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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정치 모리배

서너 달 전까지 집권 여당에서 온갖 '올바르지 못한' 짓거리를 벌이던 사람들이 일부 몰려나와 갑자기 '바른' 정당을 만들었단다. 물론 그들만의 이야기다. 집권당으로 있을 때 저질렀던 짓거리에 대해 깊은 반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시라. 이들이 노동자와 농민, 비정규직, 청년실업자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평화통일에 대해,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고 진실을 찾는 일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던가를.

  • 강명관
  • 입력 2017.01.13 12:44
  • 수정 2018.01.14 14:12
ⓒ뉴스1

닭은 먹이를 찾느라고 이리저리 쏘다니고 다투기도 한다. 때로는 밥상에도 올라가고 의자에도 올라간다. 지팡이와 신발에 똥을 갈기기도 한다. 훠이 하고 쫓아내지만 그때뿐이다. 물러가는 척하다가 다시 또 몰려든다. 화가 나서 막대기를 휘둘러 또 멀리 쫓는다. 이따금 휘두르는 막대기에 던지는 물건에 맞는 놈도 있지만 아픔은 잠깐일 뿐이다. 닭들은 언제나 모이를 찾아 다시 몰려든다.

'닭을 길러보고 당쟁의 이치를 알다(祝鷄知偏黨)'(〈성호사설〉)란 성호 이익(李瀷)이 쓴 글의 서두다. 무엇보다 제목에 '당쟁의 이치'란 말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성호는 아무리 쫓아도 이내 몰려드는 닭을 보고 죽음을 불사하고 권력을 향해 몰려드는 인간의 행태를 떠올렸던 것이다.

당쟁은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속내는 관직을 노리고 벌이는 짓이다. 관직을 움켜쥐기 위해 온갖 수모와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귀양을 가기도 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나기도 한다. 성호는 개구멍을 뚫고 수갑을 팔아서라도 벼슬을 차지하려는 이 비루한 인간들이 막대기에 맞으면서도 모이를 향해 달려드는 닭과 같다고 말한다.

새해 벽두에 닭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올해가 정유년 닭의 해이고 또 요즘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가 성호가 말한 닭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서너 달 전까지 집권 여당에서 온갖 '올바르지 못한' 짓거리를 벌이던 사람들이 일부 몰려나와 갑자기 '바른' 정당을 만들었단다. 물론 그들만의 이야기다. 집권당으로 있을 때 저질렀던 짓거리에 대해 깊은 반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시라. 이들이 노동자와 농민, 비정규직, 청년실업자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평화통일에 대해,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고 진실을 찾는 일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던가를.

더 가관인 것은 집권당의 남은 자들이다. 그들은 또 패를 나누어 눈을 부라리며 서로 네가 나가라고 드잡이가 한창이다. 이들뿐 아니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산속에 틀어박혔다가 홀연히 나타난 사람도 있다. 그는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재는 중이다. 유엔의 수장이었던 사람 역시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면서 자신이 살아온 처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한 몸을 불사르겠다는 과감한 발언도 내뱉는다. 갈 길을 잃어버린 어떤 이들은 이 사람의 행보에 따라 자신의 앞날을 결정할 요량이다. 여기에 제3지대와 빅텐트를 말하는 자들도 있다.

이들에게 정치철학이나 신념이 있기나 할까? 아마도 있다면 자기 이익에 따라 합종연횡하려는 이기적 속셈만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구체적 개혁프로그램을 국민에게 제시할 생각은 별로 없고 오직 자신이 차지할 정치권력에만 눈이 돌아가 있는 것이다.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 모리배들이다. 이들에게 일말의 진실함이 있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열렸을 때 절대다수가 정계에서 은퇴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라면 애당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성호의 말처럼 모이를 향해 이리저리 몰려드는 닭과 다를 바 없다. 새해에는 거대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변화가 모이를 향해 몰려드는 닭과 다름없는 정치 모리배들을 쓸어내는 변화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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