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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잃어버린 지 25년 만에 구글어스로 집을 찾아간 남자의 이야기

  • 강병진
  • 입력 2017.01.28 05:09
  • 수정 2017.02.03 12:26

어떤 기술은 잊혀진 기억을 소환시킨다. 지난 2005년 세상에 나온 구글 어스, 그리고 이후에 나온 스트리트뷰, 그로부터 불과 3, 4년 만에 한국의 포털사이트들이 내놓은 로드뷰 서비스는 기억을 소환시키는 대표적인 테크놀로지다. 지난 2014년 이스라엘의 한 남성은 과거 자신이 살았던 집을 구글 스트리트뷰로 찾아보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반려견을 만나기도 했다. 개를 찍은 사진들을 담아둔 하드드라이브가 망가지면서 모든 기억이 사라질 뻔했던 그는 스트리트뷰 덕분에 사랑했던 반려견을 영원히 담을 수 있었다. 그처럼 감동적인 사연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네이버와 다음의 로드뷰를 통해 과거에 살았던 집과 뛰어놀던 골목, 혹은 과거의 연인과 함께 걷던 길을 되찾아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을 개발한 장본인들도 이 기술이 사루 브리얼리란 남자에게 일으킨 기적까지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5살 때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린 그는 약 25년 후, 구글어스를 통해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냈다.

사루 브리얼리

사루 브리얼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라이언’이라는 제목의 책(한국판 제목은 ‘집으로’)으로 썼다. 이 책은 2017년 오스카 시상식 작품상 후보 중 한 편인 영화 ‘라이언’이 되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뉴스룸’의 배우 데브 파텔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하지만 그는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실제 사연을 거의 가공하지 않았다. 실제보다 더 극적일 필요가 없는 기적이었을 것이다. 먼저 5살 꼬마아이가 우연히 집을 떠난 후, 납치를 비롯한 각종 범죄로 가득한 도시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기적이다. 사루는 인도의 어느 가난한 마을에서 엄마와 두 명의 형, 그리고 한 명의 여동생과 함께 살던 소년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일을 해야했고, 두 형도 매일 밖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5살은 아직 형들을 돕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사루는 “이제 더 이상 집에만 머물러 있을 꼬마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어느날 밤 큰 형과 함께 기차를 탔다. 그때만해도 사루는 신나는 모험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심한 시각의 어느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사루의 5살 꼬마다운 본능이 살아났다. 5살밖에 안된 어린아이는 밤이 되면 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형은 동생을 잠시 기차역 벤치에 눕힌 후, 어딘가로 향했다. 잠시 후 잠에서 깬 아이는 형을 찾다가 주변에 정차된 기차에 들어가 다시 잠을 잤다.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 기차는 달리고 있었다. 기차는 멈출 생각 없이 계속 달렸고, 아이는 또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도 기차는 달리고 있었다. 달리고 달리던 기차가 정차한 곳은 사루의 집에서 약 1,600km 떨어진 ’캘커타’란 도시였다. 사루 브리얼리는 책에서 ‘캘커타’를 이렇게 설명했다. “캘커타는 거대한 난개발 도시다. 그곳은 인구과밀과 오염, 극심한 빈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겁나고 위험한 도시 중의 하나로 유명했다.”

영화에서 어린 사루가 캘커타 곳곳을 누비며 살아가는 모습은 동물 다큐멘터리와 흡사하다. 거리에 버려진 고양이가 사나운 동물들 틈에서 목숨을 이어가며 버티는 광경이 그려질 정도다. 실제 사루 브리얼리 또한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과 먹을 것을 놓고 다투기도 했고, 납치의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으며 여러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영화 촬영에 앞서 실제 캘커타를 방문한 ‘라이언’의 감독 가스 데이비스는 “5살 소년이 그곳에 혼자 남겨졌다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어린 사루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안했던 건 아니었다. 아이는 자신이 살던 동네의 지명을 ‘지네스틀레이’와 ‘베람퍼’란 두 단어로 기억했지만 당시 사루가 만난 누구도 그곳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사루는 ‘힌디어’를 쓰는 지역에서 자란 아이였지만, 캘커타의 사람들은 ‘벵갈어’를 쓰고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몸집은 작고, 가족과 헤어진 아이는 거리에서 먹고, 거리에서 자고, 거리에서 놀았다. 그리고 아이의 운명을 바꿔놓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동보호소로 들어간 후 인도에서 약 7.600km가량 떨어진 호주의 한 가정으로 입양된 것이다. 당시의 아이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가족과의 재회를 포기한 결정이었다.

