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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사는 내가 아니라 커피가 쓴 거였구나

▶우리나라는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장의 근로시간을 자랑하는 초고도의 피로사회입니다. 이런 피로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커피는 필수입니다. 많은 사람이 낭만이 아니라 무한경쟁에 탈락하면 끝이라는 절박함으로 쓰디쓴 커피를 붓습니다. 그런 커피를 1주일간 마시지 않아봤습니다. 업무효율·자기계발의 구호가 난무한 피로사회에서의 망명을 꿈꿔봤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누군가 봤을 때, 100%는 아니지만 나름 반듯한 척추를 곧추세우고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때 의자에 엉덩이만 구겨넣은 채 책상에 질척하게 흐르고 있었다. 힘빠진 내 손가락은 무의미하게 키보드 자판을 적실 뿐이었다. 너무 졸려서 고개가 자꾸 키보드 위로 떨어졌고 결국 낮잠을 자야 했다. 거기다 잘 골지 않은 코까지 골아 동료들에게 지청구를 들었다.

내가 좀비처럼 축 처진 건 하루에 2~3잔 마시던 커피를 끊은 탓이다. 커피를 끊은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매주 극심한 ‘번아웃’(탈진)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업무를 간단히 소개하면 나는 토요일에 나오는 신문을 만드는 기자다. 그러니 늦어도 금요일엔 내가 맡은 기사를 마감해야 한다. 매주 목요일 밤을 거의 새운다. 덕분에 마감이 끝난 주말엔 내내 잔다. 침대와 소파를 옮겨가며 자다가 아내의 혀 차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면 벌써 일요일 오후다. 이 정도면 황혼이혼 사유가 될 것도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내 쓸데없는 집중력의 원인은 ‘커피’

허둥지둥 내 업무 스타일을 분석해봤다. 그랬더니 아직도 초년병 기자처럼 플러스의 법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꿀벌처럼 무조건 많이 모아 오려는 거다. 하지만 기사를 쓸 때는 마이너스의 법칙이 중요하다. 취재한 팩트 가운데 부각할 것을 찾아 가다듬고 보강해야 한다. 그래야 멋진 제목을 달 만한 매끈한 기사가 나온다. 하지만 나는 습관처럼 목요일 밤을 새우며 자료를 뒤적거리고 있거나 금요일 오전까지 전화 취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운동도 명상도 그리고 담배도 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에 딱 커피 석 잔을 마실 뿐이다. 녹차도 홍차도 초콜릿도 먹지 않는다. 그러니 과도한 집중력은 내 체력, 정신력 혹은 니코틴 등의 다른 각성 물질 탓이 아니라는 뜻이다. 번아웃의 범인은 커피가 틀림없었다.

커피를 끊으면 과잉 집중력에 따른 번아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좋은 기삿거리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커피는 ‘현대인의 아편’이라고 부를 만큼 중독성이 강하지 않은가? 그런 중독성에 허우적거리는 나를 묘사하면 괜찮은 기사가 될 것 같았다.

커피를 끊는 결전의 날은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지난달 27일로 정했다. 연휴라 업무가 없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충분히 견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커피를 띄엄띄엄 본 거였다. 휴일인 만큼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니 커피 생각이 간절해졌다. 빵을 먹은 게 실수였다. 찌뿌둥해진 몸을 이끌고 낮잠을 잤다. 아뿔싸. 일어나니 5시였다. 낮잠을 무려 3시간 이상 잤다.

업무도 없는 날이 이 정도라니, 나는 연휴 때 커피를 끊는 내 작전이 괜찮았다는 자기긍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날밤 독주를 딱 한잔 마셨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커피 대신 술 같은 다른 각성 물질을 마셔야 하는 건가라는 우려도 들었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각성효과를 느끼는 것은 카페인 때문이다. 카페인은 몸이 피곤하다고 느낄 때 뇌에서 만들어지는 수면 유도 물질인 아데노신이 쌓이는 것을 막는다. 거기에 카페인은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높이고 간을 자극해 혈당을 분비시킨다. 졸립거나 피곤할 때 커피를 마시면 활력을 느끼고 반대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피곤함을 느끼는 이유다.

