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조폭'들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방금까지 간호사를 붙들고 소리 지르던 덩치 큰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외쳤다. "이 새끼가, 이 새끼 너 뭐 하는 거야." 그 태도가 너무 위협적이라 무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제발, 제발 당신 친구분을 살리려고 합니다. 저는 여기 유일한 주치의고, 당신 친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건 꼭 필요한 시술인데다가 위험한 시술이기도 합니다. 여기 전부 멸균되어 있으니 제게 손대지 말고 제발 나가주세요." "미친새끼. 어린 새끼가 나한테 나가라고? 나가라고?" 두 손과 환부가 소독된 상태였으므로 마음이 급해져 더 이상 응대할 수 없었다.

  • 남궁인
  • 입력 2017.02.03 11:06
  • 수정 2018.02.04 14:12

1.

토요일 새벽 두시였다. 응급실이 가장 혼잡스럽고, 각종 사건 사고로 붐빌 시간이다. 분명히 응급실은 병원에 속해 있다. 하지만 바깥세상의 사람들은 가벼운 기척에도 반응하는 자동문의 낮은 문턱만 넘어서면 바로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다. 대부분 방문을 예기치 못했던 사람들이 이 공간으로 쏟아지면, 그들은 필경 응급실이 가지고 있는 병원 특유의 질서와 섞여야 한다. 그러면 이곳은 바깥세상의 활달함과 병원의 차분함이 섞여 혼란스럽게 변모하기 시작한다. 곧 각자의 목소리가 오가고, 하얀 병원을 배경으로 특유의 번잡스러움이 번져, 여기는 바깥세상의 혼돈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공간이 된다. 그것은, 어떤 요일이건 새벽 두시면 불을 끄고 안온한 잠에 빠지는, 그리고 그 어둡고 고요한 공기가 흡사 바깥세상에서 환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병원 위층의 수많은 병실과 중환자실과는 완전히 대비된다.

응급실이 활기를 띠고 붐비는 시간은 사회가 에너지를 분출하는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사람들이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가정에서 정돈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땐 그만큼 사건이나 사고도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 틀에서 나와, 거리에서 친구, 동료들과 술을 마시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을 자유롭게 하며 각자의 욕망이 서로 부딪힐 때 사건과 사고는 벌어진다. 그 숱한 사고들 중에서 누군가가 아프거나 다친다면, 그 사고의 종착지는 근처에 있는 응급실이 되고, 곧 나는 그 생생한 단면을 수습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일정 반경 안에 있던 유희의 씁쓸한 종말들을 마주한다. 다만 그들은 사건을 수습하고 물리적으로 응급실까지 도달해야 한다. 그래서 그 사고와 나의 목격과는 시간차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건은 밤을 새우도록 끊임없이 이어진다. 고로 나는 대개 아침까지 그 사건들을 전부 받아내야 한다.

그리하여 토요일 새벽 두 시는, 금요일 밤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한창 술에 취해 비축되었던 에너지를 내뿜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 사회의 드물고도 흔한 투닥거림을 한참 받아내야 하는, 나에겐 아주 괴로운 시간이었다. 이미 계단에서 구른 부장님과, 시비가 붙어 서로의 얼굴을 사정없이 할퀴어버린 이십 대 여자 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다 도저히 치통을 못 견뎌 온 중년 남성의 취기 섞인 입내를 마주하고 나온 참이었다. 역시 가볍게 자동문이 열리고, 대체로 헐렁하고 검은 옷을 입은 차림새와 불량스러운 분위기로 미루어 보건대 흔히 '양아치들', 더 나아가서 '조폭'이라고 불릴 것 같은 사내들이 급하게 응급실로 들어왔다.

"담당이 너냐? 우리 형님 잘 좀 봐드려라." 그들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멱살을 잡아들 기세였다.

2.

