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20s` Voices] 리포터·컨텐츠 크리에이터 채희선은 "절대 현실과 타협하지 말라"고 말한다

서른을 목전에 둔 1989년 생부터 갓 스물이 된 1998년 생까지, 2017년 한국을 살아가는 20대들을 생각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암울한 취업률, 과다 스펙, 삼포 세대, 치열한 경쟁, 헬조선 등 암울한 단어들이 많죠. 그러나 모든 20대들에게 조금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초석을 닦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하죠.

허핑턴포스트의 20대 에디터 세 사람은 2017년 1년 간, 엄청난 성공을 거머쥐기에는 어린 나이이지만 빛나는 눈으로 자신의 꿈에 도전하고 있는 20대들을 만나 인터뷰합니다. 그 첫 번째로 리포터이자 컨텐츠 크리에이터로 활약 중인 채희선 씨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채희선의 첫 방송은 2009년, MBC '무한도전 - 돌+I' 특집이었다. "여고생 돌+I" 캐릭터로 대중에 눈도장을 찍은 그녀는 이듬해 tvN '화성인 vs 화성인'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리포터이자 엔터테이너가 꿈이었던 그녀는 공연예술학과에 진학해 관련 공부를 계속하고, 이 와중에 '무한도전'에서 만난 '돌+I' 인연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신동훈의 방송에 출연하며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 등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쉐어하우스' 등 컨텐츠 제작사와 함께 방송을 촬영하기도 했으며, 2년 전부터 개인 유튜브 채널 '채채TV'를 운영하며 직접 컨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리포터에도 끊임없이 도전했다. 서울메트로방송을 시작으로, 현재는 충북방송CCS와 강릉영동MBC에서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다. 허핑턴포스트는 20대임에도 갖고 있던 모든 꿈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채희선에게 지금까지 꿈을 이뤄 온 과정, 꿈을 이룬 현재의 마음과 같은 꿈을 가진 이들을 위한 조언을 들었다.

1월 14일 토요일 밤 10시, 상암동에 위치한 CJ E&M 건물에서 갓 방송을 마치고 퇴근하는 채희선 씨를 만났다. 장장 세 시간의 생방송을 마치고 난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밝은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는 근처 술집에서 편안하게 이뤄졌다.

- 요즘 뭐가 가장 힘들어요?

= 어우… 어… 아니 에디터님, 이거 첫 질문부터 너무 훅 오는 거 아닙니까?(웃음)

요새 가장 힘든 거라면… 앞으로의 발전에 대한 고민? 예전에는 이 직업이 영원할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부딪히고 나니까 영원할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반응도 많아지니까요. 긍정적인 것만큼 부정적인 것들도. 그런 것들이 힘드네요.

- 어린 시절 꿈은 뭐였어요?

= 되게 감성적인 말이긴 한데, 저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고 싶었어요. 뭔가를 하면 사람들이 따라와 주는 그런 사람이요. 사람들이 내가 뭔가를 할 때마다 나를 따라오고, 그게 내 재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지금은 제가 웃기는 걸로 사람들을 따라오게 만드는데, 사실 비슷한 맥락이죠.

채희선 씨의 어린 시절.

- 그럼 지금의 모습과 어린 시절 생각한 꿈의 모습을 비교하면 꽤 비슷하겠네요?

= 똑같죠. 거의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예를 들자면, 제가 어릴 때 어떤 한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몇 년 뒤에 똑같이 그 무대 위에 서게 된 거에요.

또 제 고향 강릉에서 리포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강릉MBC 마이크를 들고 리포터를 하게 된 거에요. 정말 많은 것들이 그랬어요. 거의 다 똑같이 됐죠. 저의 ‘꿈’의 모습과.

