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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 행진에 대해 복잡한 심경이 드는 이유

  • 김도훈
  • 입력 2017.01.25 11:48
  • 수정 2017.01.25 11:50
WASHINGTON, DC - JANUARY 21:  (L-R) Amy Schumer, Gloria Steinem and Madonna  attend the rally at the Women's March on Washington on January 21, 2017 in Washington, DC.  (Photo by Kevin Mazur/WireImage)
WASHINGTON, DC - JANUARY 21: (L-R) Amy Schumer, Gloria Steinem and Madonna attend the rally at the Women's March on Washington on January 21, 2017 in Washington, DC. (Photo by Kevin Mazur/WireImage) ⓒKevin Mazur via Getty Images

토요일에 열린 워싱턴 여성 행진에는 수백만 명이 참여했고, 전세계에서 이에 동참하는 행사가 열렸다. 나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 행진의 핵심적 이상에 내가 반대하거나, 이게 페미니스트들의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편이었던 건 아니다. 여성, 유색 인종, 이민자, 장애인, LGBTQ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책을 세운 새 정권에 힘을 합쳐 맞서야 할 필요는 나도 잘 이해한다. 그러나 흑인 이민자 여성인 나는 이 행진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에 대해 아주 깊은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착한 백인 여성들이 다음 #흑인의목숨도중요하다 행진에 참가하는 것도 보게 되겠지? 안그래?"

이것이 #womensmarch 에서 가장 중요한 팻말이었다. 우리에겐 할 일이 있다.

흑인 여성들은 우리를 구하려 했다. 흑인 여성의 94%는 클린턴에게 투표했다. 흑인 여성들은 투표에 참여했다. 백인 여성의 53%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되도록 투표한 다음, 흑인 여성들이 다시 몰려나와 연대했다. 우리 모두가 힐러리 클린턴을 흠모했거나, ‘끔찍한 여자’, ‘x지가 맞서 움켜쥔다’는 등의 문구에 공감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흑인 여성들은 다시 나타났다.

뉴욕의 사무실에서 나는 재닛 목이 실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자넬 모네가 ‘운동의 어머니’들이 살해 당한 아들들의 이름을 말하게 하는 것, 앤젤라 데이비스가 ‘역사는 웹페이지처럼 삭제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생방송으로 보며 고무감을 느꼈다.

백인, 라틴계, 아시아계, 원주민, 무슬림, 불법 이민자, 성폭력 생존자, 퀴어, 트랜스, 장애인들이 무대에 올라 교차성(intersectionality)과 다양성의 중요함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며 또한 고무감을 느꼈다. 행진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최악의 사회 정의 전사(SJW) 텀블러로 보였을지 몰라도, 내겐 아름다워 보였다. 미국으로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페미니즘을 버자이너를 지닌 것과 연관짓는 수없이 많은 팻말들을 보는 기분은 좋지 않았다. 트랜스와 비관행적 젠더 시위자들을 배제하는 해가 되는 팻말이었다. 행진 불과 며칠 전에 재닛 목이 성노동자 인권 인식이 필요하다고 썼던 부분을 삭제한 행진 조직자들에게 항의를 해야 했다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깜둥이라는 말(n-word)을 사용한 것에 대해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는 여성인 마돈나가 내 영웅들과 같은 무대에 서서 백악관을 폭파시키는 것에 대해 호탕하게 농담하는 것을 보는 기분도 좋지 않았다. 유색 인종 여성 중에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위 며칠 전에 작가이자 활동가인 자밀라 르뮤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나는 깊이 공감을 느꼈다. 르뮤는 컬러라인스에 기고한 글에서 검은 피부, 갈색 피부의 여성들이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정치를 제쳐두어야 하는 일이 자꾸 생긴다고 썼다.

“나는 백인 여성 백만 명이 해리엇 터브먼, 소저너 트루스, 오드리 로드의 무덤으로 행진하는 걸 보고 싶다.” 르뮤의 글이다.

르뮤는 행진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시위에 참가해서 르뮤가 쓴 주제에 대해 용감하게 말한 흑인 여성들도 많았다. 소셜 미디어에서 널리 퍼진 상징적 사진에서 한 흑인 여성은 ‘잊지 말라: 백인 여성들은 트럼프를 찍었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자매들을 끌어내어 행진에 참여시키기 전에, 우리는 명백하게 행동했다는 걸 기억하라. 우리는 페미니스트였다. 나는 그녀를 ❤한다. 그녀가 누구인지 안다면 태그하거나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달라.

이번 행진은 최대 규모의 페미니스트 행사였다. 유색 인종 여성들이 이에 대해 복잡한, 혹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행진 전에 조직자들의 사상이 서로 부딪힌다는 논쟁 속에서 작가 엠마-케이트 시먼스는 자신이 자라면서 알았던 페미니즘이 ‘서로 경쟁하는 피해자 내러티브와 가장 억압 당한 위치를 놓고 겨루는 개인주의적 정체성으로 축소되었다’고 불평했다.

“트럼프가 미국인, 국제적 진보 세계 질서, 전세계 여성들에게 위험이 되고 있는 지금, ’특권’, ‘백인 페미니즘’, ‘교차성’, 불만의 위계를 놓고 서로 공격하는 것을 넘어설 수는 없는가?” 시먼스가 위민 인 더 월드에 쓴 글이다.

바로 이런 반응 때문에 나와 여러 유색 인종 여성들이 여성 행진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갖는 것이다.

이건 압제 올림픽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흑인 여성들은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좌절을 느낄 권리가 있다. 우리는 백인 여성들과 함께 시위를 한다 해도 백인 여성들을 지적할 권리가 있다. 변화와 혁명은 결코 쉽고 편안한 게 아니다.

토요일의 워싱턴 여성 행진에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만약 트럼프가 무슬림 등록제를 만든다면 우리는 모두 무슬림으로 등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정서이지만, 그런 말에는 실제로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조심하지 않는다면 ‘교차성’이라는 개념은 ‘다양성’과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거나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다양성을 그들의 삶에 통합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공허한 단어가 되어버렸지 않은가. 이 행진은 고무적인 시작이고, 카타르시스를 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이는 유행하는 싸움이 아닌 모든 싸움에서 우리가 함께 서로를 도우며 실행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y I Had Mixed Emotions About The Women’s March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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