등장부터 소란스러웠다. 1차, 2차를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3차쯤 되는 유희의 장소로 이 병원을 선택한 듯했다. 사내들은 함부로 욕설을 지껄이고 의사를 찾으며, 그들의 보스로 보이는 한 사람을 호위하는 모양새로 들어왔다. 그 보스로 보이는 사내는 가운데에서 부축을 받으며 무엇엔가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이는 많지 않아 보였으나 유난히 불량스러웠고, 하얀 와이셔츠 아랫자락에 시뻘건 피가 묻어 있었다. 아마도 저 때문에 이곳으로의 행차를 선택한 듯했다. 입구에서 들어와 침대로 누우라는 안내에 벌써부터 드라마에서 본 듯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 위세가 흡사 임금과 그를 호위하는 신하들 같았다.

나는 침대에 누운 환자를 마주하러 몸을 옮겼다. 원칙상 보호자는 한 명만 옆에서 대기해야 하지만, 그들은 수십 명이 곧 병원 침대를 들어 옮길 것처럼 옆에 딱 붙어서 환자를 수행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언제나처럼 그들을 물리적으로 제지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그들을 비집고 들어가야만 환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들큼한 술김과 역겨운 담배 냄새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담당이 너냐? 우리 형님 잘 좀 봐드려라." 그들은 벌써부터 조롱 섞인 말을 쏟아내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멱살을 잡아들 기세였다.

옆에서 간호사는 금식을 안내했지만, 듣는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간호사는 혈압과 맥박을 재려고 환자의 팔에 손을 댔고, 이 사내들은 거친 손아귀로 여린 손길을 폭력적으로 뿌리쳤다. "형님한테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병원에서 하는 짓이라곤 한심하게." 그들의 위화감은 곧장 주먹이 날아올 기세였다. 단순히 원칙을 지키자는 읍소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의사인 나의 손길까지는 비아냥거리면서도 거부하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기분을 느끼며 그의 옷자락을 걷었다. 왼쪽 하복부에 피가 울컥리며 흘러내리는 4cm 정도 되는 자상이 있었다.

"어떻게 하다가 다치신 겁니까?"

"의사가 보면 모르냐? 우리 형님이 노래방에서 미끄러져서 배에 칼이 들어갔다. 빨리 꿰매라 가게."

꼬이고 취한 어투였고, 희곡에서 뽑은 대사 같았다. 굳이 내가 의사가 아니었어도 이 말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누군가가 칼을 쥐고 이 사람에게 꽂았다. 나는 엄한 분위기에서 뜨악함을 속으로 삼키고, 열상의 깊이를 확인하기 위해 장갑을 낀 손으로 상처에 손을 넣었다. 손가락은 쑥 들어갔고, 뜨거운 복강과 흘러나오는 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장 천공 가능성이 높았고, 이 사람은 당장 수술이 필요한 중환이었다. 나는 즉시 설명했다.

"칼이 복강을 뚫었습니다. 일단 개복수술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대장이 찢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속하게 CT를 촬영하고, 수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환자에게선 기대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니가 뭔데 그딴 걸 하겠다는 거야. 헛소리 말고 빨랑 꿰매. 집에 가게."

옆에 있는 한 무리의 남자들도 비슷하게 빈정거렸다.

"지 맘대로만 하는 돌팔이구만. 어서 하필 돌팔이 새끼가 걸렸어."

마음이 푹 가라앉아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중환이 치료에 불응하는 상황. 하지만 이들에게 환자를 마주한 의사의 권위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렇다고 의학적 원칙이나 사망 가능성에 읍소해본들 눈곱만큼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헛된 말인 줄 알면서도 원칙을 다시 호소했다.

"일단 검사만이라도 합시다. 이 상처 진짜 큰일 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짧은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는지,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에이, 밥맛 떨어져. 담배나 피우러 가자."