- 지금은 많은 꿈들이 이뤄진 것 같아도 전에는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 사실은… 지금이에요.(웃음) 여태껏 살면서 그런 생각 전혀 하지 않았는데, 가장 포기하고 싶은 때는 지금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고정 스케쥴이 다섯 개인가 여섯 개에요. 정말 뿌듯하고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이상한 게, 원하는 걸 어느 정도 이루거나 목표점에 도달하고 나니까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내가 여태껏 걸어온 길을. 차라리 위만 바라보면서 올라가려고만 했던 때가 나았던 것 같기도 하고.

또 사람들의 반응도 힘들어요. 뭐 악플이나 루머, 나에 대한 평가 같은 것들이 크게 상처가 되죠. 저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무척 예민해요. 제 자신에 대해서도 늘 평가를 하고요. 제가 그렇게 신경 쓰는 걸 사람들이 알아요. 그래서 더 놀려요. 알고도 더 그러죠. 짓궂게, 정당한 비판이 아닌 성희롱적인 댓글이라든가 부모님 욕을 한다든가. 그런 것들이 싫죠.

목표를 어느 정도 성취하고 난 뒤의 허탈함과 점점 더 많아지는 나에 대한 평가, 악플, 루머 이런 것으로 인해 요즘 조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전에는 마냥 올라가고 있다는 기쁨에 느끼지 못했지만.

- 다른 꿈은 없었어요?

= 없어요. 없어서 더 힘든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려온 그림들이 있었는데 그걸 작년에, 그러니까 스물다섯 살에 거의 다 이룬 거에요. 정말 이게 돼? 내가 이걸 해냈어? 여기 도전해봐도 되나? 또 해냈어! 또 기회가 생겼어! 이런 일들이 엄청 많았거든요. 근데 그런 걸 뭐 하나 빠짐없이 다 이루고 나니까 정말 요즘은 꿈이 없어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꿈을 ‘직업’으로 선택했던 게 함정이었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이후로는 꿈을 리포터, 혹은 엔터테이너, 이렇게 딱 직업으로 정해두고 있었거든요. ’피리부는 사나이’는 추상적인 꿈이었고, 그걸 구체화해서 리포터, 엔터테이너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된 거고요. 이 구체적인 걸 구체적으로 다 이룬 거에요. 아주 빨리. 남들은 저에게 ‘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번다’라며 ‘복에 겨웠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지금 카오스 상태에요. 새로운 걸 찾고 싶어요.

- 이건 그냥 지금 궁금해져서 물어보는 건데, 혹시 스케쥴이 어떻게 돼요? 일주일에.

= 우선 매주 토요일, 지금 촬영하고 온 다이아TV 다수쇼에서 MC를 해요. 그리고 같이 유튜브 크리에이터 일을 하고 있는 신동훈 씨와 함께하는 ‘신채계약서’는 2주에 한 번 촬영하고요. 유튜브에 영상도 일주일에 3회 정도는 올리려고 해요.

다이아TV 다수쇼 촬영을 마치고.

지금 리포터를 하고 있는 곳은 충북방송CCS와 MBC강원영동인데, 리포터 일은 1주일에 한 번 이상 진행해요. 서울 반 지방 반,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 거죠.

직접 공개한 스케쥴러. 촬영과 편집 등으로 빽빽하다.

- 촬영을 많이 하네요. 모니터링도 다 하시나요?

= 네. 저는 제가 나온 프로그램 단 한 번도 모니터링 안 한 적 없어요.

집에 스케치북이 하나 있어요. 제가 나온 방송을 모니터할 때 쓰는 건데, 그걸 보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쓸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나온 30분짜리 리포터 영상을 보면서 ‘미간’만 다섯 번 쓴 적이 있어요. 미간을 다섯 번 찌푸린 거죠. 뭐 스케치북엔 계속 써요. ‘말이 너무 빠르다’, ‘왜 안 웃어?’ 뭐 이런 것들이요. 보면서 써요. 그리고 잘한 건 ‘이건 참 잘했어 희선아 하트’ 이런 거 써놔요.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다음 번엔 실수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빼곡하게 채워진 모니터링 스케치북.

