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중국을 알기 위해 한자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 3가지

‘당연히 한자가 필요하지. 중국말을 하려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내용은 아니다. 옛날 논어, 맹자에 쓰였던 한자. 지금 우리가 '정체자(正體字)'라고 부르는 그 한자 이야기다. 현재 중국은 기존의 한자 획수를 단순화시킨 간체자(簡體字)를 1964년부터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굳이 예전의 그 한자를 알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떠받치는 핵심 요소를 알기 위해선 한자 자체에 대한 깊은 탐구가 필요하다는 주장 또한 만만치 않다. 이사를 갈 수 없다면 이웃에 적응해야 한다. 우리가 중국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들을 알기 위해 한자를 알아야 하는 3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한자는 중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엮은 핵심 도구였다.

중국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랑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띠따, 런뚜어, 리스지우(地大, 人多, 歷史久)". 즉 땅이 넓고, 인구가 많고, 역사가 유구하다는 뜻이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놀라운 일인 건 사실이다. 중국 정도의 땅과 인구를 가진 나라가 4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흩어지지 않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단 구성원 간 언어 소통부터가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홍콩 등지에서 쓰는 지역 언어인 광동어와 표준말인 북경어가 서로 상당한 수준의 차이를 보이는 것만 봐도 쉽게 이해가 간다. 한자는, 이처럼 언어와 지리가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을 엮어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서로 말로는 소통할 수 없어도 '이미지'로 이루어진 한자를 적어 대화를 나누는 '필문필답'을 통해 의사를 교환 할 수 있었다. 한,중,일이 서로 언어가 매우 달라도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이란 이름으로 묶일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여기서 기인한다. 즉 한자는 수 천 년 간 서로 다른 사람들을 아우른 강력한 도구였다. 중국이 하나로 유지될 수 있었던 문화적 저력이 궁금하다면, 한자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가능한 이유다.

"...중국에서 분기가 가장 극심한 방언은 환남(皖南) 방언인데, 이 방언구는 겨우 30마일(54킬로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는 사람들끼리 언어 소통이 곤란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 경내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가면 거의 외국어 수준으로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을 정도로 언어에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은 반만 년 이상의 역사를 통일 국가체제로 유지해왔다...언어가 다르면 사회도 분화, 또는 분열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도 말이다. 이 힘의 원천을 중국인들은 한자로 보고 있는데, 이는 근거 있는 주장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자의 속성을 분석해보면 충분히 근거가 있는 주장이라고 판단된다."(책 '한자의 역설', 김근 저)

2. 한자는 중국 사람들의 통치원리를 반영한다.

트와이스 멤버 쯔위가 대만 국기를 흔든 이유로 사과 영상을 올려야 했던 것도, 대만 총통과 먼저 통화를 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이 발끈했던 것도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하나'에 집착하는 걸까? 이유는 한자에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역대 중국 왕조들이 한자의 이미지를 왕의 통치를 합리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끌어다 씀으로써 구성원들의 '자발적 복종'을 유도했고, 그 언어적 습관이 아직도 중국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정치의 정(政)은 본래 어원이 '세금을 걷는 행위'라는 뜻이지만, 바를 정(正)과 발음이 비슷한 점을 이용해 오랫동안 '올바로 바로잡는 행위'라고 풀이해 세금의 부정적인 느낌을 가렸다. 또 왕과 백성의 신분을 자연 현상처럼 불변의 법칙으로 만들기 위해 왕을 꽉 찬 해 일(日)에, 백성을 이지러진 달 월(月)에 빗대 설명하기도 했다. 한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처럼 하나의 정치 체제를 ‘이미지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체계화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만의 독특한 사회, 정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한자에 대한 지식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자의 의미 생성 기제는...감성적인 합리성에 의존하고 있어서 개인이나 지역에 근거한 논리나 특수성을 지양하여 보편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한자는 통합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일에 매우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즉,...모든 한자들을 하나의 틀로 조직했다는 것은 모든 사물에 질서를 부여해서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틀 속에 넣었다는 뜻이 된다. 이 틀을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고 다스려져야 하는데, 그 임무를 황제가 하늘로부터 위임 받았다고 하면 황제의 권위와 정통성을 저절로 입증된다..." (책 '한자의 역설', 김근 저)

3. 중국인의 속내를 알기 위해선 한자를 알아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중국과 수교를 맺고 본격적으로 교역이 시작되었을 때 한국무역협회(KOTRA)에서 막 진출하는 사업가에게 전한 주의사항 중엔 반드시 계약서를 영어로 쓰라는 조언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한자가 문장이 되어 전달되는 의미가 해석하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꼼수'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는 한자가 가진 기본적인 속성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미지로 이루어진 문자이기 때문에 해석하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뜻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지러울 란(亂)은 '헝클어진 실타래를 두 손으로 푸는 모양'에서 발전한 글자인데, 기본 뜻은 어지럽다는 뜻이지만 '두 손으로 푸는 모양'에 집중해 정반대의 의미인 '다스리다'로 쓰이기도 한다. 이처럼 한 글자에 반대의 의미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한자의 특성은 역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서구와 차별되는 중국 특유의 세계관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언뜻 보기에 알 수 없는 애매한 중국 사람들의 본뜻을 알기 위해 그들의 논리 회로를 담아냈던 그릇인 한자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모든 상징체계는 역설이 불가피하다. 이치도 상징체계에 속하므로 이러한 역설의 딜레마를 피할 수 없을 텐데, 중국은 이치를 통치 이데올로기의 근간으로 삼았음에도 어떻게 역설을 피해올 수 있었단 말인가? 거칠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역설을 배제하지 않고 삶으로써 모순을 흡수해왔는데, 그 중심에 한자 패러다임이 있었다. ...한자의 표의 기능은 잉여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체제 속의 존재로 인정함으로써 실재계를 커버하려 한다. 앞서의 란(亂) 자를 다시 보면...'어지럽다'를 상징하기도 하고 '다스리다'를 상징하기도 한다. 어느 쪽을 표상하더라도 다른 쪽은 배제되지 않은 채 여전히 문자 속에 존재하면서 실재계로 기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 '한자의 역설', 김근 저)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허프북스 #중국 #중국 문화 #정체자 #간체자 #한자 #통치원리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