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바람둥이의 뇌는 정말 다를까

성실한 수컷 불스들에게 '바소프레신'이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더니, 평소에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춰버렸다. 게다가 산에 서식하는 불스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 수용체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불스들이 갑자기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몰두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카사노바의 바람기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포하고 있다.

  • 정재승
  • 입력 2017.01.31 12:15
  • 수정 2018.02.01 14:12
ⓒStockImages_AT via Getty Images

[정재승의 영혼 공작소] 플레이보이의 뇌과학

희대의 바람둥이로 알려진 카사노바의 자서전 〈불멸의 유혹〉(휴먼앤북스·2005)에 따르면, 그는 오랫동안 '섹스의 탐닉자'였다. 조반니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1725~98)는 자매와의 더블섹스로 첫 경험을 시작해, 19살 때 유부녀 루크레치아와 불륜관계를 맺게 된다. 36살의 카사노바는 한 아가씨를 유혹해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아가씨는 루크레치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딸! 이 사랑은 끔찍한 근친상간이었던 것이다. 옛 애인을 찾아 수녀원에 간 카사노바는 수녀를 유혹해 정사를 벌이기도 하고, 처형장 앞에서 애정 행각도 서슴지 않는 등 호색한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문학에 심취해 늘 책에 빠져 있었으며 법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학문에도 심취해 있었지만, 그럴수록 지적인 면모는 그를 더욱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카사노바와 함께 최고의 바람둥이로 손꼽히는 돈 후안 역시 문학에 조예가 깊고, 음악과 미술 등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중세 민간 전설에 처음 등장했던 이 바람둥이 귀족은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의 희곡으로 유명해졌는데, 여자를 유혹했다가 죽이는 엽기적인 행각을 거듭하다가 성직자에게 처형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평소 그의 보헤미안적인 풍모와 잔혹할 정도로 냉정한 성격은 여성들에게 '매혹' 그 자체였다.

아름답고 잔혹한 '양다리'의 달인들

카사노바나 돈 후안처럼 역사를 뒤흔든 바람둥이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엔 바람기가 농후한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은 종종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고(반드시 잘생기거나 예쁜 외모일 필요는 없다), 화술에 능하며, 쿨한 성격을 가졌고, 무엇보다 이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때론 지적이며, 유머가 풍부하고, 사소한 행동에서도 배려가 몸에 배어 있다.

이들은 종종 남의 애인을 가로채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애인이 있으면서도 다른 이성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하는 '양다리'의 달인들이다. 바람둥이들에겐 왜 여성들이 계속 꼬이고, 여성들은 왜 애인이 있는 바람둥이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일부일처제가 거의 없는 생태계에선 바람둥이가 흔한 존재다. 생물학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생태계에선 수컷의 10% 정도만이 겨우 암컷과 교미를 할 자격을 부여받는다. 다시 말해, 90%의 수컷은 평생 암컷과 단 한번도 교미를 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흔히 일부일처제가 우리의 성생활을 방해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 덕분에 대부분의 남성이 여성과 짝짓기를 할 자격을 얻는 셈이다. 일부일처제가 아니었다면, 이병헌, 정우성, 조인성 같은 매력적인 남성이 우리나라 여성들을 독차지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바람둥이임을 알고 있음에도 매력에 이끌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의 학자들은 그 이유를 생태계에서도 발견하려 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암컷에게 선호받는 수컷을 오히려 경쟁적으로 차지하려는 광경을 생태계에서는 쉽게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인도제도의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서식하는 관상용 열대어인 거피는 강물의 색깔에 따라 몸의 빛깔을 바꾼다. 암컷은 대개 밝은 오렌지 색깔을 지닌 수컷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몸 빛깔이 밝은 수컷일수록 암컷을 보호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다른 암컷이 덜 밝은 빛깔의 수컷을 선택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면, 덩달아서 그런 수컷을 짝으로 고르는 경향이 관찰됐다. 즉, 거피들은 다른 암컷들이 선호하는 수컷에 관심을 보이고 그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방 행동은 다른 암컷들의 판단을 활용해 자신에게 적합한 짝짓기 상대를 신속히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나름의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들에 따르면,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취향이 제각각이라서 이성을 고를 때 다른 동성의 선택 기준을 고려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도 거피처럼 남들이 선호하는 이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남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한다

예를 들어, 한 집단 안에서 인기 있는 사람은 그 집단 내 가장 능력 있는 이성이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인기가 있다'는 사실은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신호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간들도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믿는 것이다.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와 기꺼이 사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바람둥이는 절대 싫다'고 이성적으로는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이 유혹의 손길을 뻗치면 바로 뿌리치진 못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람둥이의 부도덕한 행위가 반복되는 것이다.

