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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스토리] 6. 나의 무지를 일깨워 준 게이 아들

내 자신에게 혹독할 만큼 엄격하게 살아온 내가 엄청난 감정적 교란과 시간을 팔아 겨우 하나 마음에 담은 것이 '성정체성에 대한 무지'였다는 것이 너무 허망하고 억울하고 부끄러웠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사랑하는 내 자식인데 몰라서 그랬었다는 것이 도저히 용서되지 않았다. 평소 나는 강단에서 '당연시하며 터부시하는 것'을 학문하는 자가 항상 스스로 경계해야 하는 태도라고 하였는데, 부끄럽게도 내 자신이 이분법적 성정체성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터부시해 왔었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Nastco via Getty Images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커밍아웃 스토리'를 연재합니다. '커밍아웃 스토리'에는 성소수자 당사자와 성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들의 커밍아웃 관련 이야기들이 담깁니다. 당사자가 이야기하는 커밍아웃을 준비한 과정과 커밍아웃할 때의 감정, 그리고 그걸 받아들일 때 부모의 심정 변화와 상황들... 고민과 애환 그리고 감동이 가득한 우리들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커밍아웃 스토리' 연재의 다른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성소수자 부모모임 블로그 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글 | 산지기(성소수자 부모모임)

얼마 전 성수수자 부모모임 대표님으로부터 게이 아들의 커밍아웃과 관련해서 성소수자 아버지로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글을 부탁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작년부터 갑자기 맡은 일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지만, 솔직하게는 이런 종류의 글을 쓰기 싫었기에 회장님께 답장을 미뤘었다. 결코 귀찮거나 게이 아들을 둔 아버지임을 숨기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성소수자임을 알게 된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서 성소수자와 가족들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에, 과연 내 글이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에 부합할까하는 고민이 깊어서였다.

무지의 오류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외아들의 힘든 성장기를 거쳐 세 자녀 가정의 가장이 되고, 어릴 때부터의 꿈인 과학자로 살아가는, 어떻게 보면 꽤 성공한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가 옳다고 믿는, 약간은 자긍심과 교만으로 세상을 살던 나에게 6년 전 알게 된 막내의 성정체성은 내 삶의 의미와 가치 모든 것을 바꾸고 부끄럽게 만들어버렸다.

자녀의 커밍아웃을 경험한 대부분의 부모들이 들려주는 성소수자 본인과 가족들이 겪은 충격과 분노, 갈등과 원망, 자책과 반성,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우리 가족 역시 처절하게 겪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도 겪고 있다. 내 자신에게 혹독할 만큼 엄격하게 살아온 내가 엄청난 감정적 교란과 시간을 팔아 겨우 하나 마음에 담은 것이 '성정체성에 대한 무지'였다는 것이 너무 허망하고 억울하고 부끄러웠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사랑하는 내 자식인데 몰라서 그랬었다는 것이 도저히 용서되지 않았다.

편견의 오류

평소 나는 강단에서 '당연시하며 터부시하는 것'을 학문하는 자가 항상 스스로 경계해야 하는 태도라고 하였는데, 부끄럽게도 내 자신이 이분법적 성정체성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터부시해 왔었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지키려 했고 믿었던 가치가 얼마나 허황되고 교만한 것이었는지, 그 때문에 내 새끼가 얼마나 상처받고 아팠을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태어났고 다시 공부하고 다시 성장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만난 많은 부모님들이 다 같이 '내 자식이 날 철들게 하고 성장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말씀들도 다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세상의 금기를 깨고 금단의 신세계를 편견 없이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아들은 이미 그곳에서 그 세상은 결코 이 세상과 다르거나 숨겨진 이면이 아닌 우리 모두가 같이 숨 쉬며 살아가는 같은 터전이며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애비가 무지한 교만에 눈멀어 있는 동안 아들은 아픔을 이기고 현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아들을 존경한다.

다수의 오류

무지가 낳은 편견은 어떤 자기 검열 과정도 거치지 않고 개인적 나태함과 교만을 먹이 삼아 무성생식하는 존재이다.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세상에 만연한 편견은 이미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며 아마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이분법적 성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다수의 가치와 문화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은 태생적으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무리 짓기는 필수 수단이 되어왔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지식과 가치를 공유하는 무리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무리 집단이 커지면서 집단의 효율성을 위한 관리조직이 구성되고 이들이 권력 집단이 되면서 대중의 통제수단으로 지식정보를 이용해 왔다고 얘기하고 있다. 지식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게 된 무지한 대중은 스스로 다양하고 복잡한 논리적 판단보다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가 편하게 되었고, 또 권력집단의 통치도 훨씬 수월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지금까지 존속되어왔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소수집단의 피해는 '다수결원칙'으로 대변되는 최선이 아닌 차선의 집단선택으로 묵인되었고, 이기적 집단사고는 편견을 도구로 더 단단해졌다.

다름이 다르지 않는 세상

성소수자 부모라면 누구나 우리 아이가 편견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또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그게 부모니까.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결성 이후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를 알리고 편견을 바로 잡기 위해 많은 노력과 활동을 하였고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보여 왔다. 앞으로도 더욱 발전적인 노력이 계속 될 것이라 믿는다.

이쯤에서 성소수자 본인과 가족, 우리 자신을 스스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성정체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저들 다수의 편견과 차별에 오히려 우리가 잘 조련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 '소수자=약자' 라는 등식이 공식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소수자의 정체성이 자연스러운 섭리이듯 우리 아이들도 우리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며 누리고 지켜야 하는데, 우리 자신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생각이 든다. 다수자가 있기에 소수자가 있는 것이고 다 같은 우리사회의 축이며 구성원이다.

더 이상 우리가 만든 울타리 안에 머물지 말고 거침없이 세상으로 나가자!

그대 존재 그 자체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니까.

2016년 12월

게이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산지기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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