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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밥'을 원하는 이들이 대선주자 안희정 님에게 묻습니다

지난 주말 안희정 충남지사님께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출마선언문을 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국민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더군요. 이 하나의 문장을 앞에 두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공짜 밥'이라는 낙인의 이름이 붙어있을지라도 살기 위해 그것을 원했던 사람들, 그러나 매몰차게 국가로부터 거절당했던 사람들.

  • 비마이너
  • 입력 2017.01.25 05:53
  • 수정 2018.01.26 14:12
ⓒ뉴스1

신자유주의 복지개혁 담론 반복하는 안희정의 실망스런 복지인식

얼마 전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봤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다니엘이 질병수당을 받으려 하는데 조사원은 '모자는 혼자서 쓸 수 있냐', '전화기 버튼은 누를 수 있냐', '배변 장애는 없냐'는 엉뚱한 질문만 쏟아냅니다. 다니엘이 '나는 심장질환 때문에 추락사 할 뻔했다. 놀고 싶어서 쉬고 있는 게 아니'라는데도 조사원은 묻는 질문에만 대답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득 될게 없다며 엄포를 놓습니다. 영화 내내 다니엘은 이렇게 몇 푼의 수당을 받기 위해 모욕과 멸시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영화에는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케이티라는 여성도 등장합니다. 런던에서 집주인에게 쫓겨나 노숙자 쉼터를 전전하다가 겨우 타지에서 집을 얻어 이사를 왔지만, 생계비가 막막합니다. 복지 지원금을 받으러 관청을 찾아왔지만 처음 온 지역의 지리를 몰라 조금 지각했다는 이유로 40% 지원금 제재 대상에 오르게 됩니다. 전기세를 낼 수도 없을 정도로 궁지로 몰린 케이티는 결국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훔치고, 너무 배가 고파 식료품 지원소에서 몰래 통조림을 까 먹어야 할 정도로 비참해집니다.

높으신 관청의 공무원과 위정자들이 좋아하는 말대로, '공짜 밥'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국가가 거저 주는 밥을 먹으면서도 일하기 싫어하고 놀기만 한다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조금만 무리를 해도 생명에 위협이 올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고, 다른 한 사람은 당장 아이들 밥 해 먹일 식재료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국가가 돌려 준 것은 '모욕'과 '멸시'였습니다. 그들이 '공짜 밥'이라 이름 붙인 '복지'를 원했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생활고를 비관한 이들의 자살 사건이 들려오고, 부모가 아이를 죽이고 자신도 따라 죽는 참극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구조신호에 대한 국가의 일관된 무응답이 결국 가난한 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습니다.

안희정 충남지사 ⓒ충남도청

지난 주말 안희정 충남지사님께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출마선언문을 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국민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더군요. 이 하나의 문장을 앞에 두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공짜 밥'이라는 낙인의 이름이 붙어있을지라도 살기 위해 그것을 원했던 사람들, 그러나 매몰차게 국가로부터 거절당했던 사람들.

인공혈관 교체 수술을 받고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상태였으나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근로능력평가에서 조건부 수급자로 판정받아 강제로 노동시장에 떠밀려 2014년 8월 결국 사망한 故최인기 씨. 혼자서는 거동이 힘들 정도로 장애가 심했지만, 장애등급심사에서 3급 판정을 받아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결국 2014년 4월 홀로 화마에 목숨을 잃은 故송국현 씨. 국가는 최인기 씨에게는 '근로능력이 있다'고 했고, 송국현 씨에게는 '혼자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판정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겐 '공짜 밥'이 제공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안희정 지사님은 '(국민은) 근로능력을 잃었을 때 인간적 품위를 지켜주는 나라를 원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어 '성실한 근로가 배신당하거나 노동의 가치가 억울하게 착취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고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일한 만큼 공평한 대가를 받고, 늙고 병들고 장애를 입게 되어 일할 수 없을 때에는 국가가 인간다운 삶을 지켜주는 나라가 우리가 원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문장 사이에 엄청난 간극과 공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두 문장은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이 천명한 원칙, 즉 '노동시장에서의 근로가 우선이고 그것이 불가능할 때에만 국가가 지원한다. 그리고 국가지원을 받는 사람도 근로가능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근로능력 유무의 판정 권한은 국가가 쥐고 있고, 증명의 의무는 가난한 개인에게 떠맡겨 졌습니다. 국가가 이 두 문장 사이에 파놓은 함정에 다니엘과 케이티가 빠졌고, 최인기와 송국현이 빠져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안희정 지사님은 또 '타이타닉'을 언급하셨더군요. 난파된 타이타닉호에서 빠져나갈 때처럼 '노인, 아동, 장애인, 여성, 청년과 같이 난파선에서 구명보트를 타는 순서'를 정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최인기와 송국현의 순서는 몇 번째 입니까? 섣불리 첫 번째라고 답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국가로부터 거절당할 때에는 언제나 '당신들보다 더 급한 사람들에게 지원이 먼저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구명보트 수는 적은데 나보다 먼저 타야 할 사람이 있다는 말에 언제나 포기를 강요당해 왔습니다. 결국 '구명보트를 타는 순서'가 잘못됐던 게 아니라, 구명보트 자체가 너무 적은 게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 좁은 구명보트에 타기 위해 가난한 사람끼리 아귀다툼을 하게 만드는 게 지금까지 이 나라의 복지정책이었습니다.

안희정 지사님, 왜 구명보트를 늘리겠다는 말씀은 못하십니까? 아니, 안하시는 겁니까? 구명보트를 너무 늘리면 자기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도 타게 될 거라 생각하셔서 그런 것입니까? 그들은 그저 '공짜 밥' 원하는 복지 도둑들이어서요? 하지만 현재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제도라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에 몰린 사람만 4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구명보트가 없어서 무너지기 직전의 갑판에서 떨고 있는 사람 숫자가 이 정도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에게 '열심히 일하라'는 이야기 말고 어떤 비전을 제시하실 수 있습니까?

무상급식이 복지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것처럼 우리에겐 모욕과 멸시가 양념처럼 비벼진 밥이 아닌, 존엄과 당당함을 가지고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자살율 1위 국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대정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희정 지사님의 발언은 무상급식 논란 당시 '학교에 밥 얻어 먹으러 오냐'고 조롱하던 보수세력의 발언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다시 안희정 지사님께 묻습니다. 당신이 계승하겠다는 노무현 정신, 그 속에 복지는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저들 보수세력이 동정과 모욕을 섞어 던져주는 적선과 무엇이 다릅니까? 빠른 시일 내에 답을 듣고 싶습니다.

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 이 글은 비마이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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