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소를 사랑하니까 힘들어도 하는 거지 | 충북 괴산에서 소 키우는 강영식·김계화 씨

"농사지으면서 세 번을 크게 울었"다는 김계화 씨는 꿈을 묻자 소한테 넘겼다. "축사를 크게 해 가지고, 운동장처럼 넓게 해 가지고 얘들이 자유스럽게 돌아다니면서 송아지들도 막 뛰어다니"게 하고 싶단다. 8남매 중 유독 자신만 불행이 겹쳤었다는 강영식 씨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꿈이자 계획. 축산은 "규모를 100두로 딱 정했"고, 내년쯤 송아지들이 나오면 100두가 차니 그걸로 욕심 안 부리며 살고, 일정 소득은 꿈을 이루는 데 쓸 참이란다. 김계화 씨도 "둘이 먹고 살겠지 뭐. 욕심 부린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라는 걸 보면 상의는 벌써 끝난 셈이다.

충북 괴산 감물흙사랑공동체에서 소 키우는 강영식·김계화 씨

"나는 욕심이 있다면, 그냥 돈이 더 있다면 번식우 축사를 크게 해 가지고, 운동장처럼 넓게 해 가지고 얘들이 자유스럽게 돌아다니면서 송아지들도 막 뛰어다니고. (...) 나는 꿈이 있다면 그게 꿈이에요. 농사는 이제 더 이상 힘들어서 우리 먹을거리만 좀 하고, 어차피 소를 하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거, 꿈이 그거여."

글 최도연(살림이야기 편집부) | 사진 류관희

소를 만나러 가는 길

"소야,/여게 풀 많다./여기서 먹어라./소는 그래도 안 온다./소는 지 마음대로 한다./ (...) /사람 있는 데 안 온다."(김욱동 시 〈소 먹이기〉, 《일하는 아이들》, 이오덕 엮음, 보리 2002)

1970년에 안동 농촌의 한 어린이가 쓴 시다. "땅과 사람을 이어 주던 생명"인 소는 땅에서 일을 하고, 풀을 뜯었다. 일만 시키다가, 쓸모없어지면 잡아먹는 사람과는 가까이 할 필요가 없었다. 좁게나마 마음대로 거닐 자유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소는 다르다. 축사에 갇혀 사람이 주는 사료로 살찌우는 것이 곧 일인 소. 강영식·김계화 부부를 만나러 괴산군 감물면으로 가는 길은 소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웃음이 환한 강영식 씨는 눈은 작아도 인상이 소처럼 맑았다. 감물면에서 나고 자라 예순세 살인 지금까지 한마을에서 우직하게 농사를 짓고 소를 키워 왔다. 중매로 만났다는 올해 환갑인 김계화 씨는 목소리가 소처럼 우렁우렁했다. 송아지를 '애기'라 부르는 김계화 씨는 말 사이사이에 어미 소 같은 살가움이 배어 있었다.

강영식 씨는 젊은 시절 영농후계자에 선정돼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웠다고 한다. 지원금으로 논 1천983㎡(600평)와 소 한 마리를 샀는데, 매형한테 돈을 빌려 소 한 마리를 더 사서는 두 마리로 축산을 시작했다. 농사가 본업이었지만 돈을 조금씩 모아 소를 늘렸고, 축산업을 권장하던 정부 정책에 따라 농촌지도소 지원으로 축산 일을 키웠다. 그러다 당시 공동체 회장이 친환경 농사를 제안해 함께 시작했고 한살림도 만났다. 지금은 "소에만 전념하려고" 농사는 확 줄였다. 그래도 농산물도 유기인증을 받아 모두 한살림에 공급한다.

강영식·김계화 씨 축사는 멀리서도 눈에 띈다. 바로 아래에는 일반 축산을 하는 다른 주민의 축사가 있는데, 같은 마을길을 따라 그곳으로 수입 옥수수 사료를 실은 트럭이 왔다 가는 사이 부부의 축사로는 한축회의 친환경 사료를 실은 트럭이 다녀갔다.

"신기한 건 애기들도 엄마를 닮아요. 똑같어. 송아지가 엄마를 닮는다고. 희한하죠?" 당연한 말 같지만 애정이 깊으면 그것까지도 신기하고 예쁜 것. 한데 암송아지는 모양새뿐 아니라 행동까지도 어미를 빼닮지만 수송아지는 안 그렇다고 한다. 신기하고 희한하다.