이틀째인 설날 당일 오전부터 머리가 무거웠다. 왼쪽 뒷머리 부분에 커다란 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전형적인 카페인 금단 증상인 두통이 찾아온 거다. 벌레는 이내 꼬리 달린 쥐로 변신했고 꼬리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꼬리 달린 두통을 느껴보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커피 욕구 잊으려고 10년 만에 조깅도

가족과 신년하례를 하고 식사를 한 뒤에 다시 잠이 쏟아졌다. 가족과 친척을 만났기 때문에 낮잠을 잘 수가 없었다. 허벅지를 꼬집으며 꾹 참아야 했다. 대신 틈틈이 조깅 앱을 내려받았다. 카페인 중독을 극복하는 최선은 운동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29일 일요일 아침 아내에게 밤새 심하게 코를 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면 잘 때 코를 골지 않는다. 커피를 끊으니 수면 패턴도 영향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날 아침부터 나는 뛰기 시작했다. 거의 10여년 만에 시작한 조깅이었다. 요즘 조깅 앱은 너무 잘 나와 내가 뛴 거리와 속도는 물론 코스까지 지도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줬다. 그래도 커피 한잔의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밤 10시면 잠이 쏟아졌다. 누우면 바로 잤다. 보통 내 취침 시간은 새벽 1시쯤이었다.

커피를 끊은 지 4일째 되는 30일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진 것이다. 7시부터 20분 단위로 맞추어놓은 여러 번의 알람 소리를 듣고 겨우 일어났던 예전의 나와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날은 대체휴일이었지만 우리 부서는 전원 출근했다. 월요일은 기획회의가 있는 날이다. ‘커피 없이 1주일 살아 보니’란 아이템을 내놓았다. 다들 커피를 마시니까 쉽게 공감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최우성 에디터는 ‘커피를 못 마신다’는 걸 깜빡했다. 최 에디터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정말 힘드냐”고 물었다. 커피 마니아로 집에서 적도 인근의 웬만한 나라 원두를 직접 배전하는 이문영 팀장은 “커피 없이 사는 것보다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사는 게 더 어렵지 않나”라며 물타기에 나섰다. 신성한 커피를 모독하지 말라는 결의가 느껴졌다. 온몸으로 생고생을 하며 마련한 기획안이 한순간에 표류할 위기였다. 하지만 부푼 뇌를 열심히 굴려가며 커피의 심각한 금단 증상을 설명해 겨우겨우 기획안을 관철시켰다. 커피 없이 지낸 지난 나흘이 아까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커피, 아랍과 유럽에서 사고의 혁명 가져와

커피의 장점인 이성과 단점인 중독은 모두 화학식이 C8H10N4O2인 카페인에서 비롯된다. 카페인은 질소를 포함한 식물성 유기화합물(알카로이드)의 한 종류다. 식물이 자신을 갉아먹는 곤충에 대응하기 위해 합성하는 250종의 알카로이드의 대표적인 것이 커피의 카페인과 담배의 니코틴과 양귀비의 파파베린이다.

비슷한 중독 성분이 있지만 카페인은 담배와 아편과 다르게 인류 역사를 긍정적으로 바꿨다. 빵으로 인류의 역사를 푼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은 <커피의 역사>에서 커피는 낭만과 신성이 춤추던 ‘와인의 시대’를 끝내고 합리와 과학의 근대를 이끌었다고 묘사했다. 실제 각성을 가져다주는 커피는 전파되는 곳마다 생각의 혁명을 불러왔다. 아랍이 중세시대 유럽보다 먼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고 세계 무역에 먼저 나섰던 것도 커피가 열어준 지평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 유럽은 종교의 어둠에 동양은 전제군주의 암흑에 빠져 있었다.

커피는 이슬람과 맞붙은 동유럽을 거쳐 17세기 유럽에서 대중화됐다. 영국인들의 커피 사랑이 각별했는데 커피숍에서는 신분이나 재산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토론에 참여할 수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 왕립학회와 정당 그리고 계몽주의가 태동했다. 이런 움직임은 이웃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서 나는 점차 미몽에 빠져들었다.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1월말까지 하기로 한 연말정산이 남들은 클릭 몇 번이면 끝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따로 없었다. 커피와 관련된 책과 자료를 쌓아놓고 읽었지만 머리에 도통 들어오지 않았다.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기’를 쓸걸 그랬나 하는 때늦은 후회가 들었다.

