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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나침반' 역할은 철학 대신 과학이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선진 산업사회는 비판으로부터 그 기반을 빼앗는 듯이 보이는 상황을 비판에 직면케 한다. 기술의 진보는 지배와 통합의 모든 체제로 확대됨으로써 다음과 같은 생활 (그리고 세력)형태를 만들어낸다. 즉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을 융합시키고, 고역과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역사적 전망의 이름으로 모든 저항을 타파 또는 노파하는 듯이 보이는 생활 형태 (및 권력 형태)를 만들어 낸다.”(책 ‘일차원적 인간’, 허버트 마르쿠제 저)

오늘날의 철학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원래 철학이란 쉽게 말해 일종의 나침반으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정치경제와 사회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은 철학이 제시한 항로를 따라 발전하면서, 새로운 철학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여기서 탄생한 철학은 또다시 정치경제와 사회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이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이러한 공생관계가 무너져내리고 있다.

최근 수 년 간 우리나라 일부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폐지한 바 있다. 이러한 양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학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철학과는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이공계에 대한 지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았을때 이공계에 대한 투자는 ‘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철학을 외면해 간다는 것은 곧 시대의 문제를 진지하게 논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허버트 마르쿠제는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나침반’, 즉 철학이 사라져가는 것은 ‘선진사회’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그의 책 ‘일차원적 인간’에서 이야기한다. 현대 사회의 ‘나침반’ 역할은 더이상 ‘철학’이 아니라 ‘과학’이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인공의 생태계에 대해

그곳에서 우리는 노동으로부터 자유롭고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돌아간다 우리의 포유류

형제들과 자매들에게로”

(시 ‘한없는 기계의 은총으로 보살펴지는 모든 것들(All Watched Over by Machines of Loving Grace)’, 리차드 브로우티건 작)

2011년 영국 공영 방송 BBC에서 현대 과학기술이 어떻게 철학을 대체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바 있다. 바로 아담 커티스(Adam Curtis) 감독이 만든 “한없는 기계의 은총으로 보살펴지는 모든 것들(All Watched Over by Machines of Loving Grace)” 시리즈다. 이 타이틀은 리처드 브로우티건 시인이1967년에 쓴 시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위의 인용문이 그 시의 일부 내용인데, 과학기술에 대한 찬양으로 보이지만 사실 과학기술이 ‘인류의 해방’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비꼬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와 같은 비판은 아담 커티스의 다큐멘터리와 허버트 마르쿠제의 저서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들에 따르면, 철학을 대신하여 세상의 ‘나침반’ 역할을 짊어지게 된 과학기술이 인류의 해방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고, 그 부작용으로 인해 오늘날 인류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질시키고 단순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이 도래하면서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로맨틱한 의미를 잃고, 단순히 ‘성형수술(또는 과학기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또한 선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관점도 더이상 ‘주체적 인류’가 아니라 ‘선진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를 돌리기 위한 일개 부품’으로 전락하였고, 그 역할을 더이상 수행할 수 없는 인간은 가차없이 버려지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의 노인 자살률이 심각할 정도로 높은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 예술은 과거의 ‘풍취’를 잃어버렸고, 대학교들은 철학과를 폐지하고 있다.

마르쿠제가 지적하듯이, 이렇게 우리의 관점이 변질되고 단순화되면, 우리의 비판적인 사고도 퇴화될 수 밖에 없다. 그저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혜택을 편하게 누리기만 하면 된다. 과연 이런 상황이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유토피아’일까?

“기술적 통합은 인간을 기계의 하인으로 편입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었다. 그 일의 성질은 심리적으로도 생리적으로도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것이었다.”(책 ‘일차원적 인간’, 허버트 마르쿠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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