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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는 사람들이 건강하면 수입이 줄어드는 부업을 했었다

지난 해 12월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중소기업의 30%가 사원의 부업이나 겸업을 용인하고 있으며 25% 가량은 앞으로 이를 허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물론 43%는 여전히 직원에게 부업, 겸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급여 수준이나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때문에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부업이나 겸업 허용에 대해 열린 마음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부업은 현대인들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과거의 음악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수입이 상당히 적거나 일정치 않았기 때문이다. 음악가의 부업은 어떤 모습들이었을까?

1. 바흐의 부업은 건강 열풍이 불면 수입이 줄어들었다.

“바흐가 쾨텐의 궁정 악장에서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 칸토르로 옮겨 앉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기본급은 적지만 임시 수입이 상당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만큼 임시 수입은 들어오지 않았다. 바흐가 말하는 임시 수입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위한 음악의 작곡 및 연주였다. 바흐는 친구인 에르트만 앞으로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이 임시 수입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유명한 글이어서 그 일부를 소개하겠다. “현재 나의 수입은 약 700탈러이며, 평상시보다 장례식이 많으면 그에 따라 임시 수입도 늘어나지만, 건강 열풍이라도 불면 반대로 수입이 줄어듭니다. 예를 들자면 작년의 경우에는 보통 장례식을 통해 얻었던 수입보다 100탈러 이상이나 줄어든 상황이었습니다.” (‘바흐 자료집)” (책 ‘베토벤의 이중계약’, 니시하라 미노루 저)

바흐는 궁정에서 교회로 직장을 옮겼다. 교회에서 진행되는 장례식에 필요한 곡의 작곡과 연주를 통해 짭짤한 부가 수입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의 불만이 참 흥미롭다. 건강 열풍이 불면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바흐가 사람들이 아프기를 희망했는지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부고가 전해질 때마다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을 듯싶다. 그 덕에 우리는 바흐의 위대한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2. 베토벤 할아버지는 와인 판매업을 병행했다.

“이들이 주로 선택하는 부업은 악기나 악보 판매의 중개업, 출판, 특히 악보 출판에 손을 대는 것이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가장 실리적인 부업을 가졌던 베토벤의 조부로, 이름도 같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었다. 그는 본의 궁정 악단에서 악장으로 일했고 인망이 두터운 인물이었지만 급료를 충분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가 부업으로 선택한 것은 와인 판매였다. 분명 이는 베토벤 가에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가져다 주었으나, 동시에 이 집안의 비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베토벤의 조모는 알코올 중독으로 수도원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그 아들인 요한도 극심한 알코올 중독에 빠졌던 것이다.”(책 ‘베토벤의 이중계약’, 니시하라 미노루 저)

어떤 일이든 양면성이 있다. 베토벤 할아버지는 궁정 악단의 악장이면서 부업으로 와인 사업을 했다. 경제적으로 다소 풍요로워졌으나, 부업 선택이 영 아쉽다. 자신의 가족들이 하나 둘씩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아이스크림 사업을 크게 일군 집안 사람들이 각종 성인병으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어찌 되었든 경제적 관점으로 보면, 베토벤 조부의 부업은 성공적이긴 했다.

3. 철학자 루소는 철학 외에 음악과 관련된 부업을 했다.

“철학자 J.J. 루소의 경우는 다소 복잡하다. 그는 철학서를 집필하면서 작곡도 했으며(동요 ‘주먹 쥐고’는 루소가 작곡한 전원극 ‘마을의 점쟁이’의 인터메초가 원곡이다), 또한 ‘음악 사전’을 비롯한 다양한 음악 서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생계에 도움을 준 것은 악보 필사였다. 그러나 이는 결코 다각 경영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매우 참담한 상황이 그 배경에 있었다. …. 그러나 루소에게 악보 필사는 그리 불만스러운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페이지를 필사하면 그만큼의 확실한 수입이 보장되므로 생계를 꾸려가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 루소가 필사한 악보는 기록에 따르면 1770년부터 7년간 1만 1,185장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는 1년간 약 1,600장, 하루에 4~5장을 필사했다는 말이다. 출판업이나 악보 대여업, 혹은 피아노 제조업 등에 종사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던 대다수의 음악가들은 하루에 몇 장이나 악보를 필사하면서 생계를 꾸려갔던 것일까?”(책 ‘베토벤의 이중계약’, 니시하라 미노루 저)

우리가 아는 철학자 루소는 의외로 작곡가이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악보 필사로 꾸준한 수입을 올렸다는 점이다. 스스로 악보 필사하는 일이 화려하지도 큰 돈이 되지도 않지만, 성실하고 꾸준하게만 하면 먹고 사는 일에 지장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 부업을 찾는 직장인들의 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성실을 무기 삼아 크지 않더라도 꾸준히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일이면 된다. 그게 부업에게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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