"괴산 소라고 안 싸우겠어요?"

강영식 씨가 나고 자란 집 옆의 축사가 좁아져 몇 해 전 조금 떨어진 곳에 추가로 새 축사를 짓고 집도 지었다. 그러면서 송아지를 낳는 번식우(암소)는 기존 축사에 두고, 고기로 낼 비육우(수소, 황소)는 넓은 새 축사로 분리했다. 번식우 22두에 비육우 64두, 총 86두로, 부부 둘이 일하기에 버겁지 않은 작은 규모라 한다.

축사는 한살림 생산·출하 기준에 따라 개방형에다 소 한 마리당 8.26㎡(2.5평) 넘게 할애돼 있다. 바닥에 톱밥과 볏짚 등이 깔린 네모난 방이 죽 늘어서 있고, 방마다 소 4~5두가 들어 있다. 같은 방에 사는 소들은 같은 연령대로, 같은 때에 들어와 같은 때에 나간다. 방마다 붙은 팻말을 보니 소들의 번호와 함께 같은 입식연월, 그리고 조금씩 다른 생년월일이 적혀 있다. 바닥의 소똥은 보름에 서 한 달에 한 번 트랙터 등 기계로 치운다.

괴산은 한살림 축산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한살림 축산이 일찍 시작된 곳이거니와, 한살림 정육 부문의 70%를 공급하는 한살림축산영농조합법인(한축회), 축산 가공품 생산처인 한축식품이 있기 때문이다. 한축회는 괴산 지역 축산농가 43곳으로 구성된, 안전한 축산물 생산과 경축 순환을 추구하는 모임. 볏짚과 곡물을 섞은 친환경 사료(괴산TMR)도 직접 만들어 공급한다. 한축회 회원 농가 소가 2천300두에 이르는데, 매달 80~100두를 한살림에 공급하며, 달마다 생산하는 사료가 1천 t에 달한다. 강영식 씨가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얼마 전 가짜 무항생제 사골곰탕을 유기농 전문 판매업체에 납품한 축산가공업자가 적발된 일이 있었다. 생산지와 가공업체, 판매업체 간 관계가 서로 속을 모르는 '납품'으로만 맺어져 있으니 생길 수 있는 일인데, 한축회와 한축식품, 한살림은 일원화된 공급체계를 통해 축산품과 가공품이 안전하게 생산되고 판매되기에 그러한 관계 방식이 다시 주목받았다.

지역 내 경축 순환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을까. 강영식 씨는 자신의 논밭에서 나는 걸로는 부족해 다른 농가에 소똥을 퇴비로 주고 볏짚이나 콩깍지 등을 소 먹이로 가져온다. 볏짚 제공처인 논이 9천917㎡(3천 평) 정도 된다고. 괴산 전체를 봐도 한축회 회원 농가의 소가 많기도 하고 괴산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곳은 아니라서 "괴산서 나오는 조사료가 적기 때문에 김제 평야 같은 데서 많이 가져오"기도 한단다.

부부가 한목소리로 "무서워, 무서워"라고 한, 수소들의 "죽기 살기로" 하는 싸움 얘기를 들어선지, 축사에 들어설 때는 다소 긴장되었다. 뿔이 온전히 달린, 거세 안 한 수소들이 그저 순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선입관 탓인가? 소들도 낯선 이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거세를 안 하면 같은 방 소끼리 서열을 정하고 약한 소를 괴롭히기도 하는데, 싸우다 죽는 일까지 생긴다고 한다.

한살림에서 거세를 금지한 건 아니다. 한축회의 자율적인 정책이고, 가장 큰 산지에서 그렇게 하니 다른 산지들도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김제나 아산 산지에 가면 비거세우들의 잦은 싸움에 대한 힘겨움 탓에 "괴산 소는 안 싸우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고. 김계화 씨는 "거세를 하면 암놈들하고 같은 거지. 그냥 밥 먹고 가만히 있는 거"니 키우기는 편한데, 그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더란다. 강영식 씨는 소를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은 동물복지이자 한살림 축산만의 차별점이라 강조했다.

