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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양반'에 대해 잘 몰랐던 3가지

양반, 우리가 본 적은 없지만 참 익숙한 존재다. 지금은 ‘아빠 다리’로 불리는 앉는 자세도 예전에는 ‘양반 다리’로 불렸다. 이렇듯 우리나라에는 양반 문화, 즉 유교적 가르침이 생활 구석구석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양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또한 양반 삶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1. 종손 중에 과거 합격자가 드문 이유는?

“이처럼 권벌의 자손 중에서 학문을 닦아 과거에 뜻을 둔 사람이 많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열여덟 명에 이르는 문과 급제자가 나온 것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권벌 일족이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안동 지방에서도 대표적인 재지양반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한 이유였다. 그런데 이처럼 권벌의 자손에서는 문과 합격자가 많이 나왔지만, 종손들 즉 권벌 대대(代代)의 장남들 계통에서는 과거 합격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얼핏 보기엔 기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권벌 일족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책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 미야지마 히로시 저)

얼핏 종손 중에 과거 합격자들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한 집안의 대표선수 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특히 유명한 일족일수록 그랬다. 종손의 역할은 과거 합격이 아니었다. 조상 제사와 일족과의 교류가 중요한 임무였다. 한 가문에서 종손은 일종의 상징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과거 합격자는 종손이 아닌 방계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2. 조선 전기에 노비가 왜 급증했을까?

“…. 조선 전기의 노비 급증은 국가 정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점이 있다. 고려왕조가 멸망한 한 원인인 ‘북로남왜(北虜南倭)’라는 북방의 여진족 침공과 남방의 왜구 약탈에 따른 국토의 황폐화와 대량의 유민 발생 같은 사회 상황이 노비 급증을 가져온 기본 원인이었다고 생각되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다. 무릇 양반은 ‘사(士)’로서 학문에 힘써 과거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는 것을 이상적인 생활 방식으로 삼는 존재이기 때문에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것은 천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양반다운 생활을 유지하려면 일상의 여러 가지 잡일을 담당하는 노비가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였는데, 조선 전기에 재지양반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은 노비가 많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재지양반층의 형성과 노비 인구의 급증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다.” (책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 미야지마 히로시 저)

양반과 노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천한 육체적인 일을 양반 대신해서 하는 이들이 노비였기 때문이다. 특이하게 조선 전기에 노비의 수가 급증한다. 저자는 국가 정책 외에 양반층이 형성되면서 노비가 늘었을 것으로 본다. 노비는 양반들에게는 중요한 생산 도구이자 재산이었다. 국가는 노비가 거주지에서 도망할 경우 엄하게 뒤쫓는 정책을 취했다. 그리고 잡히면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심지어 도망간 노비가 죽었더라도 그의 자손은 여전히 원소유자의 소유가 되었다. 철저하게 양반의 이해관계를 보호해 준 것이다.

3. 양반과 노비는 일방적인 지배와 복종 관계였을까?

“…. 양반과 노비의 관계를 일방적인 지배와 복종의 관계였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양반층에게 노비는 어떤 의미로는 방심해서는 안 될 존재였는데, 그런 관계의 근저에는 자신들의 지위를 높이려는 노비들의 집요한 노력이 있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양반과 노비의 관계가 가장 긴장되는 경우는 노비가 도망을 기도하였을 때다. 일본과 전쟁 중이라는 비상사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쇄미록’에는 도망 노비에 관한 기사가 많이 나타난다. 노비가 도망칠 때는 한복의 예에서 보듯이 양반들은 엄한 처벌로써 이에 대처했지만, 집요한 추적에도 불구하고 도망쳐버린 노비도 많았다. 도망에 성공한 노비도 16세기 당시에는 다른 지역에서 다시 다른 사람의 노비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도망하는 것이 바로 신분 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뒤에서 보듯이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도 집요하게 반복된 노비의 도망은 곧 노비제를 붕괴시킨 큰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책 ‘미야지마 히로시의 양반’, 미야지마 히로시 저)

노비들은 우리의 상상과 달랐다. 지위가 낮고 삶이 비참했지만, 꿋꿋한 존재이기도 했다. 노비들은 강인했고 성장을 갈망했다. 이들이 가족을 꾸렸고 스스로 독립적으로 가정을 경영하였다는 기록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그렇기에 양반들은 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 뿐 아니라 노비들은 호시탐탐 도망갈 기회를 노렸다. 결국 집요한 노비들의 시도로 인해 노비 제도 자체도 붕괴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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