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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사람만 넘을 수 있는 시리아 국경

시리아에서 다쳐서 요르단 국경을 넘을 때 대개는 환자만 국경을 넘는 것이 허가된다. 시리아 전쟁이 그치지 않은 시국에서는 국경의 보안이 철저하다. 구급차에 실려 있는 아이 옆에 함께 올라있는 엄마일지라도 종종 함께 넘어오는 것을 허가 받지 못한다. 결국 아이만 내려오게 되고, 아이가 다쳐서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의 옆에 있을 수도 없는 상황까지 겹쳐 더 막막한 느낌이 드는 상황이 되고, 아이는 아이대로 어린 나이에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나온 상황이라 심한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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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의 한복판에서 병원을 지키고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다시 지펴낸 이 의사들은 영웅이었고, 사경 헤맬 정도의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고 살아나 이렇게 다시 희망을 찾아가는 환자들도 영웅이었다. 시리아 남부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이 람사 병원을 방문한 날은 눈물의 날이었다. 이들이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환자들이 정말 벌떡 일어나서 선생님 오셨다며 이들을 열렬히 반기고, 의사와 환자가 서로 뛰어와 부둥켜 안으며 눈물을 함께 흘리는 날이었다. 이들 환자들은 시리아 병원에서 응급조치가 없었으면, 생명을 유지하며 람사 병원까지 오지 못했을 환자들이었다. 나는 이 만남의 날, 수술 일정이 있어서 이 순간을 직접 목격하지 못하였지만, 이들이 지나간 이 병동에서, 그 자리에 있었던 람사 의료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뭉클해지는 가슴을 느낀다. 외과팀리더(SPF)인 에드가 선생님도 그 장면을 보며 울컥울컥 눈물이 올라와서 참느라 애먹었다고 한다. 그들이 함께한 눈물은 감사와 안도와 서러움과 희망과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섞인 뜨거운 눈물이었지 않았을까.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서 시리아 남부의 의사들을 초빙하여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컨퍼런스를 열어 전쟁손상 치료(war surgery)와 관련된 연수교육을 주관하였다. 시리아 분쟁 지역에서 의료가 제대로 제공될 수 없을 것이다. 의료인력도 부족하다. 의사가 없고 일손이 딸리니 의과대학생도 기초 수술들을 배워 집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전쟁과 관련된 손상 치료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치료에 대한 특화 교육은 그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국경없는의사회에도 강연을 섭외 받았고, 연수교육이 모두 끝나고 참가한 의사들이 람사 병원에 방문한 것이다.

람사 병원으로의 방문과 만남은 포옹과 눈물로 이어진다. 바사라와 라미*의 엄마들이 내려온 날도 그랬다. 바사라와 라미는 병동의 귀염둥이들이다. 병동에 가면 다섯 살의 새침때기 바사라가 꺄르르 웃으며 병동 복도를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여덟 살의 라미도 얼굴에 웃음을 담아 느그적느그적 걸어온다. 라미는 뇌진탕과 뇌출혈로 국경을 넘어 실려 왔는데,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걸어 다닐 수 있는 정도이지만, 뇌졸중 환자처럼 왼쪽 반신이 불편하다. 말도 어눌해지고, 웃는 듯 아닌 듯 약간은 멍한 표정으로 있지만, 유심히 보면 미세한 표정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바사라는 뇌진탕으로 실려왔는데, 2개월이 지난 지금은 다행히 여느 다섯 살 아이처럼 생생하다. 아이들은 병동의 간호사, 심리치료사, 간병인의 돌봄 속에서 크게 결핍된 것 없는 듯 지내고 있지만, 단지 하나 부족한 것은 엄마였는데 커다란 결핍이 아닐까 싶다. 이들 엄마에게도 생사와 안부를 모르는 아이는 커다란 결핍이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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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 다쳐서 요르단 국경을 넘을 때 대개는 환자만 국경을 넘는 것이 허가된다. 시리아 전쟁이 그치지 않은 시국에서는 국경의 보안이 철저하다. 구급차에 실려 있는 아이 옆에 함께 올라있는 엄마일지라도 종종 함께 넘어오는 것을 허가 받지 못한다. 결국 아이만 내려오게 되고, 아이가 다쳐서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의 옆에 있을 수도 없는 상황까지 겹쳐 더 막막한 느낌이 드는 상황이 되고, 아이는 아이대로 어린 나이에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나온 상황이라 심한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 한 두 달이 넘어 결국 아이의 엄마가 국경을 넘어 람사 병원에 오고 아이가 회복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깊고 깊은 포옹으로 서로를 안아줄 수 있어 다행이지만, 큰 변화를 겪은 아이에게는 좀 더 심리치료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엄마가 와서 바로 퇴원하지 않고, 최소 사나흘간 과도기와 관찰기를 거치며 심리치료지원이 필요한지 보며 그에 따라 집에 갈 수 있게 조치를 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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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아이가 집으로 돌아간 병동에서 가끔은 바사라의 재잘거림도 생각날 것이고, 라미의 수줍은 웃음도 생각날 것이다. 라미가 춤을 신청했는데, 같이 춤출 기회가 없었던 것은 좀 아쉽다. (병동에서 환자를 응원하는 행사로 춤과 노래와 음식을 준비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요르단 전통 춤인 답카를 따라 추려고 노력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고는 다음에 나와 함께 춤추고 싶다며 수줍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꼬마 아이지만 여자가 춤을 신청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다음에 함께 춤추는 시간 있으면 꼭 함께 춤추어달라며 간호사가 귀뜸해주었다.) 아급성기 병동인 제2병동의 아이들은 회복되어가고, 어른 환자들도 회복되어간다. 람사 병원은 만남의 장소이기도, 뜨거운 포옹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들 만남의 눈물이 깊은 아픔을 씻어내는 첫 방울이 되어 다시 일어서는 한 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두 아이의 이름은 본명과 어울릴 법한 가명으로 표기함


웹툰 [보통남자, 국경너머 생명을 살리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1625/epis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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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헌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정형외과 전문의로, 2016년 요르단과 아이티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 구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전부터 국제 구호활동에 관심이 많아 탄자니아를 비롯해 네팔, 필리핀 등지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해왔다. 올해 요르단에서 시리아 전쟁으로 인해 외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일기로 적었고, 그 일기는 김보통 작가의 웹툰으로 재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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