- 지금까지 꿈을 이루기 위해 걸어온 삶의 궤적이 어떻게 돼요?

= 일단 고등학교 때 이후로 리포터가 되고 싶다는 직업적인 꿈이 생겼죠.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전국 리포터 경연대회를 나가서 상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 방송연예과, 연극영화과 시험을 봐서 관련 학과로 대학을 갔고요.

대학 다니면서도 몇 십 번 떨어졌지만 오디션도 보고. 대학교 때 국토대장정을 갔는데, 그 이유도 리포터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내가 리포터가 되려면 전국을 직접 발로 뛰어 봐야지 어떻게 설명을 하고 말을 할 수 있으니까요. 600km를 그런 마음으로 갔다왔죠.

그리고 리포터 학원을 다니려 했는데, 그러려면 사실 돈이 들어요. 차마 부모님한테 달라고 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알바를 두 탕씩 뛰면서 돈을 벌었어요. 그게 사실 몇백만 원씩 돼요. 그래도 진짜 하고 싶었거든요. 그게 스물두 살 때였는데, 그때 썼던 일기가 잊혀지지가 않아요. ‘이렇게 돈 버는 거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싶은 거 하기 위해서 돈 버는 건 나를 위한 투자금이야. 나의 미래를 위해서 이런 모금함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아.’라고.

그러다가 스물세 살에 처음으로 리포터 데뷔 아닌 데뷔를 했는데, 그게 오디오가 안 나오는 방송이었어요. 아무리 말을 해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 거죠. 그리고 급여가 정말 적었어요. 5만 원이었는데, 그날 택시비가 2만 원이 들었거든요. 택시비 청구하라고는 하는데 못했죠. 그게 제 리포터 데뷔였어요. 그래도 기뻤어요. 시작이니까요.

그렇지만 그 이후는 쉽지 않았어요. 오디션을 봐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하게 되더라도 잘리는 일이 많았죠. 그러다가 작년 봄에 충북방송CCS를 시작했어요. 그 때도 사실 금방 잘릴 거라고 생각했고요.

근데 처음 방송을 한 날 PD님이 나지막하게 그러시더라고요. ‘아, 얘랑은 오래 갈 수 있겠다’. 너무 기쁜 거에요. 그래서 일부러 못 들은 척 했죠(웃음). 그리고 다시 여쭤봤어요. ‘네? 피디님 못 들었어요’ 했더니 피디님이 ‘너랑은 오래 해도 되겠다고’ 이러시더라고요. 정말이지 기뻤죠. 그리고 진짜로 지금까지, 27회까지 단독으로 프로그램 진행해 오고 있어요.

단독 진행 중인 프로그램 '사장님 대박나세요'

그 일 이후로 정말 물꼬가 트였어요. 12년 만에 제 고향 강릉에 있는 MBC강원영동에서 리포터 오디션을 보더라고요. 정말 기회가 좋았던 거죠. 마침 제가 강릉에 살고 있었을 때라서.

유튜브 크리에이터 얘기를 하자면, 사실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목표로 설정한 적은 없었어요. 다만 용돈벌이이자 취미, 재미 삼아 다른 사람들의 컨텐츠에 출연한 적은 있죠. 저는 제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요. 하더라도 연기만 하지 편집은 안 할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다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제 채널을 갖게 된 건 2015년도 2월이에요. 지금 팔로워는 31만 명이고요.

유튜브 주제는 딱히 고민하지 않아요. ‘무조건 재미있는 거’에요. 엄청 단순하죠(웃음). 사실 처음에는 아무도 나를 리포터로 써 주지 않으니까, 방송을 리포터에 대한 것들로 했어요. 저는 리포터가 되는 게 정말 간절했거든요.

- 지금 행복하세요?

