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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본 사실 3가지

상식 퀴즈로 빠짐없이 나오는 문제 중 하나가 “우리나라 국보 제1호는?”이다. 사실 그 번호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숭례문(남대문)이 우리에게 주는 상징적 의미는 크다. 서울 한복판에 큰 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신기하다. (주변 성곽이 모두 사라지고 없으니 그렇게 느껴진다!) 남대문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다면 책 ‘한양도성, 서울을 흐르다’ 속 내용을 살펴보자.

1. 대한제국 시기에 남대문 주위는 다 헐려나갔다.

“근대에 들어서는 1898년부터 1899년 사이에 숭례문을 통과하는 전차 단선궤도가 부설되어 1911년까지 운영되었으나, 교통량이 증가하여 숭례문 주위로 전차 복선궤도를 부설하게 된다. 1907년 대한제국의 대신들은 흥인지문과 숭례문의 문루 좌우 성첩을 각각 8칸씩 헐어버림으로써 전차가 드나들 선로를 만들자고 건의하였다. 원래의 문으로는 사람만 왕래하게 함으로써 번잡한 폐단을 없앨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완용 등은 나머지 성벽도 도로에 장애만 될 뿐이라며 추가로 헐어버릴 것을 주청하였다.” (책 ‘한양도성, 서울을 흐르다’, 신희권 저)

대한제국 때는 남대문의 수난 시기였다. 문을 통해 전차가 통과하였으며 좌우 성벽이 헐려나갔다. 일본 왕세자가 방문할 때 숭례문 통과하기가 비좁아 도로를 넓혀야 한다는 명분 때문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남대문의 역사에 우리의 고난이 그대로 녹아 들어가 있다. 다행히 그 이후 일제강점기에 숭례문이 더 훼손되진 않았다. 대신 한국전쟁 때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2. 몇 년 전 남대문 아래에서 여러 유적들이 발굴되었다.

“2008년 화재 후 문화재청에서는 즉각 ‘숭례문 복원정비 사업’ 계획을 수립하여 화재수습과 동시에 고증을 위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 발굴조사 결과, 숭례문을 통과하던 조선시대 전후기 도로면과 배수시설, 조선 후기(19세기)부터 대한제국 시기(20세기 초)까지의 민가터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숭례문 좌우 성벽의 기초부를 확인하여 그 규모와 축조기법도 밝혀냈다. …. 1900년대 전후에 찍은 사진에는 숭례문 양 옆으로 점포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건물의 기초는 바로 이런 점포나 주막의 흔적이라고 보면 된다.” (책 ‘한양도성, 서울을 흐르다’, 신희권 저)

요즘도 남대문 시장 주변은 늘 바쁘다. 상인들, 손님들, 관광객들이 어우러진다. 발걸음이 빠르고 식사 속도도 빠르다. 남대문 아래서 발견된 유물들을 보면 약 100여년 전 상황도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도 점포들과 음식점들을 누비던 상인들, 손님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외에 유물로 조선시대에 제작된 도자기류와 기와편, 전돌편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3. 화재 복구 이후에 남대문이 달라진 점은 이것이다.

“2008년 2월 10일 방화 화재로 누각 2층 지붕이 붕괴되고 1층 지붕도 일부 소실되는 등 큰 피해를 입은 숭례문은, 5년 2개월에 걸친 복구공사 끝에 2013년 5월 4일 준공되어 그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그런데 화재를 수습하고 국보 1호를 복구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 여기서 새롭게 태어난 숭례문의 달라진 것들을 몇 가지 짚어 보자. 우선 숭례문의 지반이 현재보다 30~50센티미터 아래인 조선시대 중후기의 지면 높이로 낮아졌다. 숭례문 현판의 필체는 사진판독을 통해 새롭게 고증해냈고, 건물구조도 1층 마루가 우물마루에서 장마루로 바뀌었으며 1층의 잡상 개수도 8개에서 7개로 바로잡았다. 2층의 용마루는 길이가 1미터 정도 길어졌고, 기와는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찍어낸 일명 ‘KS기와’ 대신 전통 수제 기와를 얹었다. 단청은 인공 안료 대신 전통 안료로 바꿔 칠했고, 문양 또한 근대기 문양에서 전통 문양으로 환원하였다.”(책 ‘한양도성, 서울을 흐르다’, 신희권 저)

숭례문 화재 사건은 우리 국민들 가슴에 큰 상처를 주었다. 5년간의 복구 작업 끝에 새 모습을 드러낸 남대문은 단청이 벗겨지는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어 또 다시 우리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어찌 되었든 숭례문은 우리나라, 그리고 수도 서울의 자랑스런 조형물 중 하나다. 앞으로 더욱 남대문의 가치를 높이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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