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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고 싶게 만드는 소설 3편

우리의 연말 연시는 꽤 길다. 통상 11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다음 해 설날 정도까지다. 이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2~3개월간의 송년회, 망년회 등 각종 회회회다.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가?

어쩌면 당신의 간도 ‘이제 살았다!’를 외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술 말고, 남 눈치 보며 싫은 자리 견뎌가며 마시는 술이 아닌 정말 맛있게 혼자서 음미해볼 수 있는 술은 어떨까. 그런 술이라면 살아남은 당신의 간도 넌지시 모른 척 해줄 것이다. 여기 그런 술 맛을 당신의 혀에 미리 감돌게 해줄 소설 세 편의 문장을 가려 뽑아보았다. 책 바(Bar)를 운영하는 저자의 설명과 함께. 소설을 읽으며 한 잔 하고 싶어질 당신에게 미리 최화정씨의 명언을 살짝 바꿔 들려줘 볼까 한다. "맛있는 술은, 도수 0%!"

1.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에단이 양손에 김이 오르는 잔 두 개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걸 좀 마셔봐, 당신 마음에 들 거야"

..."연애는 샴페인으로 시작해 캐모마일로 끝난다는 거 같은데, 우리가 벌써 사랑의 끝에 이른 거 같지는..."

"이건 차가 아니라 뜨거운 그로그야. 호박색 럼주와 레몬, 꿀, 계피를 넣어 만들었지."

..."뜨거워!"

셀린은 음료 위에 떠 있는 별 모양의 팔각 열매를 숟가락으로 떠내 장난 삼아 가볍게 깨물었다."

(책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기욤 뮈소 저)

새해는 시작됐지만 아직 추운 겨울이다. 이런 날 몸을 데우는 술에는 두 종류가 있다. 도수가 높거나, 온도가 높거나. 그로그(Grog)는 후자에 속하는 술이다. 뜨겁게 마시는 칵테일인 이 술은 따뜻한 물에 럼을 넣고 레몬, 혹은 라임과 꿀, 계피, 팔각 등을 넣어 마신다고 한다(책 '소설 마시는 시간', 정인성 저). 소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에서 이 술은 오래 전 헤어진 연인이었던 에단과 셀린이 오랜만에 다시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 후 정답게 나눠 마시는 음료로 등장한다. 괜찮다. 연인은 없어도 그로그만 있다면 몸을 데우는 데에는 문제 없으니까.

2. 인간실격

"마시다 만 한 잔의 압생트.

저는 그 영원히 보상받지 못할 것 같은 상실감을 혼자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림 얘기가 나오자 제 눈 앞에 그 마시다 만 한 잔의 압생트가 아른거렸습니다. 아아, 그 그림을 이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 재능을 믿게 하고 싶다는 초조감에 몸부림치는 것이었습니다."(책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저)

술은 기쁜 감정을 돋우거나 반가운 만남을 즐기기 위해 마시기도 하지만, 때로 잔잔히 가라앉은 상실감을 달랠 때 쓰이기도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에서 압생트는 그런 상실감의 상징처럼 나온다. 실제 압생트는 원액 알코올 도수가 5-70도에 이르는 매우 독한 술로, 한동안 '중독이 심한 향정신성 약물'이란 오명을 얻어 1990년대까지 금지 품목에 놓여있었다고 하니(책 '소설 마시는 시간', 정인성 저) 가지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갈망과 상실의 쓰디씀에 매우 잘 어울리는 술이 아닐 수 없다. 지난 한 해,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압생트와 함께 털어버리고 가자. 인간 실격의 '요조'를 떠올리며 말이다.

3. 백년의 고독

"그는 떠날 때처럼 빈털터리로 돌아왔는데, 빌려 타고 온 말값 2뻬소를 우르술라가 대신 내주어야 했을 정도로 돈이 없었다. 그는 뱃사람들의 은어가 섞인 스페인어를 썼다...그는 정해준 방에 해먹을 걸고는 사흘 동안 내리 잠만 잤다. 잠에서 깨어나 생달걀 열여섯 개를 먹어치우고는 곧장 까다리노의 가게로 갔는데, 그의 어마어마한 체구는 여자들에게 호기심과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음악을 신청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아구아르디엔떼를 샀다...그리고 욕망에 불타 자기를 에워싼 여자들에게 누가 돈을 가장 많이 내겠느냐고 물었다...호세 아르까디오...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었다."(책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저)

소설 '백년의 고독'에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첫째 아들 호세 아르까디오는 집시를 따라 마을을 떠났다가 몇 해 만에 소위 '상남자'가 되어 마을에 돌아온다. 그런 그가 자신의 '상남자스러움'을 과시하며 모두에게 한 턱 쏘는 술이 바로 남미의 전통술 아구아르디엔떼다. 스페인어로 '불타는 물'이란 뜻이라고 하니 화끈하게 쏘기에도 딱 알맞은 이름을 가진 술임에는 틀림없다(책 '소설 마시는 시간', 정인성 저). 사탕수수즙이나 와인을 증류해 마시는,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치약 향의 술이다. 새해 친척들을 만나서 당당하기보단 움츠러들기 더 쉬운 요즘이지만, 빈털터리로 고향에 돌아왔어도 하나 거리낄 것 없었던 호세 아르까디오를 생각하며 아구아르디엔떼를 마셔보자. 우리도 주변 사람 모두에게 한 턱 쏠 날이 곧 생길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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