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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모피가 아니라 '비건 패션'

많은 사람이 모피는 잔혹하게 여기지만 패딩 점퍼를 채우는 오리나 거위 털, 깃이나 모자 언저리를 장식하는 라쿤이나 토끼 털 등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라쿤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고, 거위는 상처가 벌어져 피가 나는 채로 가장 여리고 고통스러운 부분의 깃털을 뽑힌다. 거위 한 마리에서 단지 60g의 미세한 솜털이 나오므로, 거위털 이불에는 말 그대로 솜털처럼 많은 거위의 고통이 들어 있는 셈이다. 전 세계 구스다운 제품을 채우는 거위털의 80%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akhpark via Getty Images

글 고금숙 _ 만화 홀링

소싯적 꿈이 패션 잡지 에디터였다. 요즘 패션 잡지는 달마다 '친환경 머시기' 기사를 실을 정도로 환경 문제에 적극적이다. 바야흐로 젊고 교양 있는 사람은 "내가 산 게 아니라 우리 엄마가 물려주신 거야. 있는데 어떡해"라는 변명 없이는 모피 옷을 입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충분히 부끄러워해도 된다. 세계적으로 연간 5천만 마리에 가까운 동물이 모피 옷 제작을 위해 도살당한다. 여우털 코트 한 벌에는 11~45마리, 토끼털 코트에는 30마리, 밍크코트에는 55~200마리의 동물이 필요하며 이들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등 말 못 할 고통을 당한다.

산 생명이 으스러지는 고통에 대자면

막돼먹었지만 매력적인 진짜 모피의 싸구려 짝퉁 취급을 받던 인조 모피가 '핫하게' 재탄생하고 있다. 없어 보이는 '인조'나 '가짜'라는 이름을 떼고 '비건 패션', '에코 퍼' 등 있어 보이는 이름으로 불린다. 비건은 육고기와 생선은 물론 우유나 달걀도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일컫는다. 최근 세계적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를 비롯해 글로벌 스파 브랜드들까지 합성섬유로 만든 비건 패션을 일제히 선보이고, 진짜 모피만큼이나 비싼 인조 모피 의류 브랜드에 패셔니스타들이 몰려든다.

일상을 채우던 철, 나무, 짚 등의 천연 소재를 합성수지가 대체하는 건 철 지난 산업화의 유산 아니었던가. 합성수지의 주재료인 화석연료는 에너지원 이외에도 칫솔, 인공관절, 섬유, 비닐봉지, 원단, 단열재, 페인트, 화장품, 매트리스, 태양광 패널 등 일상의 거의 모든 곳에 쓰인다. 오히려 비건 패션의 유행은 모피의 아우라에 짓눌려 다른 분야에 비해 한참 뒤늦게 도래한 것이리라. 그러나 알다시피 대부분의 환경호르몬 물질은 화석연료로 생산한 일부 플라스틱에서 나온다. 그리고 아토피, 알레르기, 천식 등 면역 체계 질환과 불임, 생리통, 비만, 당뇨, 여성암 등의 호르몬 관련 질환은 환경호르몬 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면역력이 약하거나 민감한 사람들이 까다롭다는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비싸고 불편한 천연 소재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유아처럼 건강 민감 계층이나 화학물질에 민감한 사람들은 천연 소재를 고집하자. 그 외에 건강한 성인이라면 되도록 면, 마 등 천연 소재의 옷을 고르되 수면 양말, 고어텍스 등 합성 소재를 쓴 기능성 의류나 비건 패션은 꼭 필요한 만큼만 장만해도 좋겠다. 나도 영화 〈캐롤〉(2015)에서 우아하게 모피 옷을 걸친 여주인공에 '삘' 받아 비건 모피 옷을 사고야 말았다. 대신 안 입는 옷을 정리하는 선에서 타협을 했다. 산 생명이 으스러지는 고통에 대자면 폴리에스테르나 폴리우레탄 등의 합성섬유를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환경으로 패션을 완성하자

많은 사람이 모피는 잔혹하게 여기지만 패딩 점퍼를 채우는 오리나 거위 털, 깃이나 모자 언저리를 장식하는 라쿤이나 토끼 털 등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라쿤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고, 거위는 상처가 벌어져 피가 나는 채로 가장 여리고 고통스러운 부분의 깃털을 뽑힌다. 거위 한 마리에서 단지 60g의 미세한 솜털이 나오므로, 거위털 이불에는 말 그대로 솜털처럼 많은 거위의 고통이 들어 있는 셈이다. 전 세계 구스다운 제품을 채우는 거위털의 80%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올해 새 이불을 장만했다. 인도의 유기농 목화솜을 공정무역으로 들여와 국내에서 생산한 이불인데, 우직한 무게감이 너무나 포근하다. 결혼이 대수랴. 나는 스스로에게 혼수를 선물한 여자다! 목화솜 이불을 덮고 누워 친환경 패션을 생각한다. 옷장의 패션아이템을 최대한 잘 활용할 것, 새 물건은 지구와 생태계에 해를 덜 끼치는 것으로 선택할 것, 새것이 생기면 기존 것은 처분해 소유한 물건을 늘리지 말 것, 재활용 중고 시장을 공유 옷장처럼 활용해 기존 옷은 내놓고 새 옷을 '득템'할 것. 그리고 최소한 모피, 거위털, 오리털, 라쿤 털 등에는 안녕을 고하되 이미 지닌 물건은 애도하는 마음으로 알뜰히 사용할 것.

이러고도 패셔니스타가 될 수 있느냐고? 인도의 한 디자이너는 1년 동안 미니 블랙원피스 한 벌에 기증받은 옷과 소품만으로 365일 다른 '블링블링' 스타일을 선보였다. 패셔니스타를 완성하는 건 옷의 가짓수가 아니라 센스라는 거, 아시죠?

나의 친환경 패션 기준

유기농, 논지엠오(non GMO), 공정무역 식물성 소재 > 식물성 소재 또는 동물복지 농장의 동물성 소재 > 합성섬유(되도록 중고 물품으로 구한다) > 동물성 소재(생산과정에서 동물의 고통이 극심하고 동물을 죽게 하는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

고금숙 님은 도시에서 '에코에코'하게 살아가기를 꿈꾸는 철딱서니 없는 비혼입니다.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에서 일하며, 《망원동 에코하우스》를 펴냈습니다.

홀링 님은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카스테라 속 외딴방(holling60.blog.me)에 그림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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