진 현실을 나타낸다.

딸 시오리의 사례는 더 암울하다. 잔업수당도 없이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성희롱이 일상인 회식 참여를 강요받는 모습은 과잉노동과 성차별에 시달리는 청년 여성의 이중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취활 가족'은 실업률 3.1%, 취업내정률 80%대 후반 등 고용수치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아베노믹스의 이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엄청난 급여 차이나 일자리의 낮은 질과 같은 어두운 현실이 숨어 있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국내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근 정부가 4%를 밑도는 것으로 발표한 공식 실업률과 달리 체감 실업률은 11%를 넘어서고, 경제적 어려움을 계량화한 경제고통지수는 무려 공식지표의 12배 이상이라는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는 눈에 보이는 수치와 현실의 간극이 얼마나 큰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취준생’의 고통에 가려진 ‘취활 사회’ 그 자체인 대한민국의 현실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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