원칙상 응급실에 내원하는 모든 환자는 물을 포함한 금식이다. 더욱이 담배는 환자에게 상식적으로 안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원칙을 지킬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침대 옆에 서 있는 나를 세워두고 환자까지 전부 담배를 피우러 응급실 밖으로 우르르 나가버렸다. 이들을 물리적으로 제지할 도리는 없었다. 다른 일마저도 쌓여있었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환자로 돌아섰다. 처치실에서 나는 서로의 얼굴을 할퀸 여자 둘을 눕혀놓고 하나하나 상처를 봉합하고 있었다. 마무리될 때쯤, 처치실 문으로 방금의 사내들이 소리치며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형님이 똥 마려우시댄다." 피칠갑한 와이셔츠의 사내는 정말 변이 마려운 듯 약간 더 비틀거렸고, 사내들은 같이 우르르 화장실로 몰려갔다. 경박하고 천박했고, 한편으로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검은 옷의 사내들 사이에서 의료진은 피로 범벅된 커다란 몸집의 환자를 들어 침대로 옮겼다.

3.

봉합이 마무리 될 때쯤, 사내들이 갑자기 소란스럽게 크고 다급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마무리하고 봉합실에서 나가 상태를 파악했다. 환자가 바지춤을 미처 반 밖에 올리지 못한 상태로, 화장실 문 앞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져 있었다. 기어서 화장실에서 나왔는지 그의 뒤로 핏자국이 죽 이어져 있었다. 와이셔츠는 더 흥건한 빨간빛으로 보였고, 그의 바지춤이 한 눈에도 피범벅이었다. 나는 달려가 그를 흔들어보았다. 의식이 없었다. 바지를 마저 내리고 그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었다. 손은 삽시간에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인간의 대장은 오른쪽에서 올라가 위로 돌고 왼편으로 내려와 항문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오른쪽 대장 출혈은 항문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왼쪽 대장 출혈은 금방 항문까지 도달한다. 이 사람의 상처는 왼쪽이었으니, 일단 칼이 대장을 찢어버린 건 확실하다. 곧 잘린 장에서 쏟아지는 피가 직장을 가득 채웠고, 그는 참을 수 없는 변의를 느꼈을 것이다. 그는 변기에 앉자마자 본능적으로 자신이 쏟아내는 것이 순전히 핏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직장 안의 압력이 갑자기 빠져나가며 출혈이 가속되자 삽시간에 의식이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히 생명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 예감과도 같은 느낌이 온몸을 감싸자, 그는 자신의 꼴을 개의치 않고 핏줄기를 흘리며 기어 나와 문 앞에 쓰러졌다.

이제 그는 다행히 어떤 치료도 거부하지 못했으므로 의료진은 그의 혈압과 맥박을 잴 수 있었다. 맥은 간신히 잡혔고, 혈압도 낮았다. 이젠 진짜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 명백한 중환이었고, 최대한 빠르게 수술을 준비해야 했다. 잠시 당황한 듯한 검은 옷의 사내들 사이에서 의료진은 피로 범벅된 커다란 몸집의 환자를 들어 침대로 옮겼다. 그는 침대에 사지를 뻗은 채로 쿵 하고 떨어졌다. 그가 처음 쓰러진 자리부터 침대까지 굵은 핏방울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범벅되어 있었다.

치료는 이제 순조롭게 진행될 참이었다. 그의 의식은 전혀 깨어나지 않고 있었고, 아무렇게나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그에게 지금이라도 산소를 투여하고, 소변량을 체크하고, 수액과 피를 신청하고, 어깨 아래에 중심정맥관을 잡고, 외과를 연결해서 수술방으로 보내면, 환자는 그럭저럭 살 확률이 높았다. 방금 피가 쏟아지고 죽어가는 꼴을 봤으니 이제 사내들은 진료를 거부한다든지 당장 꿰매고 집에 가자는 말은 못할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했다.

방금까지 간호사를 붙들고 소리 지르던 덩치 큰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외쳤다. "이 새끼가, 이 새끼 너 뭐 하는 거야."

4.