엄연히 일부일처제가 존재하고 바람을 피우는 행위는 부도덕한 일임에도, 인간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바람둥이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혹을 거부할 수 없는 플레이보이나 팜파탈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노력해서 배웠거나 길들여진 것일까?

타고난 성향도 있을 수 있다. 매력적인 외모와 성격, 그리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람기 성향까지 타고났다면, 그는 플레이보이나 팜파탈의 길로 들어설 확률이 높다. 덧붙여,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불륜을 일삼는 도덕불감증까지 걸려 있다면 바람둥이가 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북아메리카 중서부 대초원과 산간지방에 서식하는 들쥐 '불스'에 대한 실험은 이를 뒷받침한다.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불스는 평생 한 파트너하고만 짝짓기를 하며 직접 만든 둥지에서 새끼를 함께 돌보지만, 산에 사는 불스는 새끼를 낳아도 수컷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곧장 다른 암컷과의 짝짓기를 위해 떠난다.

미국 에머리대학 래리 영 박사팀이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성실한 수컷 불스들에게 '바소프레신'이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더니, 평소에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춰버렸다. 게다가 산에 서식하는 불스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 수용체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불스들이 갑자기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몰두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카사노바의 바람기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자연계에 이런 현상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존재가 당위를 설명할 수 없으며 당위가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즉 자연계에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며, 옳은 일만이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진실을 알고 싶은 학문적 관점에서 다양한 실마리를 검토하는 차원이라고만 언급해두고자 한다.

몇 년 전 한 방송사의 의뢰를 받아, 바람기가 다분한 사람들의 뇌를 찍어 이성에 대한 반응을 살핀 적이 있었다. 제작진과 우리 연구실에서는 평소 바람기가 많다고 고민하는 지원자 6명을 대상으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 실험을 실시했다. 결혼한 배우자나 사랑에 빠진 애인의 사진,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매력적인 이성의 사진을 차례로 보여주며 뇌 활성화 차이를 알아본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내를 볼 때에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던 쾌락의 중추가 처음 보는 이성의 사진이나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앞에서 마구 요동을 치는 것이다. 그들의 뇌에선 이성에게 호감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마구 분비됐다. 그들은 사진을 보고 난 뒤에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매력적인 이성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고. 그것은 거의 일종의 목표의식에 가까운 감정이었다고. 당신이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일 수 있다.

'노력파' 플레이보이들

플레이보이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다. 정신과 의사 파트릭 르무안은 자신의 매혹적인 저서 〈유혹의 심리학〉(북폴리오, 2005)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평생 노력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온갖 감각기관을 자극하며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때론 변신하고 때론 속임수를 쓰면서 일탈을 꿈꾼다. 예를 들어 주변에 남성이 끊이지 않는 여성은 추가적인 전략을 사용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면, '향기 전략' 같은 것 말이다. 후각을 자극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여성이 내뿜는 향기가 남성들을 유혹하는 데 생각보다 중요하다.

역사적인 일례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 아내 조제핀에게 보낸 편지들을 후대 역사학자들이 분석하다가 나폴레옹이 그 편지들을 쓰게 된 동기를 알게 돼 크게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적들과 전쟁을 치르느라 몇 달 동안 아내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용맹하고 혈기왕성한 나폴레옹은 요새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에게 종종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제 두 주 후면 도착할 테니 몸을 씻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명령을 전하기 위해서! 한번 상상해보시라, '적들을 향해 전진!'을 외치던 장수가 요새로 돌아와 씻지 말고 기다리라는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을. '암컷의 성적 향기는 남성에겐 거부할 수 없는 최면적인 매혹'이라는 프로이트의 표현대로, 나폴레옹도 죽음의 전장에서 조제핀의 향기가 가장 그리웠던 모양이다.

바람둥이는 원래 타고난 것인지, 스스로 학습하고 터득한 것인지에 각별히 관심을 두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적 특징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의 기원을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근사한 답을 가지고 있진 못하다.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이성을 끄는 매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략적으로도 매력적인 행동들을 학습해 적용하더라는 것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카사노바의 자서전 〈불멸의 유혹〉에 따르면, 카사노바는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여성에게 자신이 매우 사랑받고 있으며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저 여성을 (매번!)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여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일깨워주기만 하면, 그들은 놀랍게도 실제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 사랑은 여성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바람둥이 #뇌 #정재승 #과학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