다른 축사로 가까이 가니 암소들이 '우워 우워' 목청을 높였다. "밥 달라고. 난리가 난" 거라는데, 소들이 주인의 발소리, 차 소리까지 알고 그런단다. 암소들은 새끼를 낳는 것이 일이다. 생후 7개월 된 송아지를 사 오기도 하지만 주로 암소한테 낳게 한다. 생후 15개월이 되면 수정을 시키며, 임신 기간은 사람과 똑같이 10개월. 수송아지가 나오면 24개월 때까지 키워 고기로 내고, 암송아지가 나오면 번식우로 삼는다. "틀이 좋고 잘생긴 애들은 낳을 수 있는 데까지" 새끼를 낳게 하는데, 약한 암소는 두어 번 새끼를 낳으면 비육우로 돌린다.

겨울 송아지라 패딩 조끼를 입었다. 사람이 입던 게 아니라 "송아지용"으로 나온 어엿한 기성복이다. 지퍼가 잘 고장 나는 게 흠이라고.

욕심은 놓고 항상 그 마음이면

한 달에 두 번, 강영식 씨는 한축회 이사회와 월례회 때 〈한살림운동의 지향〉을 읽는다. 그런데 요즘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지면서" 대목에서 회의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살림 소고기가 일반 소고기보다 값싸니 고기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 들려왔다. "소고기 땜에 서울 매장들이 공급액이 떨어진다"는 억울한 소리까지 나오는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23개월 된 소를 내기도 했더니 소비조합원 쪽에서 "왜 23개월에 뺐느니 어쩌느니 막 뭐라 하는 거예요. 한창 클 건데 뺐다고." 강영식 씨 표현대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였다.

부부는 한살림에 대한 몇몇 아쉬움을 조심스럽게 내비췄다. 거기엔 생산자들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서로 좀 더 가지려고 하는" 생산자들을 점점 더 보게 된다고 한다. 강영식 씨는 생산자건 소비자건 "한살림 회원이라는 긍지"을 갖기를 주문했다. 그에게 그 긍지란 "욕심을 조금씩 버리고 비우"는 걸 뜻했다. 〈한살림운동의 지향〉은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 "항상 그 마음"이 시작과 끝이겠다.

복잡한 얘기 다 떠나서 부부가 "제일 안타까운 건" 고기를 "바싹 얼려서 판다"는 점이다. 소를 무항생제로, Non-GMO 사료로 정성껏 먹여 키웠더니, 더구나 일반 소고기처럼 옥수수 사료로 인위적인 지방을 만든 게 아니라서 육즙이 중요한데, 수분을 다 날려 버리는 냉동을 해서 팔면 "뭐가 되느냐"는 것. 냉장육으로만 유통할 수 없는 한계를 모르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그래서 "한살림 고기 구워 먹는 법" 같은 거라도 전단지로 알리고 싶단다. 기름기가 적어 "국 끓이면 훨씬 구수하고 맛있"지만, 구울 땐 "육즙이 뜰 때, 그때 뒤집어서 많이 굽지 않고 잡수시면, 꼭꼭 씹어서 잡수시면" 좋다고. '고기는 씹어야 제 맛'이란 말처럼 역시 입안에서 녹는 고기보단 씹는 고기가 제격. "거세우는 소금을 찍어야 간이 되는 것 같고, 한살림에 나가는 비거세우는 소금 안 찍어도 괜찮다는 느낌이 있어. 그거는 처음 맛보는 사람도 단번에 비교가 돼"라고 하니 참고하자.

암소들이 먹이가 쏟아지자 고개를 쭉 뺐다. 처음엔 경계심에 방 안쪽에만 있더니, 먹을 땐 다가가도 그러거나 말거나.

스마트폰 앱으로 확인하는 소의 이력. 생일, 족보, 예방접종 내역 등이 바로바로 조회된다. 역시, 족보 있는 한우다.

축사 안쪽엔 소똥 더미와 함께 'BM활성수·BM음용수 플랜트'라는 시설이 있다. 강영식 씨가 맨손으로 마른 소똥 한 덩이를 집어 들더니 냄새를 맡아 보라고 권했다. 그러고 보니 축사에서 소똥 냄새가 전혀 안 났는데, 코에 갖다 대도 마찬가지였다. 비결은 미생물 순환. 마른 소똥을 물에 넣어 미생물을 활성화한 뒤 그 물을 소에게 먹이면 좋은 미생물이 계속 순환돼 소가 건강하고 소똥 냄새도 준다고.