하지만 그 생각이 오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문제도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었다. 각자 의료진이 환자를 살리기 위한 처치에 들어가자, 상황이 파악된 사내들도 행동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도저히 예측하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들은 뜬금없이 각자 격한 감정을 폭발시키더니,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지껄이며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토록 모시던 '형님'이 위급한 상황은 안중에도 없어, 무엇인가 목적성도 없고, 감정이나 당위성도 없는 이상한 모리배들 같았다. 그들은 환자를 처치하고 수술 준비를 하려던 의료진과 실랑이를 벌이거나 밀쳐내며 끝도 없는 폭언을 뱉었다.

"치료가 이따위야. 능력도 없는 새끼가."

"니가 내 말대로 당장 안 꿰매니깐 지금 사람을 죽일 판이잖아."

"이 돌팔이들이 계속 쓸데없는 짓을 하고 앉았냐."

"왜 대꾸를 안 해. 지금 내 말이 안 들리냐? 왜 나를 무시하냐."

내 권고를 듣지 않아 상태가 나빠진 것을 누구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저런 말에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누구든 알 수 있었다. 터무니없는 폭언이 쏟아지자, 주위에 있던 보호요원과 관계자들이 전부 몰려들어 응급실은 시정 잡배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제지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나는 경찰서에 전화를 부탁했고, 곧 현장엔 경찰까지 등장했다. 다급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뛰어내려온 외과 주치의는 피칠갑이 된 환자 한 명과, 난투극을 벌이는 한 무리를 당황한 모습으로 지켜보다가, 상황을 파악하고 환자에게 뛰어들었다. 나는 외과 주치의에게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환자는 아직도 의식이 없어 조용했고, 이제는 별다른 죄도 없어 보였다.

남자들은 보호요원에게 붙잡혀 각자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환자 주변에 간신히 공간이 생기자 간호사와 의사들은 수액을 위한 바늘과 소변줄을 꼽고, 모니터링을 준비했다. 유난히 체격이 커 보이는 검은 덩치 하나가 제지를 안 받고 그 옆에서 커다란 팔을 크게 빙빙 두르며 영문을 알 수 없는 방해를 하고 있었다. "왜 나를 무시하냐고. 응? 나를 왜 무시해." 의료진은 대꾸하거나 맞설 기운이 없어 그 부정확한 팔을 피하거나 맞으면서 환자를 처치했다. 외과 주치의는 아까 내가 한 것처럼 그의 항문에 손을 넣었고, 역시 그의 손바닥은 피투성이로 변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바이탈만 봐줘. 수술방 알아보고 올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셉으로 환자의 자상을 크게 소독하고 거즈를 뭉텅이로 덮어 고정했다. 금방 피가 배어 나왔다. 마지막 테이프를 끊어서 환자의 복부에 붙이자 빠르고 불길한 기척이 느껴졌다. 방금 덩치가 큰 남자의 취기 어린 주먹이었다. 나는 스치듯 피하며, 각자 버둥거리는 아수라장을 바라보았다. 선악이 분명한 상황이었으나, 방금 다급하게 호출한 경찰은 뒤에서 평온하게 서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떠한 방침을 정했길래 이들을 제지하지 않고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란스럽고 다급한 상황이 이어졌다. 엑스레이가 한 차례 혼란스럽게 지나가고, 중심정맥관이 도착했다. 주치의인 나만이 이것을 환자에 몸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가운을 벗어던지고, 멸균 장갑을 양손에 끼고 그의 어깨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액처치로 혈압을 약간 회복했고, 의식까지 조금 되찾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14게이지의 두꺼운 바늘을 들고 그의 어깨에 포를 덮었다. 이제 내 양손과 환자의 어깨는 전부 멸균된 상태였다. 여기에 소독되지 않은 것이 닿으면, 환자까지 감염될 수 있었다. 나는 쇄골 아래를 만지며 주사기의 각을 쟀다. 별안간 방금까지 간호사를 붙들고 소리 지르던 덩치 큰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외쳤다.

