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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공직자들은 "No"라고 외치지 못했을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군요. 그것은 바로 대통령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 단호하게 "No"라고 외칠 수 있는 관료집단의 존재였습니다. 요즈음 대통령의 불법적인 지시 혹은 명령에 맹종하다가 줄줄이 엮여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왜 "아니요."를 외치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단지 부당한 지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불법적인 지시였는데도요. 그들은 그 알량한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불법적 행동에 앞장서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소위 공직자란 사람들이 명백하게 불법적인 지시에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앞장서 하수인이 되기를 자청했다는 건 도대체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 이준구
  • 입력 2017.02.02 06:15
  • 수정 2018.02.03 14:12

최근 돌아가는 정세를 보면 한국과 미국은 한 가지 선명한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세부적인 측면에서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공통점이란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 나라가 결딴날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바로 그런 상황이지만, 트럼프(D. Trump)란 이상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는 느낌입니다.

요즈음 트럼프가 연일 쏟아내는 정책을 보면 한마디로 조폭 같다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멕시코 국경에 불법이민을 막는 장벽을 설치하면서 멕시코에 그 비용을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걸 보면 딱 그런 느낌입니다.

어깨를 으스대며 죄 없는 노점상에게서 삥 뜯어 가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어 보이니까요.

애써 일군 자유무역의 기반을 하루 아침에 허물어 버리려 하는 그를 보며 과연 경제학의 '경'자라도 알고 그런 일을 하려는지 의심을 하게 됩니다.

보호무역의 장벽을 쌓으면 기업들은 손뼉을 치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미국 국민 전체에 돌아가던 자유무역의 혜택은 사라지고 맙니다.

당장은 미국 내의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코 미국의 이득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난 정말로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왜 그가 대통령이 되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그의 앞뒤 가리지 않는 포퓰리즘이 저학력, 저소득 백인 계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낸 것입니다.

"미국의 일자리를 되찾아 오겠다."라는 구호 하나만으로도 그는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그것이 실현가능한지의 여부는 전혀 상관없이요.

며칠 전 반(反)이민, 반 난민 행정명령을 내리는 트럼프를 보면서 또 한 번 조폭을 머리에 떠올렸습니다.

"내 '나와바리'(관할구역) 안에서는 모든 게 내 마음대로다."라는 엄청난 독선이 아닐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한다고 해서 테러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도 없고, 미국이 하루아침에 위대한 나라로 거듭 태어날 리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 있듯,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군요.

그것은 바로 대통령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 단호하게 "No."라고 외칠 수 있는 관료집단의 존재였습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지만 바로 이 점에서 우리와 큰 차이가 있어 미국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러분이 잘 아시듯, 법무차관으로서 공석인 장관의 대행을 하고 있는 샐리 예이츠(Sally Yates)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행정명령에 단호하게 "No."를 외쳤습니다.

그 결과 자리를 잃게 되었지만, 그는 청문회에서 말한 대로 법률과 헌법을 수호하는 법무장관 대행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공직자의 자세입니다.

이런 소신 있는 공직자들이 있기에 미국 사회는 아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요즈음 대통령의 불법적인 지시 혹은 명령에 맹종하다가 줄줄이 엮여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왜 "아니요."를 외치지 못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단지 부당한 지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불법적인 지시였는데도요.

그들은 그 알량한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불법적 행동에 앞장서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소위 공직자란 사람들이 명백하게 불법적인 지시에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앞장서 하수인이 되기를 자청했다는 건 도대체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용기를 발휘해 불법적인 지시에 반대하는 결기를 보였다면 자신도 살고 나라도 살았을 텐데요.

그깟 자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불법을 자행하는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패가망신을 자초한단 말입니까?

미안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권력의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 그 자체가 그런 용기를 갖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경제학에서 '자기선택 편의'(self selection bias)라는 말이 있는데, 말하자면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 양심도 선뜻 팔아버리는 사람들이 권력 주위를 맴돈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런 경향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용기 있게 "아니요"를 외칠 수 없게 만든 사회 분위기가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듭니다.

앞으로 우리가 고쳐가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용기 있게 "아니요."를 외친 사람을 보호해줄 수 있는 든든한 보호막을 마련해 줘야 용기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모처럼 멋진 용기를 보여준 예이츠 법무차관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발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용기 있는 공직자들이 많이 많이 쏟아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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