= 음, 저는 행복이 성취감에서 많이 와요. 요즘은 근데 그게 예전 같지 않다 보니까, 행복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예전보다는 덜 행복한 것 같아요. 스물다섯 살 때, 그러니까 작년엔 성취감이 엄청났거든요. 일이 늘어날 때마다 성취감을 느꼈죠. 그런데 지금은 일이 늘어나거나 뭔가를 이뤄도 그냥, 아… 오래된 연인마냥, 그렇죠. 그래도 오래된 연인이랑 안 헤어지는 이유가 뭐겠어요. 정이 들고, 아직 좋으니까(웃음).

-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요?

=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제 취미는 영화 보고 책 읽고 글을 쓰는 거예요. 짧게라도. 영화나 책이나 보고 읽자마자 그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제 기분과 감상을 남기는 거에요. 제 블로그에 그 내용이 많죠.

다들 잘 안 믿으시지만 사실 저는 술도 싫어하고 유흥도 좋아하지 않아요. 클럽도 한 번도 안 가봤고요. 그런 데 갈 바엔 집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해요. 영화는 아마 500편 조금 안 되게 봤고, 후기는 200개 정도를 썼죠.

제 블로그를 본 사람들은 다 그래요. 유튜브 영상에서는 밝고 활발하고 그런데 블로그 글만 보면 너무 차분하고 무거워서 다른 사람 같다고. 그런데 그 두 가지 모습 다 저예요. 방송에서 밝은 것도 저의 성격이고, 영화와 책을 보면서 감성에 젖어 무거운 글을 쓰는 것도 저의 성격이죠. 차이가 좀 많이 커 보이긴 하지만.

- 어떤 때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 무슨 일을 이뤘을 때. 무슨 일을 이루고 난 그 날 밤. 잠이 안 와요. 너무 기뻐서.

사람마다 삶의 중심 가치로 두는 것들이 다르잖아요. 에디터님도 그런 게 있을 거고, 저는 삶의 가치가 무조건 일이에요. 주변 친구들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에서 타협하는 지점들이 조금씩은 있어요. 아, 나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할래. 그런데 전 그게 안 되거든요.

완벽주의자라기보다는 완벽주의 코스프레?(웃음) 완벽하게 일을 하고 싶어요. 시간을 빠듯하게. 오늘도 일곱 시부터 12시까지 편집을 하고, 12시부터 4시까지 다른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촬영을 하고, 4시부터 밤 10시까지 ‘다수쇼’를 촬영했거든요. 그리고 지금, 11시 반까지도 이렇게 인터뷰 하고 있고(웃음).

아침 일곱 시부터 밤 12시가 다 되도록 일했으니 집 들어가면 이제 피곤하게 잠들겠죠. 근데 약간 변태 같은데, 그러면 너무 희열을 느껴요. 아~ 오늘 정말 열심히 일했어. 이렇게. 그냥 그 뿌듯함을 안고 잠드는 게 좋아요. 그런데 이 뿌듯함은 정말 어떤 단어를 갖다 붙일 수가 없어요. 정말 말로 설명하는 것조차 어려운 그런 뿌듯함이 있어요.

-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 리포터, 방송, 엔터테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이요? 절대 현실에 타협하지 마세요. 사실 저 같은 일, 방송을 하거나 예술을 하거나 이런 쪽, 이런 일은 현실에 타협하는 순간 끝이에요. 못해요. 사실 저도 그냥 일반 회사에 직장인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어요. 다른 제안들도 많이 받았고요. 그렇지만 제 꿈은 리포터였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간 거에요. 저와 같은 꿈이 있다면 절대 타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배고프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요.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지만 그 날 밤도 채희선 씨는 바쁘게 일한 그 뿌듯함을 안고 잠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 시작이야’, ‘새로 시작이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녀의 꿈인 ‘피리 부는 사나이’는 지금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허프인터뷰 #20s` voices #채희선 #채채TV #리포터 #충북방송 #강릉MBC #유튜브 크리에이터 #유튜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