알콩달콩, 그저 건강하게

"농사지으면서 세 번을 크게 울었"다는 김계화 씨는 꿈을 묻자 소한테 넘겼다. "축사를 크게 해 가지고, 운동장처럼 넓게 해 가지고 얘들이 자유스럽게 돌아다니면서 송아지들도 막 뛰어다니"게 하고 싶단다. 8남매 중 유독 자신만 불행이 겹쳤었다는 강영식 씨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꿈이자 계획. "불행도 내 팔자"라 여기니 속은 편해졌지만, 한살림이 고마워 "한살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한살림을 통해 불우이웃을 돕거나 장학 사업을 하는 게 "집사람이랑 아직 상의는 안 한" 계획이다. 축산은 "규모를 100두로 딱 정했"고, 내년쯤 송아지들이 나오면 100두가 차니 그걸로 욕심 안 부리며 살고, 일정 소득은 꿈을 이루는 데 쓸 참이란다. 김계화 씨도 "둘이 먹고 살겠지 뭐. 욕심 부린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라는 걸 보면 상의는 벌써 끝난 셈이다.

강영식 씨는 바라는 것이 더 있기는 하다. 아내와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 그러려면 건강해야겠다는 것. 그러다 아내를 위해 한 가지 더 챙긴다. "특히 여자들이 일만 해서 고생을 하니깐" 한살림에서 문화 공연을 시골 공동체에서 열어 주거나 소비조합원들과 문화 교류 같은 걸 하면 좋겠단다.

온몸으로 그려 가는 영락없는 소

청년기에 고기가 되는 운명인 소를 바라보는 생산자의 마음은 어떠할까 궁금했지만 끝내 묻지 못했다.

"내가 소를 사랑하고 그 애착심이 있으니깐 힘들어도 하는 거지, 돈만 바라보고는 못 할 것 같애, 나는."

소의 운명이 어떠하든 김계화 씨에겐 소가 눈앞의 생명일 뿐.

"나는 애기들 크는 과정이 힘들어도 너무 좋은 거예요. 그냥 볼 때마다. 젖 먹는 과정, 펄떡펄떡 뛰어다니고 이러는 과정이."

비육우들은 "정들만 하면 가야 하"기에 애초에 정을 안 준단다. "그런 아픔도 있"어 소가 출하될 땐 한 번도 안 나가 봤다고. 축산 자체는 농한기가 없고, 쉴 틈 없이 돌봐야 하고, 특히 새끼를 낳을 땐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소와 함께해야 해서 너무 힘들다지만 그 과정이 부부에겐 살아가는 동력이자 삶인 듯했다.

강영식 씨의 그런 삶엔 소의 옛 모습이 어려 있다. 겨울날 눈이 오면 새벽부터 온 마을의 눈을 혼자 트랙터로 치우고, 비로 쓸고, 모래도 깔고 하느라 땀을 흘린다는 그이.

"아침에 그런 일을 하고 나면 그날은 마음이 아주 편하고 좋아."

남이 못 알아보게 얼굴을 푹 가리고 한다는 그는 "힘이 되는 데까지 그렇게 하려고" 한다. "누군가가 조금 고생을 해야 그게 다 되는 거지, 자연적으로 되지는 않잖어"라는 강영식 씨는 영락없는 소다.

"봄 여름 가을 겨울/언제 어디서나 고달프지만/소는 온몸으로 그림을 그린다./소는 온몸으로 시를 쓴다."(권정생 시 〈소·4〉 부분,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지식산업사 2000)

잡식동물인 사람은 초식동물인 소를 먹으려고 소한테 먹이를 준다. 소가 먹는 건 곧 사람이 먹는 것. 소한테 좋은 걸 정성껏 먹이는 건 그걸 사람이 취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도 귀한 생명이고, 좋은 걸 맛있게 먹고 자기 자리를 누릴 권리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이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한살림 #축산 #괴산 #감물흙사랑공동체 #유기농 #비거세우 #소 #뉴스