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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도끼와 요강에도 디자인이 숨어 있다

박물관에는 오래 된 것들이 모여 있다. 관람객은 신기함을 느낀다. ‘그 오래 전에 벌써 이런 것을 사용했다니!’ 또는 ‘이렇게 불편한 것을 사용하며 어떻게 생활했을까?’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들은 대단한 생명력을 지닌 셈이다.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멀쩡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으니 말이다. 오래 된 것이라도 꼭 낡고 쓸모 없는 것만은 아니다. 그 속에서 멋진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래된 디자인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1. 주먹도끼는 완결된 디자인이다.

“이런 돌멩이로 만든 도구 중에서 인류 최초의 도구로 알려진 것이 바로 주먹도끼다. 주먹도끼는 주먹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한 손에 쥘 수 있는 정도의 크기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가 한 뼘 정도 되는 끝이 뾰족한 이 돌덩어리는 구석기 유적지에서 출토된 여러 주먹도끼 중에서도 그 모습이 단연 수려하고 당당하다. …. 실제로 어떻게 사용했을지는 이 돌도끼를 들고 다녔던 구석기인만이 알겠지만, 형태로 보아 다용도 연장으로 쓰였으리라 짐작된다. …. 그런데 이 주먹도끼의 전체적인 모양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세계에서 가장 큰, ‘태양의 눈물’이라 불리는 다이아몬드의 이미지가 겹쳐 떠오른다.”(책 ‘오래된 디자인’, 박현택 저)

저자는 주먹도끼를 “오로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데 적합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주먹도끼 용도에 맞게 그 형태가 변화하면서 완결된 모습을 우리가 보고 있다는 의미다. 그와 동시에 저자는 “이 오래된 돌멩이를 기능적 정합성에 충실한 모던의 원형인 ‘오래된 모던(old modern)’이라 부르고 싶다.”고 의견을 내 놓는다. 역사가 기록되기 훨씬 전의 주먹도끼 디자인에 모던이 숨겨져 있다.

2. 백제 시대 요강도 예술 작품이다.

“부여 군수리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의 남성용 요강은 입을 크게 벌리고 먼 곳을 바라보는 호랑이 모습을 하고 있어서 ‘호랑이 새끼(虎子)’라는 이름이 붙었다. …. 이놈의 아가리에 대고 오줌을 누면 호랑이가 느끼는 모멸감이야 오죽할까. 그러나 정작 그 사람은 얼마나 시원하고 통쾌할지 상상만 해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 요강은 결코 예술가가 만든 작품이 아니다. 당연히 예술이고 싶어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술을 극구 부정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생활의 한 도구가 경지에 이른 것뿐이다. 그러한 단계를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른다. …. 화려하든 소박하든 간에 그 대상이 나의 삶을 체감할 수 있게 해줄 때라야 더 친근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뒤샹의 ‘변기로 만든 샘’보다는 아무개의 ‘요강으로 만든 호랑이 새끼’에 더 정이 간다.”(책 ‘오래된 디자인’, 박현택 저)

저자는 “삶을 위한 예술은 있어도 예술을 위한 삶은 없다”고 말한다. 삼국시대 백제의 요강은 아무런 인공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삶과 상당히 밀접했던 제품이기 때문에 오히려 예술적이다. 인공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요강을 사용했을 백제 사람들을 상상하며 웃음을 지을 수도 있고, 볼 일을 보고 난 후에 어떻게 처리를 했을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글 내용 중 백제 시대 요강과 개념미술의 선구로 그 유명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Fountaine)과의 비교는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3. 계영배는 술을 70%만 따를 수 있다.

“’가득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의 계영배는 ‘과음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의 절주배(節酒杯)로도 불리고 있듯이,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것을 술을 따르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계영배는 가득 채우면 술이 오간 데 없이 사라져버리고 오직 7할 정도만 채워야 따른 술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묘한 잔이다. 7할 정도라! 여기에서도 공교롭게 황금비율이 적용된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장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 본래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제를 올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환공이 생전에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늘 곁에 두고 사용했던 의기를 보았다고 한다.” (책 ‘오래된 디자인’, 박현택 저)

저자는 한 도자기 회사로부터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자 탁잔(托盞, 받침대가 있는 잔)에 관심이 있고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 보고 싶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이때 계영배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대중적으로 계영배가 유명해진 것은 최인호의 장편소설 ‘상도’를 통해서다. 삶을 지혜 중 하나로 소설에서는 사용된다. 즉 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의미다. 계영배의 역사는 중국 고대까지 올라가며, 지금까지 우리 삶에도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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