"이 새끼가, 이 새끼 너 뭐 하는 거야."

그 태도가 너무 위협적이라 무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제발, 제발 당신 친구분을 살리려고 합니다. 저는 여기 유일한 주치의고, 당신 친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건 꼭 필요한 시술인데다가 위험한 시술이기도 합니다. 여기 전부 멸균되어 있으니 제게 손대지 말고 제발 나가주세요."

"미친새끼. 어린 새끼가 나한테 나가라고? 나가라고?"

터무니없는 광적인 반응이었다. 이 사내는 너무 악한 나머지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손과 환부가 소독된 상태였으므로 마음이 급해져 더 이상 응대할 수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고개를 숙이고 환자의 어깨를 더듬어 그 자리에 14게이지 바늘을 꼽았다. 주사기에 정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쭉 찼다. 일단 혈관을 찾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순간 번쩍이는 별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니 내 고개가 돌아가 있었다. 그가 내 따귀를 후려친 것이었다. 나는 뭔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지만, 멸균된 손으로 환자의 몸에 주사기를 꼽은 상태라서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 볼이 화끈거리며 아찔하고 참담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이 사내가 자신의 친구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책임은 다시 전부 내 것이었다. 이 사람은 마구 행동하고, 모든 죄는 내가 짊어진다. 고개를 돌리자 다행히 주사기는 그대로 꼽혀 있었고, 내 손은 본능적으로 그 자리에서 그 주사기를 버티고 있었다. 나는 소리 질렀다.

"제발, 이거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저 사람 막아주세요. 제발."

보호요원들은 심상치 않은 광경을 보고, 각자 잡고 있던 사람을 놓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한 방 먹인 기세를 타고 계속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는 큰 손아귀로 보호요원들의 제지를 이겨내며 내 멱살을 거칠게 잡아들었다. 피부가 벗겨져 나갔으며, 옷이 죽 찢어져 내 맨몸이 드러났고, 발뒤꿈치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두 손을 놓고 내 멱살을 잡는 손아귀를 막으면 14게이지 주사기는 허공에 매달려 환자의 몸에 박혀 있을 것이었고, 주삿바늘을 그대로 뽑는다면 그 구멍에서 피가 뿜어져 나올 것이었다. 나는 손을 놓을 수 없어 주사기를 잡은 채 그의 손찌검을 몸으로 다 받아내야 했다. 보호위원이 멱살을 억지로 뿌리치자, 그는 내 얼굴을 마구 긁었고, 이제 훤히 드러난 상체에 계속 주먹을 뻗었다. 아픈 느낌은 없었고, 다만 수치스럽고 분해, 이 상황이 도저히 이 세상의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추가로 사람들이 더 달려와서야 제지되었다. 그가 떨어져 나가자, 내 육체가 능욕당해 마음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지만, 다행히 소독해둔 필드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붙들고 있던 중심정맥관을 마저 넣었다. 지옥같이 긴 순간이었다.

"경찰 진작에 갔어요. 아픈 환자의 보호자이고, 당사자가 고소하지 않을 흔한 난동이라나, 훈방조치래요."

5.

정맥관 확인을 부탁하고 당직실로 잠시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어야 했고,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넝마 같은 근무복을 벗어던지자 전신이 만신창이었다. 나는 모멸감과 육체적인 피로로 당장 쓰러지고 싶은 기분이었다. 왜 이러한 멸시가 내게 주어져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예이츠의 시구가 떠올랐다. '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반면 가장 악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 선과 악, 신념과 격정, 마치 그는 이 상황을 미리 알고 목격하며 글을 적은 것 같았다.

나는 상의를 벗은 채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의업의 신념이나 숭고함은 떠오르지 않았고, 다만 눈물이 났다. 하지만 환자를 수술방에 들어갈 때까지 지켜내야 했고, 아직 응급실에는 토요일 새벽의 열기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으며, 내 근무는 여덟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돌아가야 했다. 나는 여분의 근무복을 입고 심호흡을 했다. 그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간다.

