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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 할 환자가 오지 못한 밤

지난 공중폭격이 있을 때는 여기 40병상이 모두 다 차고도 넘쳐 75명까지 수용해야 했던 적이 있고, 교전 중에는 응급실로 하루에 60~70명씩 중상 환자들이 몰려오는 날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은 조용하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갔다. 들려오는 무력분쟁의 상황에 비해서는 뭔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상황은 예상대로 환자들이 없어서 조용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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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요르단 람사 병원 5월 16일 월요일 아침 8시, 회진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의료팀리더(MTL)가 일정에 없던 회의를 소집하였다. 무슨 일일까 의아해하며 회의실에 들어서는데, 평소 농담을 즐기며 익살스런 표정을 잘 짓는 의료팀리더의 표정이 가볍지 않아 보이는 것을 보니, 요즘 상황으로 보아 시리아 남부의 정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시리아 남부에 무력분쟁이 다시 시작된 것에 대한 공식적 공지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요전 몇 일 간 시리아 남부에는 도시 주변을 둘러 선전포고와 같은 공포 사격과 폭탄 투하가 있어, 그에 대한 상황 변동에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어제 밤과 오늘 새벽에 시리아에 있는 연락책으로부터 본격적인 무력 분쟁이 발발하였다는 소식이 전달되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환자들이 몰려올 수 있으니 준비를 좀 더 심화하기로 했다.

오후 2시, 해외파견 활동가들뿐 아니라 현지 의료진 주요 직책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대량사상자 발생에 대한 대비계획이 빔프로젝트를 통해 비춰졌다. 응급실 내에서의 환자 진료 배치도, 환자 병상 마련 구상, 그리고 의료팀의 그룹편성과 각 직군별 역할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응급조치를 취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을 담당하는 레드팀, 생명이 오가는 상황은 벗어나 비교적 안정적이나 수술 등의 주요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담당하는 엘로우팀, 응급조치를 취해도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사망한 환자를 담당하는 블랙팀으로 그룹이 편성되고, 환자 분류를 담당하는 의사가 지정되었다. 시리아에서 이송되는 환자는 대부분 중상환자이기 때문에, 다친 정도가 경미한 경상 환자를 담당하는 그린팀은 최소한으로만 편성되었다.

저녁이 되니 환자가 오기 시작하나 싶었다. 환자가 하나 둘 응급차에 실려왔고 응급수술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 후 밤에는 응급 콜이 있지는 않았다. 밤이 지나 아침이 오고, 환자들이 띄엄띄엄 오고 있다. 응급실로 오는 환자수가 늘기는 했지만, 몰려오는 정도는 아니다. 긴장했던 것에 비해서는 환자가 많이 오지는 않는다. 지난 공중폭격이 있을 때는 여기 40병상이 모두 다 차고도 넘쳐 75명까지 수용해야 했던 적이 있고, 교전 중에는 응급실로 하루에 60~70명씩 중상 환자들이 몰려오는 날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은 조용하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갔다. 들려오는 무력분쟁의 상황에 비해서는 뭔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상황은 예상대로 환자들이 없어서 조용한 것이 아니었다. 시리아 내의 병원과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환자들이 넘쳐있는데, 국경까지 응급차에 실려 보내기 까지가 너무 위험해서 보낼 수가 없다고 한다.

환자는 있는데, 이쪽 병원으로 후송한다는 연락은 없는 이런 상태가 사나흘 지속되더니, 토요일 오후, 뭔가 변화가 생긴 모양인지, 점심시간 지나 6명이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도착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선 2명이 동시에 도착하였다. 한 명은 머리가 손상되어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누군지 알아보기 힘든 정도로 실려오고, 다른 한 명은 오른쪽 다리에 피가 흘러내렸지만 검사를 해보니 피부와 근육 조금 떨어져나간 정도이고 왼쪽 손목뼈는 부러졌으나 기브스만으로도 치료할 수 있는 골절이었다. 응급조치를 마치고, 다음 4명에 대해 준비를 하였으나 두어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중상 환자 어른 둘과 아이 둘이었는데, 이송하는 도중 응급차 안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저녁에는 총상으로 인한 복부 손상과 더불어 허리뼈 골절이 동반된 환자가 기도 삽관을 한 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구급차가 싣고 온 것은 환자만이 아니었다. 그 날 공중 폭격으로 14명의 아이가 다쳐서 어느 병원에 머물고 있고, 4명 아이는 중상이라 이송이 준비되는 대로 바로 람사 병원으로 이송하겠다는 전갈을 함께 싣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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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왔다. 4명의 아이가 온다는 소식은 여전히 없다. 새벽에라도 도착할까 싶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응급콜 아닌 아침6시 알람소리에 잠에서 깬다. 오늘 밤도 그렇게 지나갔다. 아침햇살에 커튼과 창문을 열고 신선한 아침 공기와 즐겁게 재잘대는 아침 새들의 노래를 맞이하지만, 기분이 마냥 상쾌하지만은 않다. 기다렸던 4명의 아이의 안부가 궁금하다. 와야 할 환자가 오지 못한 밤이 그렇게 또 하루 지나갔다.


웹툰 [보통남자, 국경너머 생명을 살리다]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1625/epis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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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헌 | 국경없는의사회 의사

정형외과 전문의로, 2016년 요르단과 아이티에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 구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전부터 국제 구호활동에 관심이 많아 탄자니아를 비롯해 네팔, 필리핀 등지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해왔다. 올해 요르단에서 시리아 전쟁으로 인해 외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을 일기로 적었고, 그 일기는 김보통 작가의 웹툰으로 재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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