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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와 타자기로 과학을 이야기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글쓰기

스티븐 제이 굴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과학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두 가지 면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하나는 기존 다윈의 ‘점진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는 진화론’에 이의를 제기했다. 진화가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는 ‘단속평형론’을 주장하였다. 특히 진화가 진보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복잡성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도 비판했다. 또 다른 하나는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 선 점이다. 과학 외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해박했기 때문에 대중적인 글을 쓰는데 더욱 적합했다. 전체 22권의 저서, 101편의 서평, 497편의 과학 논문과 300여 편의 자연학 에세이를 남겼다. 그의 책 중 하나인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를 통해 뛰어난 과학자의 맛깔 나는 글쓰기에 대해 맛보도록 하자.

1. 사람들은 진화 이야기보다 창조 신화에 끌린다.

“진화는 지속적인 변화지만, 그렇다고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점진적인 변이도 아니다. 어떤 연속체든 다른 곳보다 더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는 법이다. 이 변화가 지속되던 연속체의 가장 두드러진 지점에 해당하는 인물로는 흔히 알렉산더 조이 카트라이트가 지목되었다. 그는 맨해튼 남부에서 경기를 시작한 뉴욕 팀의 지도자로 호보컨(쾌속 페리로 허드슨 강을 건너면 바로 코앞이다)에 몇 개의 탈의실과 경기장을 임대했고, 마침내 1845년에 일련의 규칙을 만들었다. 이때 만들어진 규칙을 적용한 경기는 훗날 ‘뉴욕 게임’이라고 불렸다. …. 뉴욕 게임은 이 연속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야구의 기원 신화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다. 카트라이트의 규칙은 여러 형태의 타운 볼을 따른 것이었다. …. 과학자들은 다윈과 생물학적 진화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탄하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어떤 식으로든 진화적 설명에 익숙한 사람이 너무 적다. 나는 사람들이 이러한 영역에 대해 왜 그처럼 모호한 생각을 가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이유는 진화 이야기보다 창조 신화에 끌기는 사회적, 정신적 유혹에서 기인하는 것이 분명하다.” (책 ‘힘내라 브론토사우르스’, 스티븐 제이 굴드 저)

사람들은 창조 신화에 솔깃해 한다. 대단하다고 여길만한 대상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연속적으로 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탄생 지점이 확실하지 않은 것도 상당히 많다. 저자는 야구를 예로 든다. 창조 신화가 있지만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야구가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되어 오는 도중에 여러 변곡점과 중요한 계기가 있었지만 그것이 출발점은 아니었다.

2. 각종 심한 굴곡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

“쿼티에 아무런 뜻도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QWERTY를 타이핑하는 즐거움과 간편한 느낌을 제외하면 말이다). 70퍼센트 이상의 영어 단어는 DHIATENSOR에 해당하는 문자로 타이핑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철자들이 가장 접근성이 좋은 둘째 줄, 즉 홈 로(home row, 양손 네 손가락의 기본 위치인 ASDF와 JKL;의 글쇠가 있는 열. – 옮긴이)에 와야 한다. 실제로 이 문자들은 일찍이 1893년에 도입되었지만 쿼티에 밀려 패배한 경쟁자들이었다. …. 어쨌든, 쿼티라는 강압적인 장치는 이제 결정적인 동력을 얻었고 20세기 초에 널리 보급되었다. 쿼티를 이용한 자판 외워 치기가 미국 타자 학교에서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경쟁 업체들은 (특히 빠른 속도로 팽창하던 시장에서) 사람들이 습관을 바꿀 수 있는 것보다 쉽게 자신들의 기계를 쿼티에 적응시켰다. 그 결과 타자 산업은 잘못된 표준을 수립했다. …. 그러나 이미 놓친 최선의 기회를 아쉬워할 까닭이 무엇인가? 역사는 늘 이래왔다. …. 아프리카 정글의 일부가 말라서 초원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나무 위의 원숭이로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약 6천만 년 전에 어떤 혜성들이 지구에 충돌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공룡들이 육지를 지배하고 모든 포유류는 어두운 귀퉁이를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는 쥐만 한 크기의 생물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버제스 셰일의 유일한 척삭동물이었던 피카이아Pikaia가 캄브리아기 대폭발 이후에 신체 설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대규모 선별 과정에서 살아남지 못했다면, 포유류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을 수 있다. …. 이처럼 중요한 가능성에 비하면, 쿼티의 사례는 역사의 보상에 비해 얼마 안 되는 비용을 치른 것에 불과할 것이다. 만약 역사가 그토록 심한 굴곡을 갖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기 존재하면서 이런 기쁨을 향유할 수 없을 것이다.” (책 ‘힘내라 브론토사우르스’, 스티븐 제이 굴드 저)

쿼티 자판은 영자 타이핑에 편리하게 구성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쿼티 자판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진화에 대한 설명을 자연스럽게 꺼낸다. 저자는 진화란 무언가 천천히 바뀌어가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한다. 돌발적인 사건으로 어느 날 갑자기 변화가 일어나며 진화가 일어난다. 정글 일부가 말라붙거나, 거대한 혜성이 충돌하는 것 모두 갑작스런 변화들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다.

3. 키위 새의 알은 비슷한 크기 새의 알보다 훨씬 크다.

“조류의 알과 몸통 크기의 일반적인 관계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키위와 비슷한 크기의 보통 새들은 55~100그램의 알을 낳는다(암탉이 대략 이 정도의 달걀을 낳는다). 갈색 키위의 알은 400~435그램이다. 다시 말해, 이 정도의 알을 낳으려면 몸무게가 13킬로그램은 되어야 하지만 갈색 키위는 6분의 1에 불과하다. 여기서 당연히 ‘왜’라는 물음이 제기된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런 유의 수수께끼에 전통적인 접근 방식을 취한다. 그들은 문제가 되는 특성으로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 따져본 다음 자연선택이 작용해서 이러한 이득을 동물의 생활 방식 속에 구축했다고 좋아한다. …. 나는 키위가 큰 알 덕분에 생존에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렇지만 특대형 알이 이러한 이득의 측면에서 자연선택으로 만들어졌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내 생각으로, 그런 가정(현재의 기능에서 그 기원의 이유로 너무도 쉽게 미끄러지는)은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심각하고 널리 퍼진 오류다. 이처럼 잘못된 추론이 진화의 경로에 대한 수백 가지나 되는 상투적인 이야기들을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 기린의 목은 아카시아 꼭대기에 있는 즙이 많은 잎을 먹기 위해 길어졌을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로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어쩌면 먹이 섭취를 위한 적응과 전혀 무관했을 수 있다). 그런 다음 기린이, 새로운 높이에 도달한 덕분에 맛있는 잎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책 ‘힘내라 브론토사우르스’, 스티븐 제이 굴드 저)

저자는 진화 설명이 현재의 모습을 억지로 짜맞추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볼테르의 글을 인용한다. “모든 것은 최선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의 코는 안경을 걸기 위해 있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안경을 쓰고 있다. 다리는 분명 승마용 바지를 위해 고안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바지를 입는다.” 그리고 키위의 알이 큰 이유에 대해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키위는 그보다 컸던 새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화 과정에서 통상적인 비례 축소에 따라 줄어들었을 뿐입니다.” 큰 알이라서 오늘날 생존에 무언가 유리하다는 자연선택적 설명과는 확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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