이 이야기에 담긴 또 하나의 기적은 사루와 그를 입양한 부부와의 만남이다. 영화에서 니콜 키드만과 데이비드 웬햄이 연기하는 사루의 양부모는 집을 잃고 거리를 떠돌던 이 아이를 헌신적으로 품었다. 사루 브리얼리의 회고에 따르면 실제 양부모는 영화 속 부모보다 더 헌신적이었다. 이들은 사루를 따뜻하게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아이가 인도에서 가졌던 기억과 경험을 고스란히 간직하도록 배려했다. 아이의 방에는 인도의 지도를 붙여놓았고, 호주 내의 많은 인도인과 교류했으며 아이가 학교에서 겪을지 모르는 인종차별을 세심하게 근심했다. 고작 5살 아이의 기억이지만, 사루 브리얼리가 자신의 집을 찾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단서들을 간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처럼 양부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라이언’은 이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입양’을 통한 만남이 이 세상에 가져올 수 있는 아름다운 결과의 가능성을 더듬는다. 실제 사루 브리얼리의 양부모는 ‘불임’ 때문에 사루를 입양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아이를 낳을 수 있었지만, 세상에는 이미 사람이 너무 많다는 판단하에 빈곤 국가의 아이를 입양해 가정을 꾸리는 게 이 세상에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들은 사루 외에도 인도에서 또 다른 아이를 입양했고, 사루는 그렇게 또 다른 형제를 갖게 되었다.

집을 잃은 아이는 위험한 도시에서 살아남았고, 자신의 기억까지 보호하는 부모를 만났다. 하지만 사루가 다시 고향을 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과 함께 성장한 건 아니었다. 그러기에 인도는 너무 넓은 땅과 너무 많은 사람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인터넷’이라는 걸 만들었다.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일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로 바뀐 계기였다. 대학에 들어간 사루는 그곳에서 호주로 유학 온 인도인 친구들을 만났다. 사루의 사연을 들은 인도인 친구들은 정보를 조합해 사루가 살았던 곳이 어딘지를 추측했다. 이때의 대화를 시작으로 사루는 ‘지네스틀레이’, ‘베람퍼’와 흡사한 인도의 지명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수차례의 검색이 알려준 건 그와 흡사한 지명을 가진 곳이 인도에는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이때 세상은 그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제공한다. 바로 ‘구글어스’의 탄생이었다. 사루는 다시 자신이 기억한 지명과 어린 시절 뛰어놀던 숲, 사원, 작은 다리, 골목의 풍경, 기차역, 물탱크 등의 단서를 조합해 고향집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인도는 너무 넓은 곳이었다. 사루는 25년 전 그날밤 기차를 탔던 시간과 당시 인도를 다니던 기차의 속도를 계산해 구역을 특정했다고 한다. 그결과 특정한 검색 구역은 약 96만 2천 3백 평방킬로미터. 사루 브리얼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도 대륙의 4분의 1이상이었다. 그 범위 안에 포함된 인구는 약 3억 4천 5백만 명이었다.” 인터넷은 이미 그에게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제공했다. 남은 건 사루가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모래사장에서 가장 작은 모래알을 찾아야 하는 처지였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사루 브리얼리는 구글어스로 검색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자신이 떠나온 집을 찾아냈다. 그런데 기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루 브리얼리는 고향집을 찾아가 가장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의 친어머니는 아들이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25년 동안 집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구글맵스가 제작한 실제 사루 브리얼리의 미니 다큐멘터리

사루 브리얼리와 '라이언'에서 꼬마 사루를 연기한 써니 파와르, 그리고 어른 사루를 연기한 배우 데브 파텔

‘라이언’의 제작진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매년 8만여 명의 아이들이 사라진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부모의 손을 잠깐 놓쳤을 것이다. 어떤 아이는 납치됐을 것이다. 또 어떤 아이들은 생계문제로 버려졌을 것이다. 인도가 아니더라도, 지금은 매년 수많은 난민이 집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가족과 헤어지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또 그 과정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아이들 가운데 다시 집으로 돌아간 아이는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갔을까? 사루 브리얼리는 상상할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 중에서도 가장 희박한 가능성의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기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의지가 있다. ‘라이언’이 사루 브리얼리의 이야기에 새로운 영화적 구성을 더하지 않고, 실제 그가 서술한 그대로의 방식을 따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으로 가는 길을 놓친 5살 꼬마의 오디세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 ‘라이언’의 이야기가 지금 사람들에게 전하는 매혹이 있다면, 세상이 개발한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의지를 통해 그 희박한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넓혀줄 것이라는 희망일 것이다. 세상은 과거보다 더 위험해졌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그래도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라는 ‘안도감’. 어떤 기술은 사람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어떤 영화도 그렇다.

사루 브리얼리의 고향인 인도의 가네스 탈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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