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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의 독립? 뭐라?

사법권과 재판의 독립은 외압으로부터의 독립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재판은 법원 조직 내부로부터의 부당한 간섭과 압력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지금, 사법권이나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법원 자신이다. 그간 법원은 어떠했는가? 법원은 그 수뇌부나 내부에 대해 쓴소리를 한 법관과 법원공무원에게 인사권과 징계권을 남용해 왔다. 임지와 보직에 있어서의 불이익, 부당하게 낮은 평점, 과도한 징계를 함으로써, 다른 법관이나 법원공무원들로 하여금 고위층의 눈치를 살피도록 순치시켜 오지 않았던가?

  • 이정렬
  • 입력 2017.01.24 05:28
  • 수정 2018.01.25 14:12
ⓒ연합뉴스

박근혜 특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었다. 이 기각 결정을 두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전형이라는 당연한 비판이 크게 일고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건전한 비판을 넘어 과도한 비난, 신상 털기 등으로 해당 판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부당한 비난과 부담을 가하는 것은, 재판의 독립뿐 아니라 법치주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고 한다.

법원의 유감 표시는 얼핏 타당해 보인다. 건전한 비판이 아닌 비난이나 신상 털기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법원의 의사표시는 그 주체의 면에서나 내용에 있어서 지극히 잘못되어 있다.

첫째, 사법권과 재판의 독립은 외압으로부터의 독립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재판은 법원 조직 내부로부터의 부당한 간섭과 압력으로부터도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지금, 사법권이나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법원 자신이다. 그간 법원은 어떠했는가? 법원은 그 수뇌부나 내부에 대해 쓴소리를 한 법관과 법원공무원에게 인사권과 징계권을 남용해 왔다. 임지와 보직에 있어서의 불이익, 부당하게 낮은 평점, 과도한 징계를 함으로써, 다른 법관이나 법원공무원들로 하여금 고위층의 눈치를 살피도록 순치시켜 오지 않았던가? 심지어 소위 보수언론이 소신 있는 행동을 하는 내부자들을 음해할 때 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음해행위를 방조하거나 부추기기까지 하지 아니하였던가? 그랬던 법원이, 마치 자신들은 사법권과 재판의 독립을 중요하게 여기는 양 처신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둘째, 사법권이나 재판은 왜 독립되어야 하는가? 우리 헌법이 목적하고 있는 국민주권주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두터운 보호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사법권·재판의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중요한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 주권자를 배신한 헌법위기의 상황이다. 금권이 인권을 농락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땅에 떨어져 버렸다. 이런 국난을 극복하고자 연인원 천만명의 시민이 광장에 나왔다. 이런 중차대한 때에 주권의 일부인 사법권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법원조차 주권자의 명령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정을 하고야 말았다. 이런 과오를 범한 법원으로서는 주인의 요구를 올바로 받들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더 나아가 국민주권주의와 인권보호의 임무를 어떻게 하면 충실하게 수행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즉, 목표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깨닫고 매진하여야 할 때이지, 그 수단에 불과한 재판의 독립 침해 운운할 때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본말을 전도시킨 행위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고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다. 주권자가 법원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은 아직까지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법원 또한 국민의 봉사자일 뿐이다. 법원도 국민 위에 군림하는 기관이 아니다. 이것을 망각하는 순간, 현명한 주권자는 법원에 대해 그나마 남아 있던 애정도 거둘 것이다. 국민은 법원에 위임해 두었던 사법권을 회수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 없다.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해고당하지 않는 길은 오로지 법원 자신에게 달려 있다. 시간과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제2항을 명심하라는 말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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