긁히고 엉망이 된 얼굴로 근무로 복귀했다. 마음이 떠난 몸만 간신히 걷고 있는 것 같았다. 환자의 상태는 다행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고, 방금 확보한 정맥관으로 수혈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검은 옷의 사내들은 이제 자신들의 유희가 끝났는지, 그토록 소중하게 지키던 사람을 두고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잘 보이지 않았다. 방금 계단에서 구른 부장님은 뇌출혈로 중환자실로 향했고, 손가락에서 피가 뿜어져 당장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과 주치의는 이제 수술방이 준비되었다며, 응급실에서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호출했다. 나는 다른 환자들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환자 곁에 서서 생체 징후를 확보하고 있었다. 문득, 내 따귀를 때렸던 사내가, 불량스러운 걸음걸이로 응급실을 활보하고 있었다. 저 악자를 이렇게 태연히 다시 만나게 될지 나는 미처 알지 못해, 나는 놀랍고도 두려운 마음이 들어 스테이션에 물었다.

"아니, 아까 경찰, 경찰 있었잖아요. 경찰이 분명 다 봤는데, 저 사람 안 잡아갔나요? 왜 아직까지 저 사람이 활보하고 있는 거죠?"

"경찰 진작에 갔어요. 아픈 환자의 보호자이고, 당사자가 고소하지 않을 흔한 난동이라나, 훈방조치래요."

"..."

놀라웠지만,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나를 그토록 짓밟았다는 사실을 기억조차 못하는지 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두려웠다.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지만, 두려웠다. 그가 별안간 마음이 변해 내게 다시 달려들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혹여 방금과 같은 일이 그 짧은 순간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내심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짐짓 태연하게 새로 밀어닥치는 사람들을 막아내며 수술방에 올라갈 환자를 지키고 있었다. 두려움으로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반면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구두발로 응급실의 환자 사이를 성큼거리며 어디론가 시끄럽게 전화하다가, 그마저도 흥미가 떨어졌는지 응급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여전히 나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나에게 했던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실제 느꼈던 미움이었을까, 아니면 그마저도 그냥 저 사람에게는 한때의 유희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저 남자가 세상을 이런 방식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이윽고 칼을 맞은 환자가 수술방으로 올라갔다. 안정적인 경과였다. 다행히 내 모멸감으로 한 사람과의 생명을 바꾼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은 응급실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일생 그들을 다시 만날 일이 없으리라,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환자들의 명단과 응급실을 한번 둘러보았다. 이곳은 나만 견뎌내고 참아낸다면, 어떠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내겐 남아있는 긴 밤과 하소연할 곳 없이 망쳐버린 몸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마음만이 남아 있었다.

밤은 산 하나를 지나듯 간신히 넘어갔다. 아침까지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나는 칼을 맞았던 그가 아직 살아있음을 전산으로 확인했다. 그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겠지만, 나쁜 기억이었다고 반추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잊을 수 없었다. 보상받지 못할 나쁜 기억만을 끌어안고, 나는 대신 어떠한 환자에게도 빚을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지옥같았던 그날의 일을 마치고 간신히 퇴근할 수 있었다.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폭언이나 폭력에 대한 인식은, 그 빈도나 무게에 비해 대중의 공감과 동떨어져 있다

이 글은 지어낸 글이 아닙니다. 여기 적힌 내용은 2010년, 실제로 제가 응급실에서 직접 겪었던 일을 기술한 것입니다.

