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좋아하는 동물을 위해 찬양 시를 쓴 시인이 있다

당신이 아무리 바쁜 일상 중에도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동물 동영상을 꼭 눌러보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자지러질 정도로 귀엽고 예쁜 반려동물에게 ‘사료와 쓰담’ 말고 더 격한 애정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시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직 동물들을 위한 시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현재 키우고 있거나, 꼭 한 번 키워보고 싶은 동물들에게 여기 나온 시어들을 빌려 세레나데를 바쳐보자. 알아들을지 알 수 없지만, 혹시 귀염둥이들이 혀로 한 번이라도 더 핥아줄지 모를 일이다.

1. 고양이

“내게서 더 이상/무엇을 알고 싶다는 것이냐/무엇을 더 캐고 싶다는 것이냐/가슴에 폭 안겨/한순간 마음을 훔치는/에스 라인의 관능,/아찔하고도 황홀하여라./애잔한 비음(鼻音)의 그 교태와/부드럽고도 따뜻한 체온이/.../그러나 보았는가/탐할 것 모두 탐하면/한순간/기민하게 담을 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그 배신을/야웅, 한마디 던지는/앙칼진 외침을//......알 것은 다 알았다...../.../” (책 '바람의 아들들', 오세영 저)

역시 고양이 하면 떠오르는 건 애타는 밀당의 순간이다. 다가올 듯 다가올 듯 다 다가온 것 같으면서도 쉽사리 곁을 허락해주지 않는 고양이의 도도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그 자체로 시가 될 법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시는 곧 고양이의 매력에 대한 찬양이기도 하다. '애잔한 비음'과 '부드럽고도 따뜻한 체온'에 '아찔함과 황홀함'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개

“슬픔이/말이 아니라 눈으로 든다는 것은/개를 보면 안다./주인이 돌아간 후/줄에 목이 매여/홀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물끄러미/맨땅을 응시하고 있는 개의/두 눈동자를 보아라./슬픔은/돌이킬 수 없는 존재의 자기 응시다./일찍이 자신의 운명에 순응해야 했을 것을,/야만이 싫어/인간에게, 인간에게 다가간 그/돌이킬 수 없는 실수./그러나 두 발로는/끝내 걸을 수 없는 행보가 서러워/개는 오늘도/젖은 두 눈을 들어/말없이 차가운 흙을 내려다볼 뿐이다.” (책 '바람의 아들들', 오세영 저)

아무도 없는 집에 반려동물을 혼자 두고 출근한 경험이 있다면, 특히 그 대상이 개였다면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문을 닫았던 경험이 한 두 번쯤 있었을지도 모른다. 집에는 '잠깐 들르고', 직장에는 '돌아간다'는 표현이 더 알맞은 당신이라면 반려견에게 한 번쯤 미안함을 담아 이 시를 읊어주는 건 어떨까. 정성을 다해 쓰다듬어 주면서 말이다.

3. 거북이

“단 한 번 흔들리지 않았다./뒤돌아보지도 않았다./평생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묵묵히/정진해온 그 신념./억만 년 화석이 될 때까지/다만 제 등피에 스스로 비문을 새겨/한결같이/생사의 도(道)를 지켜왔을 뿐이다./오늘도 너는 바위 위에 정좌하여/빛을 향해 경건히 묵상하는/참 수행의 하루를 보내는구나./보라./추세에 부응치 않고,/세속에 물들지 않고,/무리에 야합치 않고/또박또박/제 갈 길을 분명히 알고 걷는 자의/한생이 여기 있다.”(책 '바람의 아들들', 오세영 저)

만화 '드래곤볼'의 '거북도사'만 떠올려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옛날 옛적부터 본래 거북이는 최소 '십장생', 평균 '신선'과 친구 먹는 동물로 그려지곤 했다. 혹 그런 귀하신 거북님을 반려동물로 키우고 계신 분이라면 앞으로 잘 받들어 모시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시를 바쳐보자. 생사의 도(道)를 지켜오고 계신 분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말이다. 혹 영험 하신 분답게 잘 알아듣고 당신에게 새해 귀한 복을 내려줄지도 모른다.

4. 말

“의연하고도 준수하여라./한 곳에 정착해서/달콤한 안식을 꿈꾸기보다는/현상을 버리고, 안주를 버리고/밖으로, 밖으로/뛰쳐나가/푸르른 전설로 달리고 싶은 마음이/눈은 항상 먼 지평을 향해 활짝/열려 있다./휘날리는 하얀 갈기,/나는 듯한 네 발굽,/눈부신 목덜미/말이여,/아득한 산맥을 넘어서, 구름을 넘어서/빛의 고향을 향해 달리는 바람의/아들이여” (책 '바람의 아들들', 오세영 저)

말 때문에 시끄러운 지난 한 해였지만, 사실 말은 죄가 없다. 비싸서 그렇지 솔직히 여력만 되면 키우고 싶은 동물로 말을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괜히 '말 근육'이란 단어가 생겨난 건 아니니깐 말이다. 순한 눈과 탄탄한 몸체를 가진 그들이 힘차게 달려나가는 모습을 그려보며 대신 이 시를 읊어보자. '바람의 아들들'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른다.

5. 닭

“하늘을 향해서/가능한 길게 목을 늘여 빼고/청아한 목청으로 우는 짐승이 이 세상 너밖에 또/누가 있으랴./너의 울음은 차라리/하나의 제식(祭式)/붉은 화관을 위엄 있게 갖춰 쓰고/횃대에 높이 올라서서/빛을 향해/홀로 홰를 치며 경건히/축문(祝文)을 외운다./그래서 밤의 악령(惡靈)들은 언제나 날카로운/네 한 마디 울부짖음에/속절없이 물러간다 하지 않더냐./너는 죄 많은 이 지상의 중생들을 위해/특별히 신(神)이 보낸 사자,/네 호령 한 번에/빛은 어둠을 물리치나니/항상 푸른 하늘을 향해/ 가능한 목을 길게 빼고 우는 닭이여,/그 가장 높은 곳을 사모하는/신의 딸들이여.” (책 '바람의 아들들', 오세영 저)

2016년은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다. 닭은 본래 아침을 불러와 불길한 귀신을 내쫓는 상서로운 새로 여겨졌다. AI 사태 때문에 스러져간 많은 닭들의 명복을 빌며, 그래도 다시 한 번 그들과 우리 모두가 붉은 닭의 힘으로 희망찬 새해를 열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어둠을 물리치는 빛'과 함께 다들 밝은 새해 되시길.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허프북스 #동물 #동물을 위한 시 #고양이 #개 #거북이 #말 #닭 #문학 #오세영 #문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