병든 닭처럼 꾸벅거리고 있는 나는 동료들에게 괜찮은 놀림감이었나 보다. 나와 나란히 앉은 이문영 팀장과 박기용 기자는 계속 커피 원두를 수동 분쇄기로 갈면서 커피를 내렸다. 커피를 마시지 못할 때 향긋한 원두의 냄새는 저주였다. 특히 옆자리의 이 팀장은 시도 때도 없이 커피를 갈아 마셨다. 초콜릿 맛이 나는 원두 배합을 열심히 실험중이었다. 점잖은 김종철 선배마저 이 팀장의 실험 커피를 음미하며 나에게 “한 모금만 하지”라고 약올리듯 권했다. 하늘하늘한 그 향기를 맡는 순간 나도 모르게 커피 동냥을 해 다 된 기획을 망칠 뻔했다.

물론 커피를 끊으면 장점도 있다. 화장실 가는 횟수가 절반 이하로 준다. 카페인의 이뇨작용이 사라진 거다. 그렇다고 소변의 양이나 세기가 강해지는 건 아니었다. 제로섬 법칙 따위는 비웃는 방광의 신비였다. 그렇지만 커피가 전립선과 방광에는 분명히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커피를 안 마신 지 6일째 되던 날이 가장 힘들었다. 마감이 있는 탓이다. 지독한 숙취로 고생할 때처럼 집중하면 할수록 집중이 안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길거나 짧거나 기사는 첫 문장이 승부처다. 첫 문장에서부터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으면 금세 신문을 넘기는 게 사람의 심리다. 그러나 목요일 오후까지 미끈한 첫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쓴 기사는 내 머리가 아니라 커피가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인 중독, 정신병으로 분류돼

하지만 커피를 낭만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커피는 중독성이 있다. 2013년 발표된 미국의 정신의학 진단기준 5번째 개정판(DSM-5)은 커피 2~3잔을 마시지 않을 때 두통과 함께 졸림 등이 나타나면 카페인 관련 정신장애로 진단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정신질환의 기준을 너무 넓혔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카페인 중독은 다른 질병과 겹질 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마음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통해 심리와 관련된 고정관념 뒤집기를 시도했던 김병수 아산병원 교수(정신의학과)는 “커피를 마시고 성과를 내려는 것은 마른 수건 짜기에 비유할 수 있다”며 “커피를 마시면 통제감을 얻는다고 착각하지만 금세 금단현상이 일어나 다시 커피를 찾는 번아웃 혹은 자아고갈의 악순환에 빠진다”고 말했다. 그는 커피를 건강하게 마시려면 오전에 커피를 마시고 오후에 피곤해지면 커피를 마시지 말고 휴식을 취하거나 몸을 움직이라고 충고했다. 카페인이 몸에서 배출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오후에 마시면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커피를 얼마나 많이 소비하고 있는지는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를 보면 2008년 커피 국내 판매액은 1조1554억원이었지만 2015년에는 2배 가까이 늘어난 2조1194억원이었다. 현대인들이 이처럼 커피에 의존하는 철학적 이유는 뭘까? 재독 철학자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그의 책 <피로 사회>에서 “근대 이전의 규율사회에서는 지배자가 ‘너는 해야만 돼’라는 고통을 줬지만 현대의 성과사회에서는 ‘너는 할 수 있다’는 정언이 지배한다”며 “이런 상태에서 최고경영자뿐 아니라 실업자도 자신을 소진시키는 병에 걸린다”고 지적했다. 근대 시민혁명으로 노예들이 주인이 됐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경쟁으로 내몰며 다시 노예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계몽주의 시대 커피로 쟁취한 자유를 포기하고 노예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

3일 새벽 4시. 거의 날밤을 새우고 기사를 마무리한 뒤 1주일 만에 커피를 내렸다. 보통은 30장 안쪽으로 손을 터는데 이날은 40장 가까이 썼다. 카페인 부족 탓일 것이다. 여명 속에서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는 각별했다. 설탕 없이 먹는데도 프림과 설탕이 잔뜩 들어간 봉지커피의 달달함이 느껴졌다.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줄 만큼 머릿속도 환해졌다. 스스로를 소진하는 번아웃의 숙명에 살고 있는 ‘피로사회’ 시민인 나의 혈액형은 부인할 수 없는 ‘커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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