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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국가, 온전한 국민주권의 시대를 열자

지금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근혜 게이트가 제왕적 대통령제에 기인한다고 단정한 다음 개헌을 하자고 불을 지핀다. 그러나 내각제나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실시된다고 해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실질적인 권력 균등을 위해서는 최근 거론되는 검찰개혁, 비례대표 확대, 선거연령 하향, 지방분권 자치, 국민소환과 국민발안 제도 활성화, 정당제도 개편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 김동춘
  • 입력 2017.01.12 12:39
  • 수정 2018.01.13 14:12
ⓒ연합뉴스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제헌헌법에서 지금의 87년 헌법의 전문에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는 내용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바로 일제 치하였던 1941년, 임시정부가 제정한 건국강령의 기본 정치철학, 즉 조소앙(1887~1958)의 삼균(三均)주의에서 온 것이다. 삼균주의는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정치, 경제, 교육에서 균등한 권력, 균등한 부, 균등한 교육이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자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열망을 집약한 것이었다.

미국식 근대의 외양에, 유습 간직한 '반쪽 국가'

대한민국은 이러한 삼균주의 정치이념을 근간으로 한 헌법을 제정했지만,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자주, 민주, 균등의 원칙을 기초로 한 새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40여 년 동안 일제의 탄압에 맞서 인고의 세월을 보냈던 독립운동가들을 배제, 탄압함과 동시에 그들의 열망을 담은 제헌헌법의 정신을 무시했다. 그 대신 자신에게 충성을 바친 친일 관료, 경찰, 군인들을 정부 요직에 기용했다. 남북한 분단, 전쟁, 그리고 남북한 군사 대결을 빌미로 대통령, 공안기관, 군·경, 관료조직은 특권화되었고, 국민의 정치참여 기회가 차단되었으며, 모든 지역 직능단체는 관제조직이 되어 권력과 부의 균등은 멀어졌다.

결국 대한민국은 법, 제도, 이데올로기에서 미국식 근대의 외양을 지녔지만, 그 속은 조선 시대, 일제 식민지 시대의 유습을 그대로 간직한 '반쪽 국가'였다. 남북한이 분단되었기 때문에 반쪽이 아니라, 조선시대와 일제 식민지의 유산인 사상탄압, 흑백논리, 관존민비, 사법의 정치화, 지방자치의 말살, 자주·복지·평등의 이상을 지닌 진보 정치세력을 배제한 극우 편향 등, 근대국가의 기본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국가이기 때문에 반쪽인 것이다.

반쪽 국가에서 국민의 주권은 '반의반'만 보장되었다. 정치이념의 단색화, 검찰 관료가 특권화된 사회에서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는 정치가는 오직 일류대, 사법행정고시 출신, 재벌에 우호적인 사람들이었다. 국민은 오직 선거 때만 주권자이고, 선거만 끝나면 직장이나 마을에서 자신이 뽑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감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노동자의 90%는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지렛대가 없고, 수백만 명의 영세자영업자들은 재벌이 운영하는 대형슈퍼의 '갑질'에 맞설 힘이 없다.

그러면 왜 87년 민주화와 두 번의 민주정부는 왜 헌법전문에서 강조한 균등한 기회, 균등한 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했을까? 그것은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다'는 원칙 하나만으로는 결코 권력의 균등이 보장되지 못하며, 경제 자유화는 재벌대기업에게 더 큰 자유를 주자는 분위기 하에서 대다수 서민의 자유, 기회, 생활 수준은 상대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 두 민주정부는 공안기관, 검찰, 관료조직, 재벌의 특권을 흔들지 못했고, 지역사회에서 토호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를 육성하지 못했다.

요즘 거의 매일같이 폭로되고 있는 박근혜 게이트의 모든 것은 바로 제헌헌법, 87년 헌법의 정신을 완전히 무시한 이승만·박정희의 '반쪽' 국가, '반의반'의 주권 상태의 결과다. 그것은 독재의 유산만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심지어 조선이 남긴 적폐이기도 하다.

검찰, 선거, 정당 등 제도 개혁해야

지금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근혜 게이트가 제왕적 대통령제에 기인한다고 단정한 다음 개헌을 하자고 불을 지핀다. 그러나 내각제나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실시된다고 해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실질적인 권력 균등을 위해서는 최근 거론되는 검찰개혁, 비례대표 확대, 선거연령 하향, 지방분권 자치, 국민소환과 국민발안 제도 활성화, 정당제도 개편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편 균등한 부와 균등한 교육이 보장되지 않으면 정치적 균등도 공염불이 된다. 미국의 저학력 하층 백인 노동자들은 이민 노동자들이 그들의 일자리를 뺏었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끌려 그를 찍었지만, 투표 용지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트럼프는 억만장자들로만 내각을 구성함으로써 이들의 무지를 비웃고 있다. 최고 부자나 엘리트들만이 여야 대통령 후보나 상하원 의석을 독점한 미국은 바로 오늘 한국의 모습이다.

우리는 정부 수립이후의 최악의 권력게이트를 겪으면서, 정말 지금이야말로 온전한 국가, 온전한 국민주권이 보장되는 나라를 건설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헌법 제정자임을 자각하고 새 국가 건설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 이 글은 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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