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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묵비권인가

공직자라면 묵비권은 거의 사용해서는 안 될 권리라고 생각된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법률」(국회증언감정법) 제4조를 보더라도 공직자들은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다분히 사적인 권리인 묵비권을 공직자들이 즐겨 쓰는 것은 공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임을 생각해보자. 공직자들은 헌법상의 책임정치의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책임(accountability)정치란 어떤 사건에 대해서 공직자의 판단을 설명(account)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설명이 맞으면 집행력이 인정되는 것이고 아니면 책임을 져야 한다.

  • 국민의제
  • 입력 2017.01.13 06:05
  • 수정 2018.01.14 14:12
ⓒlolostock via Getty Images

글 | 강 경 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헌법학 교수)

묵비권 혹은 진술거부권이란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수사절차나 공판절차에서 수사기관ㆍ법원 등의 신문 또는 진술요구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침묵의 권리와 진술거부의 권리를 포함한다. 이 권리를 요즈음 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된 이들이 100퍼센트 이상 활용하고 있다. 인권보장이 잘 된 나라이다. 그러나 인권 외에 국가의 기강(헌법)과 공직자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 국회 청문회와 탄핵심판 혹은 특검에 증인으로 소환된 이들이 누구인가? 이들은 대부분 청와대 근무자들이었다. 청와대가 어디인가? 강남 유명 호텔이나 요식업소가 아니잖는가? 우리나라의 최고 공직자상을 심어주어야 할 곳이 청와대다.

최순실사건이 터진 이후 청와대 근무자는 이에 대해 책임이 있는 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가 잘못되었으면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죄를 달게 받아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미 구속된 청와대비서관들 뿐만 아니고, 대학교수, 대기업 회장과 사장 등 이 사회의 공직기능을 수행하는 이들 모두가 청문회와 탄핵심판정에 나와서는 오로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나 '모르겠다'로 일관하였다.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들이 수시로 도피하거나 출석을 거부하는 일도 많았다. 이런 부정직한 태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국회 청문회나 탄핵심판정을 보고 국민들은 무기력에 빠질 지경이 되었다. 무기력은 절망을 뜻한다. 이제는 사건 초기에 대국민사과에 나섰던 대통령조차 잘못한 것이 없다고 딱 잡아떼는 형국이다. 빨리 일을 매듭짓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듯하다. 오죽이나 속이 답답하였으면 광화문 앞에서 홀로 분연히 분신한 정원스님이 있었으랴? 사건을 지지부진의 늪에 빠트린 모든 공직자들이 함께 이 사람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통감할 일이다.

묵비권과 정직의 관계를 더 생각해보자. 묵비권(진술거부권)은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는 몰라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정직에 반한다."고 단언하고 싶다. 특히 공직자라면 묵비권은 거의 사용해서는 안 될 권리라고 생각된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법률」(국회증언감정법) 제4조를 보더라도 공직자들은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다분히 사적인 권리인 묵비권을 공직자들이 즐겨 쓰는 것은 공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임을 생각해보자. 공직자들은 헌법상의 책임정치의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책임(accountability)정치란 어떤 사건에 대해서 공직자의 판단을 설명(account)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설명이 맞으면 집행력이 인정되는 것이고 아니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형사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들은 의뢰인들에게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에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에 대해서 일체 답하지 말라고 코치한다. 그게 현실이다. 검찰에 불려가서 말 많이 하면 책만 잡히기 때문에 현실은 이런 코치가 통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정직을 세워야 할 검찰과 법정이 오히려 이 사회에서 부정직의 출발점이 되어버렸다. 부정직의 온상이 되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봐도 검찰의 거두(김기춘)와 맹장(우병우)이 검찰이 생각하는 묵비권이 무엇인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얼마나 빗나간 공직자의 모습인가?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정직성이 가장 높았던 노무현 대통령조차 묵비권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겼다.

정직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정직은 도덕에 그치지 않는다. 바로 법이다. 실용적 법을 추구했던 로마시대의 법학자 울피아누스는 "법은 세 가지이다. 정직하게 살아라,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라, 각자에게 그의 것을 돌려라."라고 말했다. 정직이 없으면 법이 설 자리가 없다. 법치주의는 붕괴된다. 법과 헌법을 세우기 위해서는 정직을 세워야 한다. 물론 100퍼센트 정직사회가 되면 검찰과 법원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복잡한 수사와 판단이 불필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 70퍼센트 정도의 정직사회가 되면 좋을 듯하다. 나머지 30%정도가 있어야 법률 직업인들이 일 할 공간이 생긴다. 약간의 거짓말이 있어야 재미스런 인간사회겠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 거짓말이 가득하다. 거짓은 부정부패로 직결된다. 김영란법의 중요성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부정부패와 부정직 사회로부터 시급히 탈출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결코 선진사회로 갈 수 없다. 특히 공직사회에서는 정직의 덕목을 중시해야 한다. 그것은 곧 법치주의의 지주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변혁의 시기에 정직사회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위증죄에 대한 처벌강화가 불가피하다. 마침 국회에서 청문회 불출석과 회피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을 마련한다는 소식이 있다. 이에 더하여 공직자의 경우에는 위증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을 두어야 하고, 또한 가칭 '공직취임제한법'을 제정하여 공직자에 적합하지 않은 범죄유형(예컨대 뇌물죄, 공직선거법위반)에 반드시 위증죄도 포함시켜 일정 기간 공직에 취임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자.

글 | 강경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헌법학 교수이다. 영국과 미국의 노예제 폐지과정 연구를 통해서 시민들 한사람 한사람의 헌법정신이 중요함을 알았다. 헌법을 통한 민주시민교육에 열정을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사회복지국가로의 본격적 진입을 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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