응급의학과는 의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과로 꼽힙니다. 그리고 응급실은 흔히 지옥에 비유됩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밤을 새우는 과중한 업무강도 이외에도, 사회의 치기 어린 난동이나 폭언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폭행이나 폭언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답할 응급실 근무자는 단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고도 응급실 근무로 뛰어들기 위해서는 분명히 용기가 필요합니다. 의료진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얼마 전 항공기 비지니스석에 앉아 난동을 부리던 사람의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악하고 풀린 눈빛으로, 당장 충동적으로 무엇이든 부수어 버릴 것처럼 종잡을 수 없이 행동했습니다. 선량한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영상으로만 봐도 가까이 가기 두려운 그였지만, 직업상 그를 제지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나서 용감하게 그를 붙들고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에 경악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모습이 너무 낯익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 마주해야 했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이 폭력적인 환자나 보호자, 주취자의 눈빛과 행동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일정한 결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취해야 하는 반응도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유니폼을 입고, 공손하고 간절하게 무릎을 꿇은 채 빌며, 그는 우리를 내려치고 침을 뱉는 것입니다.

그는 대중의 공분을 사고 단호하게 구속되었습니다. 항공보안법, 업무방해, 상해, 재물손괴, 폭행등이 그에게 적용되었습니다. 실제 그는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항공기에 있던 수많은 이들의 담보로 자신의 유희를 즐겼고, 가중처벌받아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일말의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안전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고, 대중은 그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허나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폭언이나 폭력에 대한 인식은, 그 빈도나 무게에 비해 대중의 공감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위에 기술한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구타당한 사건이 아닙니다. 저는 당시 응급실을 책임지는 유일한 주치의였고, 항거 불능의 상태에서 훨씬 심한 타격을 입을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더 이상의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제가 들고 있던 바늘이 환자를 꿰뚫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윽고 제가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을 때, 바늘이 꿰뚫린 환자를 포함해서, 더 이상 치료받을 수 없는 옆 사람, 그리고 그 옆 사람들이 차례로 죽어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 개인의 안전을 넘어선, 많은 이들의 안전을 담보로 한 사건과 다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이 항공기에서 벌어졌던 사건과는, 과연 따로 생각해야 하는 일일까요.

의사는 환자를 이해해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환자를 넘어선 그의 주변 환경과, 인간들까지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껏 제게 벌어졌던 난동과 폭언들을 최대한 헤아리고픈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 폭력에 관한 인식이 아직 제자리걸음인 것은 안타깝습니다. 병원 내의 난동은 아직 약자가 강자에게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폭력으로 인지되고 있습니다. 작년 5월 의료인폭행가중처벌법이 간신히 통과되었지만, 그 후로도 폭행 피의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던 일은 거의 없습니다. 현장에서 공권력은 대개 방관하고, 현실적으로 환자를 이해해야 하는 의사가 처벌이나 실형을 강력하게 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의료진은 그 악하고 풀린 눈빛을 받아내고만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있어, 선악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바는 사람들을 엄벌에 처하고 감방에 넣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환자를 평생 직접 마주하고 공감해야 하는 사람이므로, 그렇게 사람들이 더 고통받는 방법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부족하지만,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한 사람의 의사이고, 또 인간입니다. 고통받는 사람을 마주하고 고민하다가도, 어쩌다가 위해를 받거나 폭언을 당하면 깊이 상처받아 한동안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나기 힘듭니다. 다른 인간에게 미움을 받으면 흡사 마음속에 큰 짐이 올라탄 먹먹한 기분이 드는, 인간과의 관계는 전부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직까지 그런 사람들을 마주하면 그것을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아니면 도망가야 할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제가 고통과 상처를 받고, 그것을 감내해야만 하는 일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간이고, 누구나 인간을 험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신념과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 번만 더 생각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공공의 안전도, 모두의 생명도 걸린 문제지만, 그것을 넘어서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문제 말입니다. 자신이 인간의 마음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의 행동이 다른 인간에게 위험을 초래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정말 나쁜 행동이라고 인지하며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위험에 처한 모든 사람이 불쌍하다고, 그것을 어떤 사람이든 힘들게 여기며, 때론 간신히 버텨낼 것이라고 말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응급실 #사회 #병원 #남궁인 #폭력 #경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