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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교회가 고리대금업자를 구원했던 방식 3가지

대출광고가 넘쳐난다. 실제 지난 한 해 대부업체들의 총 대출 잔액이 14조원을 돌파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사회가 불황일수록 호황을 누리는 대부사업의 특성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그런데 사실 이런 대부업의 역사는 뿌리가 매우 깊다. 적어도 유럽에선 100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엄하고 성스러운 하느님의 말씀이 지배했던 유럽의 중세 시절에도 대부업자들은 존재했던 것이다. 교회의 태도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처음엔 고리대금업자들에 대해 지옥에서 썩을 것이라 악담을 퍼부었지만, 세월이 흘러 경제가 발전하며 금융업의 필요성이 증가하자 점차 말을 바꿔 구원의 통로를 열어주었다. 교회가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열어줬던 몇 가지 출구를 살펴보았다. 그 과정은 그대로 자본주의와 종교가 한 사회 안에서 서로에게 타협해 가던 과정이기도 하다.

1. '시간을 훔치는 행위'에서 '위험을 감수한 노동의 대가'로

교회가 고리대금업자를 끔찍이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는 고리대금업을 '하느님의 소유'인 시간을 훔치는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씨앗은 심으면 싹이 나고 가축은 짝짓기를 시키면 새끼를 낳지만 돈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고리대금은 이렇게 생산할 수 없는 걸 빌려주며 그 대가로 '이자'라는 걸 받는데, 이는 그저 원금을 받기 위해 그들이 기다린 '시간'에 대한 대가일 뿐이다. 노동하지 않은 채 감히 하느님의 관할 영역인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고리대금업이야말로 하느님을 모독하는 불경한 짓거리다. 이것이 당시 교회가 고리대금업자들을 비난하는 주요 논리였다. 그러던 것이 점차 생산력이 늘어나고 금융업이 발달했던 12-13세기에 들어서면서 약간씩 톤이 달라진다. 고리대금업에 대한 다른 의견들이 교회 내에서도 조심스레 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고리대금업자가 가져가는 이자도 '노동의 대가'일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스콜라 학파는 고리대금이 정당화될 수 있는 다섯 가지 구실을 만들었는데, 적어도 고리대금업자가 처음 고리대금을 행한 돈이 노동으로 번 돈일 때, 그리고 고리대금으로 번 돈을 다른 생산적인 일에 소비했을 때 그 '노동'에 대한 보수로 이자를 인정하였다. 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때 벌써 이자에 대해 '위험'에 대한 대가라는 설명을 덧붙였다는 점이다. 교회는 이자가 채무자가 채무 불이행하게 될 때를 대비한 '보험'의 개념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그대로 자본주의가 이자를 설명하는 개념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새롭게 등장한 위험은 경제적, 금융적 차원의 위험이다. 그것은 채무자가 채무 변제 불능 상태에 빠지거나 또는 채무자의 악의 때문에 빌려준 '자본'을 상실할 위험, 회수 불능의 위험이라는 형태를 가진다...이것은 자본주의가 성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책 '돈과 구원', 자크 르 고프 저)

2. '은행가'와 '고리대금업자'의 구별

교회는 몇 백 년에 걸쳐 꾸준히 고리대금업자들을 비난했지만, 13세기에 들어서면 그 비난은 보다 세분화된다. 이자의 비율에 따라 사회적 비난과 구원의 자격 유무를 분별하는 섬세함이 생겨났다. 실제 당시 빌려간 돈에 대한 이자율은 나라와 사업자에 따라 연 5%부터 연 266%까지 천차만별이었는데, 이들 중 지나치다고 여겨지는 고리대금 행위만을 비난하는 나름의 기준이 생겨났다. 1215년 열린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과도한(graves et immoderatas)" 고리 대금 행위만을 비난의 대상으로 올린 일이 단적인 예다. 이를 통해 마침내 교회는 '은행가'와 '고리대금업자'를 구별하기에 이른다. 합법적인 '자본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일반적으로 고리 대금에 대한 비난은 지나침에 대한 교회법의 비난과 유사하다. 매매 계약서에서는 과도함을 로마법에서 차용한 "막대한 손실(laesio enormis)"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절제'의 개념은...극단적이지 않은 보통의 고리 대금업자는 사탄이 쳐놓은 그물 사이로 빠져 나갈 행운을 잡게 된 것이다."(책 '돈과 구원', 자크 르 고프 저)

3. '연옥'의 등장

'연옥'은 지옥에 갈 정도로 심각한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천국에 가기엔 약간 부족한 사람들의 영혼이 모여 아직 남아있는 죄에 대한 형벌을 받고 천국으로 올라가기 위한 '대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연옥'이란 공간이 처음부터 기독교의 세계관에 존재하던 곳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저자에 의하면 연옥이라는 공간은 12세기 말엽에 교회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이다(책 '연옥의 탄생', 자크 르 고프 저).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으로는 흡수되지 않는 다양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으로 연옥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의 속죄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연옥이 생김으로써 고리대금업자들은 결정적인 구원을 받게 된다. 참회도 자선도 소용없이 오직 '자신이 번 돈을 원래 주인에게 몽땅 돌려주는’ 방식을 제외하곤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고리대금업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진정으로 참회'하기만 하면 적어도 '연옥'에 가서 죄값을 치르며 천국에 갈 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관대한 처분을 받게 되었다. 여전히 죄인은 죄인이었지만, 그 죄값이 달라졌다. 이런 교회와의 타협을 통해 '고리대금업자'라고 불리던 이들은 은행가로, 자본가로 발전해갔으며 '지상에서의 부'와 '하늘에서의 영생'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연옥이 탄생하면서 임종의 순간은 아주 극적인 순간이 되었다. 하느님이 천국과 지옥 혹은 연옥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바로 그 다음 순간, 죽은 직후에 열리는 '개인에 대한' 심판에서였다. 그것은 자신의 행복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그야말로 개체화된 망자에 대한 개별적인 심판이었다. 그 점에서 고리 대금업자가 겪는 임종의 고통은 유난히도 불안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그는 "완전히 악한 자"가 아니던가? 자...연옥 한구석에 갑자기 예상치 못한, 상상을 초월하는 자가 나타났으니, 그는 바로 고리 대금업자였다...죽음이 재촉해서건 혹은 악마에 의해 말하는 능력, 즉 고해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해서건, 미처 반환을 하지 못한 고리 대금업자는 진실한 통회를 함으로써 구원받는 데 성공하곤 했다."(책 '돈과 구원', 자크 르 고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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